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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맞는 집 ⑥ 소행주] 마음까지 짓는 ‘각자 설계 공동체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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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0호 안창현⁄ 2016.07.01 18:37:16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소행주 1호 집을 시작으로 현재 10호가 지어지고 있다. (사진=소행주)


(CNB저널=안창현 기자) ‘코하우징(co-housing)’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 당시 획일적인 주거문화에 반발해 생긴 형태다. 이 주거형태가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 독일, 일본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최근 10호를 준비 중인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은 한국의 대표적인 코하우징 주택이다.

입주자들이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공유 공간을 함께 쓰며 임대료를 나눠 내는 쉐어하우스(share house)와는 또 좀 다르다. 대체로 코하우징은 단순한 공동 주거를 넘어 입주자들이 부지 매입부터 건축 설계까지의 과정을 함께 한다. 그래서 지어진 집에 입주민이 일방적으로 입주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스스로의 생활패턴에 맞춰 집의 크기나 방의 구조 등을 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쉐어하우스처럼 입주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 공간도 있다. 아이들 놀이방이나 손님방, 세탁실, 정원 등 다양한 공유 공간을 만들어 공동체 생활의 즐거움도 누리는 것이다. 물론 이 공유 공간으로 인해 코하우징이 다른 주택들보다 경제적으로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각 세대마다 중복되는 공간을 함께 나누는 공유 공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2011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첫 소행주 집을 지은 박흥섭 대표는 이를 계기로 소행주에서 코하우징 코디네이터 일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에도 그는 소행주 1호 4층에서 가족 같은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다.

성미산 마을 공동체에서 시작해
코하우징 주택 1호 선보여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은 처음에 성미산 마을 공동체에서 비롯됐다. 공동 육아를 위해 사람들이 성미산 마을로 모여들었고, 조금씩 이 동네에 애착을 가지면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러면서 코하우징 형태로 소행주를 지었다.

▲코하우징 주택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소행주의 박흥섭 대표. (사진=안창현 기자)

▲2010년에 진행된 첫 번째 소행주 입주자 모임. (사진=소행주)


박흥섭 대표는 “당시 공동 육아 어린이집이 하나둘씩 만들어지면서 성미산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동네에 살기 위해선 당연히 주거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그래서 같이 공부하는 그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거 문제가 쉽게 해결될 리 없었다. 단순히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집을 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 내린 결론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련 일을 주체적으로 맡을 사람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지속가능하려면 체계적인 조직 형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소행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박 대표는 2009년 무렵 본격적으로 소행주를 준비하면서 성미산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공동 주택을 만든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주거공간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알아야 했다. 이런 공부와 조사 과정이 소행주를 지으면서 다양하게 반영됐다.”

소행주 1호는 6층짜리 주택으로 지어졌다. 1층은 주차장으로,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평상처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2층은 함께 사용하는 공유 공간이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위해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는 공부방과 비누를 만드는 공방 등 마을 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다 함께 사용하는 사랑방도 2층에 있다. 사랑방에는 주방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따로 준비한다. “저녁 준비에 지친 입주민들이 ‘저녁해방모임’을 만들었다. 도우미 분께서 사랑방에 저녁을 준비해주시면 각자 편한 시간에 여기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소행주 주민이 아니더라도 회원으로 가입하면 근처 이웃들에게도 개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행주 사랑방에서 입주민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소행주)


‘내 공간은 내가 설계’하는 참여형 건축

박 대표는 “3층부터 6층까지는 소행주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주거공간이다. 각각 분리돼 있지만, 같은 층에는 문을 열고 나오면 공동거실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또 각각의 세대는 요구에 맞춰 다락방을 만들거나 외부와 연결된 베란다를 만드는 등 가족 구성원과 각각의 생활패턴을 반영해서 지었다”고 말했다.

옥상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는 공용물품 보관실이 있다. 또 외부로 빨래를 널거나 작은 텃밭을 일구고,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했다. 박 대표는 “얼마 전 소행주 입주 5주년을 기념해 주민들과 옥상에서 조촐한 파티를 했다”며 “이곳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옥상”이라고 덧붙였다.

