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 ‘봉이 김선달’] ‘나쁜 놈’에 못미친 ‘착한 놈’ 연기력
7월 6일 개봉해 한 달째 상영 중인 영화 ‘봉이 김선달’(감독 박대민/제작사 M 픽쳐스)은 조선시대 전설적 사기꾼의 행각을 다룬 사극 영화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사극을 내놓은 것이 시즌에 안 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7월 말경에 200만 관객을 넘기며 극장에서 선전했다.
보통 여름 시즌에는 대형 스펙터클이나 공포ㆍ괴기 영화들이 극장가를 지배하곤 하는데, 이런 사극 내지 역사 시대극이 제법 관객을 끄는 현상은 눈여겨 볼만하다. 게다가 영화에서 조선시대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을 어떻게 묘사해 오늘날의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할지는 평론가로서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봉이 김선달(鳳伊 金先達)은 서북 지방(평안도) 출신으로 당대 사회를 조롱하던 시대풍자적인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동안에는 설화로만 전해지다가 20세기 초에 소설 속 인물로 정착됐다. 그 후 1957년에는 한홍렬 감독이 영화화해 김승호, 김희갑 등이 출연했다.
대형 액션 아니지만 규모있는 스펙터클 보여줘
그러면, 이제 2016년에 젊은 박대민 감독이 보여주는 ‘봉이 김선달’은 어떤 모습일까? 그가 선택한 것은 액션 사극이었다. 대형 액션은 아니지만, 박대민 감독은 여러 번의 활극과 전투, 대동강에의 댐 건설과 물 방류 장면들을 통해 제법 규모 있는 스펙터클을 제공했다. 물론, 이렇게 역사적 소재에 액션을 첨가해 다이내믹한 진행을 가져오는 방식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해 흥미를 끌기도 했고(‘와호장룡’, ‘다모’ 등), 최근에도 유사한 액션 사극 영화들이 여럿 나왔다.
그렇지만, 대본 작가와 박대민 감독이 과감하게 재구성한 점은 시대적 배경이다. 모호한 김선달의 시대를 접어버리고 민중이 핍박받던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김선달이 민중착취적인 관리(평안도 감찰사)와 맞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즉, 감독은 김선달의 활동 시기를 조선 후기 중에서도 두 번 만주족(여진족, 淸)과의 전란을 겪고, 명과 청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로 상정했다. 이런 와중에 청나라에 공물을 바치며 남자들은 지원군으로 끌려가고, 처녀들은 공물로 바쳐지는 사회현실, 민중들의 비참한 삶에 눈을 돌리게 했다.
이들 속에 봉이 김선달이 있으니, 그는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고, 농민을 착취해 작물(담배)을 청에 더 많이 바치면서 개인 잇속도 챙기려는 평안도 감찰사와 대립하게 된다. 여기서 김선달은 대도(大盜)이자 의적이 된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 김선달(본명 김인홍)을 맡은 배우 유승호는 이런 큰 역할을 맡기에는 미흡했다. 너무 젊고 연기력이 깊지 못해, 잘못된 세상을 풍자-조롱하고, 관리들과 대립각을 이루기에는 역량이 매우 부족해 보였다. ‘민중의 적’으로서 악랄하고 계략적이며 임금에게도 대드는 평안도 감찰사 역의 조재현과 대립과 긴장을 이루지 못한 이유다.
반면에, 악역으로서 조재현의 연기력은 출중해 미국의 명배우 잭 니콜슨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사기꾼이 구해내는 세상?
그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주역보다 조역들이 빛났다. 김선달을 항상 보좌하는 넉살좋은 아저씨 역인 고창석, 가짜 점성술사 윤보살 역의 라미란을 비롯해 포도청장, 담파고(담배) 창고 경비대장 등 여러 조역들이 영화를 살려 주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단한 액션 사극 영화는 아닐지라도, 감독은 봉이 김선달와 그의 패거리의 활약상을 통해 농락당하는 사회를 구해내는 액션을 보여줬다. 게다가, 감독은 민중과 정치에 대해 발언하기도 한다. 영화 끝부분에서 김선달에게 총을 발사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총에 맞는 악랄한 평안도 감찰사를 통해서다. 강물 제방이 터지면서 쏟아져 나온 거센 물에 악이 휩쓸리고 세상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서민의 염원을 담은 셈이다.
이상면(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zenit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