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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밖으로 나온 미술] 거리에서 미술이 다가올 때, 피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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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5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08.08 09:16:57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지독히 더운 여름이다. 반복되는 폭염에 거리의 사람들 모두 지친 모습이다. 저녁에는 열대야를 이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강가, 캠핑장, 공원 등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문화예술 행사들도 마련되었다. 

저녁에는 문을 닫던 미술관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일주일에 4일을 연장 개관하며, 토요일에는 과천관과 덕수궁관도 저녁 9시까지 관객들을 맞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에게 직접 전시 설명을 듣거나 영화를 감상하고, 클래식 공연 등을 즐길 수 있는 ‘뮤지엄 나이트’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정도의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장인을 비롯하여 낮 시간을 활용하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은 주말을 기약한다. 만약 그조차 여의치 않다면 전시 관람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온라인을 통해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예상된 답이겠지만- 당연히 아니다. 바빠서 앞만 보고 지나치던 출퇴근길, 업무 때문에 방문했던 건물들, 열대야를 이기기 위해 머물렀던 공원 주변 등을 둘러보면 쉽게 미술을 만날 수 있다. 

오가는 길거리의 미술을 보셨나요?

이처럼 일상의 야외 공간에 놓이는 작품들이 늘어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숨겨져 있다. 공공 미술에 대한 담론 형성,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 경직된 미술의 경계 해체, 미술의 대중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는 미술 작품을 설치해야 하는 제도, 기업 홍보 등이 그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작품을 공유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의지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영국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의 서북쪽 기단에는 선발된 미술가들의 작품이 일정 기간 동안 전시된다. 대중과 소통하는 공공 미술을 장려하기 위해 런던이 진행 중인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The Fourth Plinth Project)’ 덕분이다. 여기에는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read) 등의 쟁쟁한 미술가들이 참여했다. 

▲씨킴, ‘Image 2’, 2.8 x 2.5 x 1m, 2001, 사진제공 = 아라리오 갤러리

그 중 많이 회자되는 작품 중 하나인 마크 퀸(Marc Quinn)의 ‘임신한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 Pregnant)’(2005)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아름다운 몸에 대한 고정 관념, 미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성을 비판하고 다양성의 사회적이고 미적인 가치를 일깨웠다. 

야외 설치 작품이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전시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로 2014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러버덕(Rubber Duck)을 들 수 있다.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의 ‘러버덕 프로젝트’는 2007년 생 나자르(St. Lazare)에서 시작하여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1992년 화물선에서 분실된 컨테이너에 담겨 있던 동물 모양의 고무 인형들이 세계 각지 해안에서 발견된 데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작가는 웃고 있는 러버덕을 보면 누구든 즐거워지고 긴장을 풀 수 있다고 말하며 감정적 치유와 소통의 미술을 강조한다. 

한편 공공 미술, 야외 조각의 경우에는 작품의 형상, 장소와 작품의 적합성, 작품의 가격, 미학적 가치 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공공의 특정한 공간에 전시되기 때문이다. 작품이 대중의 의지와 충돌했던 가장 유명한 사례는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1981)이다. 이 작품은 광장의 아름다움, 광장의 존재 이유를 파괴할 뿐 아니라 광장의 상징으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오랜 논란 끝에 1989년 철거되었다. 요즘에도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2014년 파리 방돔 광장(Place Vendôme)에 설치되었던 폴 맥카시(Paul McCarthy)의 ‘나무(Tree)’(2014)는 성인용품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비난받았고 결국 작품이 파손되었다. 이처럼 과격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아마벨(Amabel)’(1996)과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와 쿠제 반 브르겐(Coosje van Bruggen)의 ‘스프링(Spring)’(2006) 등이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놓였었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훼손해서는 절대 안 되지만- 미술을 우리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생생히 경험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며,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들은 모두 의미있는 참여의 모습들이다.

▲코헤이 나와, ‘매니폴드’, 13 x 16 x 12m, 2013, 사진제공 = 아라리오 갤러리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라리오 스몰시티(ARARIO Small City)’ 내에 전시된 작품들이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백화점, 영화관, 갤러리, 종합터미널, 대형 마트와 서점, 식당가 등으로 구성된 ‘아라리오 스몰 시티’의 광장에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코헤이 나와(Kohei Nawa)처럼 동시대를 대표하는 미술가들의 대형 설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복합 문화공간이자 명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빨간 가방의 형태를 한 씨킴(CI Kim)의 작품 ‘Image 2’(2001)는 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높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대, 
철옹성 쌓는 닫힌 예술의 시대는 지났다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2013)는 백화점의 출입구 바로 앞에 설치되어 백화점을 오가거나 광장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백화점에 쇼핑하러 왔다가 혹은 영화를 보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들어온 미술을 경험하게 되면서 예술로 변화된 일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술은 계속 우리에게 손짓하며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예술만을 위한 예술의 시대는 지났다. 더 이상 미술가들은 일상의 삶과 거리를 둔 미술, 자신만의 철옹성을 쌓은 닫힌 예술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자. 매일 오고가는 출퇴근길, 등하교길, 산책길, 장보러 가는 길 사이사이 예술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보물찾기 놀이를 하다보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즐겁고 아름다운 하루가 될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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