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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⑪ - 동덕여대 김보영] 자연 담은 종이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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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2호 윤하나⁄ 2016.07.15 17:29:59

▲김보영, '달을 담다Ⅴ'. 145 x 145cm, 한지에 천연염료 염색, 백토. 2014. (사진 = 김보영 작가)

   

느림의 미학이란 말에서 느림은 충분한 기다림의 시간을 의미한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창조하고 가다듬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아름다움. 그것이 느림의 미학이지만 어느 샌가 잊혀져가는 미덕이 된 지 오래다. 새롭고 빠르고 편리한 것들이 각광받는 요즘, 반대로 자연의 멋과 전통의 숨결을 주목하는, 요즘 젊은이답지 않은 젊은 작가를 만났다.

 

천연염색, 자연이 남긴 흔적

     

동덕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김보영은 학부 시절부터 활동해 온 동아리를 통해 천연염색을 주요 기법으로 사용해왔다. 전통양식에 관심 많던 작가는 천연염색한 순지(한지의 한 종류)를 위치와 모양에 맞게 자르고 붙이는 콜라주기법을 통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석사과정부터 해왔다.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작가는 전통에서 기인한 여러 모티프를 천연염색한 종이 재료를 통해 풀어낸다. 김 작가에게 작업은 무엇보다 자연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학부 시절부터 작가는 종이를 직접 만들거나 염료를 추출하는 과정을 배워왔다. 시판 물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색감을 작가는 오래전부터 좋아해왔다.

     

그가 작품에 쓰는 주된 재료는 세로로 길게 잘라 아코디언처럼 접어 천연염색한 종이다. 주로 얇은 순지를 접어 사용하는데, 염색이 베이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패턴을 특히 애용한다. 접힌 부분과 종이의 가장자리는 색이 다른 부분보다 진하게 베는 반면 접힌 종이 안쪽은 상대적으로 연하게 염색된다. 접어 염색한 종이를 다시 넓게 필 때면, 종이의 요철을 따라 농담이 다른 색들이 나타난다

    

▲김보영 작가. (사진 = 윤하나 기자)

▲김보영, '달을 기억하는 달 Ⅰ'. 72.5 x 62.5cm, 순지에 천연염료 염색, 백토. 2015. (사진 = 김보영 작가)

 

천연염색을 경험해보지 못한 기자가 염색 과정에 대해 묻자,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천연염색은 우선 염액 추출 과정을 거친다. 대개 치자 열매, 쪽잎 등의 식물성 재료를 쓰지만, 동물성과 광물성 재료를 활용하기도 한다. 동물성 재료는 대표적으로 립스틱 원료로도 잘 알려진 연지벌레(선인장 벌레)가 있고, 광물성 재료로는 먹, 황토 등이 있다. 차를 우리듯 뜨거운 물에 재료를 넣고 끓여 염액을 만든다. 물이 아직 뜨거울 때 접어놓은 종이를 염액에 넣은 후 꺼내 말린다. 이후 매염이란 과정도 거친다. 매염은 색을 고착시키는 과정으로, 백반, , 잿물, 가성소다 등을 활용한다. 어떤 매염제를 사용하냐에 따라 색이 더 진하게 발색되거나, 노란 기, 푸른 기, 짙은 기를 더하기도 한다. 매염 과정을 거쳐 말리고 매염제를 숯물에 헹궈내 다시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 천연 종이염색 과정이 끝난다.

 

경동시장 약재상을 찾아 주로 쓰는 먹, 치자, 울금, 황련, 황백, 오리목 등의 재료를 구한다. 천연재료의 특성 상 녹색을 만들어낼 재료가 없어 주로 노란 색과 파란색이 나는 재료를 섞어 쓴다고 한다. 천연염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를 보며 그 과정 자체가 큰 즐거움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특히 종이가 잘 마르는 여름방학을 활용해 다량의 천연 염색 종이를 만들어 놓는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한 해의 작업 재료를 쌓아놓는 기간이다. 복잡해 보이는 과정이지만 작가에게 염색은 하나의 휴식이자 명상이다.

