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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에콰도르] 발파라이소에서 통영을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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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9.26 09:10:24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0일차 (발파라이소 →  칠레 → 에콰도르 과야킬 → 키토)

새벽 5시 30분 출발 버스로 산티아고(Santiago)로 돌아간다.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도로가 산언덕을 넘는다. 뒤돌아보는 도시 풍경은 나에게 짙은 기억으로 남는다. 짧은 여정이지만 무리해서 여기 오길 잘했고 어제 당일로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표가 없었던 것. 그로 인해서 산티아고 호텔 숙박료를 날린 것까지도 오히려 고맙다.

대학시절 친구와 함께 경남 통영(당시 지명은 충무)에 갔다가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던 길, 통영 외곽 언덕을 넘으며 뒤돌아봤던 ‘한국의 나폴리’ 통영의 도시와 항구, 그리고 남해 바다의 섬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평생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몇 배 강렬한 이미지를 훗날 인생의 중년이 돼 머나먼 타국 칠레의 태평양 항구 도시에서 새기고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부족한 잠, 불확실한 상황, 고단한 몸 등 각박한 여행은 종종 이런 식으로 내게 크나큰 보상을 안겨다 준다. 바로 이런 순간순간이 힘든 여행을 계속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산티아고와 칠레 거리는 한국산 자동차가 석권하다시피 했다. 현대는 물론이고 기아, 삼성자동차까지, 승용차 말고도 승합차와 상용차까지 한국산이 많다. 태평양 시대를 실감한다. 남미에서 몇 안 되는 태평양 국가인 칠레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특히 한국과 오래 전 맺은 한-칠레 FTA 효과가 톡톡히 나타나는 현장을 계속 확인하며 다니는 셈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에 등재된 키토 올드타운. 46개의 교회, 17개의 광장 등이 곳곳에 곱게 보존됐다. 사진 = 김현주

버스는 아침 7시 조금 넘어 산티아고 외곽 파하리토스(Pajaritos) 메트로역에 도착한다. 어느 도시든 일터로 가는 것은 중요하다. 아침 8시 가까워오는 시각 부지런히 일터로 가는 인파에 섞여 나는 공항행 버스에 오른다. 공항과 그 부근 시설도 중요한 일터이므로 공항 가는 버스 또한 출근 승객이 많다.

적도의 베니스 과야킬

공항 출국장에서 커피 한 잔 마시니 행복하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국제선 출국장은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곳이다. 에콰도르행 항공기는 완전히 만석이다. 항공기는 산티아고 공항을 이륙해 태평양 상공을 건너 페루 상공을 지난다. 산티아고를 이륙한 지 5시간 만에 바나나, 카카오, 커피 수출로 유명한 과야킬(Guayaquil)에 잠시 기착한다. 먼 길이다. 과야킬은 적도의 베니스 같다. 해수면에 닿아 찰랑거리는 항구 도시는 나름대로 분주하게 그들의 삶의 법칙을 이어간다. 항공기에서 내리니 적도의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감싼다. 

▲에콰도르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들. 에콰도르의 인구 1460만 명은 메스티소 45%, 인디오 35%, 백인 10%로 구성됐다. 사진 = 김현주

고원 도시의 밤 산책

과야킬을 이륙한 지 40분 만에 키토(Quito) 공항에 도착한다. 입국장에는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이렇게 네 나라로 구성된 느슨한 동맹인 안데스 커뮤니티(Andes Community) 국민들의 입국 수속 편의를 위한 줄이 따로 있다. 시내 동쪽에 자리 잡은 공항에서 호텔은 멀지 않다. 에콰도르에서는 미국 달러가 공용 통화라서 매우 편리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2000년 자국 통화를 버리고 미화를 정식 통화로 채택했다. 

짐을 풀고 저녁 산책을 위해 호텔을 나오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고즈넉한 고원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비가 오니 분위기가 야릇하다. 트롤리버스를 타고 일단 산토도밍고까지 간다. 언덕과 골목이 많은 키토에는 버스와 택시가 아주 많고 요금도 저렴하다. 트롤리버스 전용인 중앙차로에 설치한 대피식 실내 버스정류장이 아주 훌륭하다. 시내 한복판 넓지 않은 길인데도 편도 차로 두 개 중 하나를 버스 차로로 지정했을 정도로 대중교통에 대한 배려가 크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다. 적도공원에 표지판에 세워진 모습. 사진 = 김현주

에콰도르 略史

산토도밍고는 사람들로 붐빈다. 거의 다 메스티소 아니면 인디오들이어서 왠지 친근감이 든다. 에콰도르는 인구 1460만 명으로서 메스티소 45%, 인디오 35%, 백인 10%로 구성됐다. 면적은 남한의 3배, 1인당 소득은 3700달러로, 넉넉지 않은 살림이다. 에콰도르의 근대 역사는 1534년 스페인 식민지가 되면서 시작된다.