소행주 1호 집을 지을 때도 그랬지만, 이후에 매년 코하우징 주택을 지으면 소행주 10호까지 오는 동안 ‘소행주의 모든 세대는 공동 창작으로 지어진다’는 원칙이 있었다. 거주자의 생활에 맞게 주거공간을 꾸며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건축 설계나 시공 등 전문가들과 작업할 때에도 소행주 입주자들 간의 의견을 모아서 적극적으로 자기 집을 짓는 데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박 대표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입주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배려했다. 그래야 ‘우리 집’이라는 애착을 가질 수 있다.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각 세대마다 조금씩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세대는 집 안에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따로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기도 하고, 욕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세대주의 의견이 반영돼 다른 집보다 목욕탕 크기가 크게 설계되기도 했다.

소행주 같은 코하우징 주택은 개인의 사생활은 지키면서 공동체 생활의 다양한 장점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형태다. 공유 공간을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이웃 주민들과의 소통으로 서로 유대감을 형성할 수도 있다.

▲소행주 3호의 공용 공간에 입주민들이 모여 간담회를 나누고 있다. (사진=소행주)


특히 2층 사랑방을 이용해 저녁 식사를 공동으로 준비하는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들에겐 다양한 장점이 있다. 급하게 아이를 맡길 곳을 찾느라 진땀 빼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끼리 장난감이나 책 같은 물건을 나눠 쓸 수도 있다. 어른들도 오순도순 함께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박 대표는 “좋은 이웃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작지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한 방법인 것 같다. 요새 핵가족화다, 고령화 사회다 말들이 많지만 코하우징 주택은 공동체의 유대감이 두터워 이런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웃끼리 커뮤니티 형성하는 노력도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웃들과 마냥 좋을 수도 없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행주는 입주자들이 코하우징 주택에 입주하기 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과정을 거친다.

박 대표는 “예비 입주자들이 건축 설계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집 짓는 과정에 적극 동참하게 하지만, 입주 전에 미리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서로 이해의 과정을 거쳐야 친밀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집짓기’와 유사한 ‘마음 짓기’라고 불렀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사전 설계를 바탕으로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입주자들은 마음 짓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웃을 만난다. 각 세대만의 사적 공간이 충분히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한 공간에 모여 사는 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입주민들은 몇 차례 워크숍도 가지며 갈등을 해결하는 법,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법 등을 배운다.

▲소행주 복층 세대의 내부 모습. (사진=소행주)

▲소행주 입주 이후 열린 오픈하우스 행사. (사진=소행주)


“그런 전체 과정이 10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집 짓는 과정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마음 짓는 과정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자리가 중요하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다.”

소행주는 입주자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처음에는 주변에서 호기심을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주택에 입주하면 오픈하우스 행사를 여는 등 끊임없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할 노력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밀접한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사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을까? 박 대표는 “소행주에서 강제로 해야 하는 것은 없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정이 안 되면 못 나오는 것이다. 의무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강제사항은 없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응팔’처럼, 예전 우리가 살던 방식대로

성미산 마을은 이미 지역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코하우징 주택을 지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고, 이를 다른 지역에서 하긴 힘들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소행주에 사는 입주민들도 처음부터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길게는 1년 전부터 서로가 마음을 내놓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소행주의 커뮤니티는 이렇게 조금씩 형성된 것이다.”

또 코하우징 모델이 우리 주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박 대표는 “개인적으로 한 5% 정도는 이렇게 함께 사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우리도 시골에서 자라고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뛰노는 시절을 거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사람이 무서운 사회가 됐다. 점점 이웃이나 또래 친구가 없어져간다. 코하우징 주택이 여기서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응팔’에서처럼 서로 먹을 걸 만들면 나눠주고 하는 생활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소행주 같은 코하우징을 적극 검토할만 하다는 얘기였다.

▲지역 주민들까지 초청해 열린 과천 소행주의 오픈하우스. (사진=소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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