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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법률 칼럼] “부동산 명의신탁, 보호할 가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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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3-494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2016.07.22 19:14:48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부동산 명의를 신탁 받은 수탁자가 이를 처분한 경우 어떻게 처벌 받을까요? 부동산 명의신탁이란 “신탁자와 수탁자의 계약에 의해 부동산의 공부상의 소유명의를 수탁자로 하여 두고, 신탁자가 관리·수익하는 것”을 말합니다.

명의신탁은 사실 세금 문제, 재산 도피 등 여러 가지 불법적인 수익과 관련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 법은 이를 규제하는 쪽으로 규정돼 왔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명의신탁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고, 규제하는 쪽과 이를 피하는 쪽의 숨바꼭질이 계속됐습니다. 명의신탁과 관련된 법률이론의 발전은 이 숨바꼭질의 결과물입니다.

부동산의 경우, 명의신탁은 크게 등기 명의신탁과 계약 명의신탁으로 나뉩니다. 계약 명의신탁은 신탁자가 부동산을 매수하면서 당사자로 나서지 않고 수탁자에게 위탁해 수탁자가 직접 계약당사자가 돼 수탁자 명의로 등기하는 형태입니다.

등기 명의신탁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신탁자가 먼저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후 수탁자의 명의로 등기하는 ‘단순 명의신탁(양자간 명의신탁)’과 신탁자가 타인으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하지 않고 매도인에서 수탁자 명의로 바로 이전등기를 하는 ‘중간생략형 명의신탁(3자간 명의신탁)’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복잡합니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부동산의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라고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필자도 예전에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 부동산 명의신탁에 관한 이론이 너무 어려워 긴 시간을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동산 명의신탁과 관련한 판례는 어떻게든 부동산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돌려놓으려는 사람들과 이를 규제하려는 쪽의 다툼이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도 복잡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되면서 기존의 명의신탁 이론은 매우 간명하게 바뀝니다.

이 법은 예외로 규정된 종중, 부부간 명의신탁, 신탁법에 의한 명의신탁, 구분소유적 공유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부동산 명의신탁을 무효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부동산 명의신탁은 많이 남아 있고, 수탁자와 신탁자 간에도 많은 분쟁이 있었습니다. 최근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A(신탁자)는 서산의 땅을 매입하면서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지 않고 곧바로 B(수탁자)의 명의로 등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B는 부동산이 자신의 명의로 등기된 것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줍니다.

A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B를 횡령죄로 고소했습니다. 이 사안에서 A와 B의 명의신탁 관계를 중간생략형 명의신탁 또는 3자간 명의신탁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A에게 등기를 하고, 다시 B에게 명의 이전이 돼야 하는데, 이 중간단계가 생략된 명의신탁 형태입니다.

과거에는 이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서 수탁자인 B가 부동산을 자신의 마음대로 처분한 경우 횡령죄와 부동산실명법 위반죄가 성립했습니다. 기존의 판례는 “부동산에 관하여 명의신탁자가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매도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하되,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와 명의신탁약정을 맺고 등기를 매도인으로부터 명의수탁자 앞으로 바로 이전하는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을 한 경우,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아 명의수탁자가 그 명의로 신탁된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면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일관된 입장이었습니다(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도8556 판결).

▲최근 대법원은 부동산 명의신탁을 불법으로 규정, 수탁자가 임의 처분해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사진 = 연합뉴스

대법원은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가 이른바 계약 명의신탁 약정을 맺은 경우 “명의수탁자를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도 볼 수 없어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행위는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 및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시해왔습니다(대법원 2000. 3. 24. 선고 98도4347 판결).

그런데 이 중간생략형 명의신탁 사안과 계약 명의신탁 사안을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고, 대법원은 최근에 판례를 변경하게 됩니다.

횡령죄 아닌 부동산실명법 위반 처리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해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신임관계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신임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부동산의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서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수탁자와 신탁자의 신임관계가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이 사안에서 “부동산실명법에 반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불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아니할 뿐 이를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신탁 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6.05.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에 대한 것이지만, 단순 명의신탁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단순 명의신탁, 중간생략형 명의신탁, 계약 명의신탁을 불문하고 앞으로는 수탁자가 자신의 명의로 신탁 받은 부동산을 처분해도 부동산실명법 위반죄 말고는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부동산 명의신탁을 근절시키겠다는 대법원의 확고한 의지 표현입니다. 사실 부동산실명법 위반죄는 수탁자뿐만 아니라 신탁자도 같이 처벌을 받고, 처벌의 수위가 형법상 횡령죄에 비해 경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탁자들이 자신이 신탁 받은 부동산을 처분해도 신탁자로서는 이를 저지할 수단이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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