 

▲김보영, '달의 기억'. 53 x 45.5cm, 순지에 천연염료 염색, 백토. 2015. (사진 = 김보영 작가)

 

종이의 결 따라 보는 달항아리

 

작가는 천연염색 종이를 활용한 색면 추상 작업으로 석사청구 전시를 마쳤다. 초기엔 재료와 기법이 돋보이는 추상에 집중했지만 점차 전통의 모티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염색 종이를 잘라 전통 문살무늬를 만들거나, 항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재작년 전시 달을 담다를 통해 선보인 달항아리 연작들에는 작가의 재료적 고민과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선시대 18세기에 제작돼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백자 달항아리는 흰 바탕에 이리저리 얼룩이 져 있다. 제작됐을 당시의 순백색은 사라진 지 오래며, 액체를 담기 위해 사용된 흔적이 곳곳에 스며든 모습이다. 도자기의 본성은 변치 않았지만 그 안에 시간과 자연이 담겨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김보영, '짓다'. 169 x 57cm, 순지에 천연염료 염색. 2013. (사진 = 김보영 작가)

 

작가의 한지도 작업 당시의 환경이나 날씨, 온도 등의 조건들이 담겨 매번 다른 색감들을 얻어낸다. 자연이 주는 강한 생명력이 한지 위에 스며드는 과정이다. 이렇게 자연과 시간을 담은 달항아리와 천연염색 종이가 만났다. 

 

백자를 만들 때 쓰는 백토(흰 흙)를 화판 전체에 바르고, 그 위에 자연을 머금은 한지를 잘라 한 조각씩 배열하면, 이윽고 흰 바탕 위에 모자이크된 자연의 색감이 달항아리 모양으로 나타난다. 항아리의 재료인 백토가 작품의 바탕을 이루고, 주로 그림의 바탕이 되는 종이는 반대로 항아리가 됐다.

 

때론 길게, 때론 짧고 두텁게 이어 붙여가며 표현한 항아리는 각 작품마다 그 색감과 기운이 달리 표현됐다. , 어떤 항아리에는 달의 흑점을 딴 무늬가 새겨진 작품도 있다.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자신이 가진 기법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시도다.

  

▲김보영, '색의 도자기를 빚다 Ⅰ'. 117 x 91cm, 순지에 천연염료 쪽 염색. 2013. (사진 = 김보영 작가)


"세월의 색 품은 작품 만들고파"

최근 작가는 십장생이라는 새로운 모티프를 작업 중이다. 천연염색 기법은 그대로 유지하되 염색된 무늬를 통해 동물의 깃털이나 나무껍질 느낌을 내는 등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천연염색의 매력을 적극 활용하면서 이를 어떻게 작업화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과정이다.

 

오랜 기간 한 가지 기법에 집중해온 작가는 그 세월만큼 오랜 고민의 시간을 거쳤다. 그동안 전통적인 모티프에만 사로잡혀 있던 것은 아닌지, 천연염색을 보다 현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 특히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처음 천연염색을 작업에 활용했을 때의 고민은 색 변질이었다. 천연염색은 빛에 약하기 때문에 빛에 노출되면 금방 색이 옅어지고 날아간다. 작가도 초기에는 이 부분을 고민하며, 색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재료를 덧발라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색이 변하는 과정도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작가의 현재 고민도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혜안이 나타나며 해결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옛것이 멋있는 이유는 세월을 거치면서 갖게 된 흔적이 함께 보이기 때문일 거예요. 세월의 색이 묻어나는 거죠. 제 작품도 언제가 그렇게 되길 바라죠라며 웃으며 말하는 작가의 말소리가 청량하다.



▲김보영, '십장생도'. 145.5 x 112.1cm, 한지에 천연염색, 흙. 2016. (사진 = 김보영 작가)



김보영은 한국미의 본질을 추구

김상철 동덕여대 미대 교수의 추천사


작가 김보영은 한지와 천연염색을 통해 한국미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가다. 그의 작업은 물성 자체에 함몰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한 주관적 해석을 통해 현대화를 추구한다.


그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아우르는 원칙적인 것이자 진보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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