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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김수로가 한국 무대에 올리기 전 망설였던 '까사 발렌티나'

소수자 크로스드레서에 관한 이야기에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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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기자⁄ 2016.07.01 15:31:27

▲연극 '까사 발렌티나'의 한 장면. 이성의 옷을 입는 '크로스 드레서'라는 은밀한 취미를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사진=아시아브릿지컨텐츠)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본격 공연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무대에 오른 김수로 프로듀서는 처음엔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평소 공식 분위기 메이커로 누구보다 활발한 모습을 보였던 그이기에 의외의 모습이었다.


이내 김수로는 “이 작품을 보고 정말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 욕심이 있어서 구입부터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가지고 온 뒤 고민을 했다. 과연 한국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예상이 안 됐다. 하지만 작품의 힘을 믿고 올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렇게 사전 설명을 할 정도로 김수로를 망설이게 했던 연극 ‘까사 발렌티나’는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


‘까사 발렌티나’ 무대에는 두 명의 여자 배우와 일곱 명의 남자 배우가 등장한다. 그런데 눈에는 아홉 명의 여자들이 보인다. 어떻게 된 일일까? ‘까사 발렌티나’는 이성의 옷을 입는 ‘크로스드레서’라는 은밀한 취미를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962년 뉴욕 캣츠킬 산맥에 있는 한 리조트 슈발리에 데옹에 한두 명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나이도 직업도 제 각각인 이들은 가발을 꺼내들고, 곱게 화장을 하며, 예쁜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 이들은 스스로를 게이도, 트랜스젠더도 아닌 ‘여장을 좋아하는 남자들(크로스드레서)’이라고 부른다. 세상은 그들의 취미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바깥에서는 숨길 수밖에 없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스스로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낸다. 이 리조트를 처음 방문한 조나단도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여성적인 미란다의 정체를 공개하며 “나 혼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세상을 만나게 돼서 정말 황홀하다”고 고백한다. 처음엔 "나 이상하잖아요" 하며 울던 모습에서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다수의 사람들 사이 그들과 다른 목소리를 지닌 소수자의 이야기는 받아들이기에 낯설거나 또는 묻힐 때가 많다. 소위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늘 논쟁이 벌어진다. 김수로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데 민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헤드윅’ ‘라카지’ ‘킹키부츠’ 등 소수자들 콘텐츠 속속 등장


▲6월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축제와,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는 상황이 올해에도 벌어졌다.(사진=연합뉴스)

2000년 이래로 서울에서 매년 6~9월 사이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의 주체는 성소수자다. 올해 6월에도 서울 시청에서 축제가 열렸다. 2009년부터 대구에서도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려 왔다. 축제가 열릴 때마다 시끌시끌하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축제와,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는 상황이 올해에도 벌어졌다. 다수자와 소수자는 서로를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으로 바라보고 입장 차이를 보여 왔다. 여기에 하나의 올바른 답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풀어가야 할 문제다. 그 과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민감했던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도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동성애 커플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 영화는 2014년 뮤지컬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에 춤과 노래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다가가려 한 시도였다.


성소수자인 헤드윅의 인생을 다루는 뮤지컬 ‘헤드윅’은 첫 등장 당시엔 충격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연 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재공연 되고 있다. 올 상반기 공연에서는 조승우, 윤도현 등 인기 스타들이 헤드윅으로 출연했다. ‘까사 발렌티나’의 작품 원작자 하비 피어스타인은 뮤지컬 ‘라카지’ ‘킹키부츠’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 선보였고, 이 공연들 또한 꾸준히 재연되고 있다.


▲(왼쪽부터)뮤지컬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포스터,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한 조승우, 다가오는 9월 무대에 다시 오르는 뮤지컬 '킹키부츠' 보스터.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다.(사진=LSM컴퍼니, 쇼노트, CJ E&M)

‘라카지’는 게이 부부의 아들이 극우파 보수 정치인인 딸과 결혼을 선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인기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이 공연에서 직접 성소수자를 연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킹키부츠’에는 하이힐을 신은 남자 배우들이 등장했다. 파산 직전의 신발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여장남자 롤라를 우연히 만나고, 여장남자를 위한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킹키부츠’는 다가오는 9월 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까사 발렌티나’ 또한 소수자 이야기다. 소수자 이야기라 하면 성소수자의 이야기만 부각될 때가 많은데, 여기에 하비 피어스타인은 새로운 소수자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극 중 사람들은 그저 여자의 옷을 좋아하는 취미를 지닌 소수자임을 이야기한다. 이중에는 동성애자도 있고, 그냥 옷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소수자를 성소수자로만 생각하는 건 또 다른 편견일 수 있음을 이 극을 통해 꼬집는 듯하다.


‘소수자들의 극’이라는 건 또 하나의 편견


▲연극 '까사 발렌티나'는 소수자 크로스드레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임을 이야기한다.(사진=아시아브릿지컨텐츠)

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풀기 위해 배우들도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앞서 연극 ‘프라이드’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성소수자를 연기한 경험이 있는 최대훈은 “이번 작품은 소수자들이지만,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저 바닥에 깔려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내 알리는 과정이다. 그들을 비하하거나, 또는 비하하지 않는 척 하며 연기할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당신의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색안경을 벗고 한 번 세상을 둘러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편견에 빠지지 않으려 한 노력도 보인다. 문성일은 “여장 남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그저 남자가 생각하는 여자들의 행동으로만 그들을 표현하는 데 국한될까봐 조심스러웠다. 여성스러운 것이 무엇이고, 남자다운 것은 또 무엇인지 가른다는 것 자체가 편견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생리대 광고를 봤는데, 광고 속 여성이 굉장히 거침없이 뛰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 여겨지는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성스럽거나 남성스럽다는 건 어쩌면 관심의 대상과 표현법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크로스드레서는 화장과 의상에 관심이 많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출에도 각별히 신경을 기울이는 과정을 거쳤다. 성종완 연출은 “처음에는 크로스드레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생소해서 여러모로 자료를 찾아봤다. 단순히 하나의 특징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저마다의 개성이 있더라. 옷을 입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고, 그 안에서 성적 쾌감을 느끼거나, 혹은 동성애자도 있었다. 그런 다양한 소수자들이 이 극에 등장한다. 각자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까사 발렌티나’가 소수자들의 극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표현된다는 것 자체가 소수자를 다른 층으로 구분 짓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이야기를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아름답게만 꾸려가려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성 연출은 “크로스드레서를 주요 소재로 하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것은 보편적인 이야기다. 그들이 우리와 공통점이 없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저 소수자들 또한 인간으로서 외로움 등을 모두 똑같이 느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작가의 세계관을 느꼈다.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까사 발렌티나’는 이제 막 한국에 첫발을 내딛었다. 관객들에게 이 극이 어떻게 다가갈지, 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게 될지 궁금하다. 공연은 대명문화공장 DCF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9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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