1525년 잉카제국이 키토 북잉카와 쿠스코(Cuzco) 남잉카로 분리된 후 서로 정복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한 가운데 스페인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는 비운을 맞은 것이다. 1809년 독립해 공화국을 선포했고, 1941년에는 페루와 국경 분쟁으로 국토의 40%나 됐던 아마존 유역을 넘겨준다. 1995년 페루와 다시 국경 분쟁이 있었지만 1998년 평화협정 후 지금까지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적도의 고원도시 키토

키토는 적도에 위치하지만 해발 2800m 고원 도시로서 기온의 연교차가 적기 때문에 인간 거주의 최적지라고 한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La Paz)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수도인 키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독특한 도시 풍경을 연출한다. 연교차가 작은 대신 일교차가 큰 키토는 하루 사이에 4계절, 즉 봄 같은 아침, 여름 같은 오후, 가을 같은 저녁, 그리고 겨울 같은 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호 키토 올드타운

지금 내가 와 있는 올드타운은 남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옛거리로, 1978년 폴란드 크라쿠프(Krakow)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장 먼저 등록됐다. 46개의 교회, 17개의 광장 등이 곳곳에 곱게 보존됐고 거리는 콜로니얼풍 건축물들이 예쁘게 불을 밝힌 가로등과 어울려 밤안개 속에 그윽한 정취를 뿜어낸다.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건물이나 도시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흩어져 있지만 이렇게 온전히, 대규모로 보존된 곳은 없다고 한다. 자동차와 포장도로만 아니라면 200년, 300년 전 바로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북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이 고원에 유럽인이 들어오면서 인류에게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새로운 거대한 인종군이 만들어졌다. 거대한 스페인어권이 형성된 이 모든 사건들을 인류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왠지 키토에서 자주 만나는 수많은 인디오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저미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적도 공원의 모습. 세계의 중심(Mitad del Mundo) 적도 공원은 예쁘게 칠한 상점과 식당, 그리고 흘러나오는 인디오 음악이 향수를 자극한다. 사진 = 김현주

파네시죠 언덕

산토도밍고에서 택시로 파네시죠(Panesillo)로 올라간다. 키토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둥근 모양의 언덕이다. 비가 더욱 거세지지만 파네시죠에서 내려다 본 키토의 야경은 황홀하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도시의 수호자 처녀상(Virgin of Quito)이 두 팔을 벌리고 도시를 내려다본다.

택시기사 세르히오(Sergio)는 경찰과 택시운전 투잡(two job)을 뛰는 성실한 시민이다. 삶이 각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언덕 위에서 사진 찍는 동안 기다려 주고 중간 중간 차를 멈추고 또 기다려 주고 다시 산토도밍고까지 가깝지 않은 길을 왕복해 준 택시요금이 미화 10달러다. 참 저렴하다. 밤이 늦었지만 곳곳에 경찰이 있고 가로등이 밝아서 다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호텔로 돌아와 금세 잠에 떨어졌다. 오늘 발파라이소를 새벽에 떠나 장거리 비행, 게다가 두 시간 시차까지 얻었으니 참으로 긴 하루였다. 비는 여전히 거세다.

11일차 (키토 → 페루 리마)

적도 공원 미타드 델 문도

호텔을 나와 청과물 시장을 지나 15분 정도 걸으니 세미나리오 마요르(Seminario Mayor) 트롤리역이다. 여기서 트롤리를 타고 동쪽 오펠리아(Ofelia) 종점까지 이동하니 Mitad del Mundo(‘세계의 중심’이란 뜻)행 버스가 기다린다. 현지인으로 가득한 버스를 타고 40분 걸려 미타드 델 문도에 도착했다. 버스요금은 35센트, 정말 저렴하다. 적도 고산의 뜨거운 태양에 수천 년 그을린 구릿빛 피부, 고산에 적응하느라 키가 작아진 인디오들이 많다. 미국 리오그란데(Rio Grande) 남쪽 멕시코부터 칠레, 아르헨티나까지 인종, 언어, 종교, 문화가 비슷한 거대한 라틴 지역이 이렇게 펼쳐져 있다.

세계의 중심(Mitad del Mundo) 적도 공원은 예쁘게 칠한 상점과 식당, 그리고 흘러나오는 인디오 음악이 향수를 자극한다. 공원 중앙 적도탑에는 위도 00.00.00도, 서경 78.27.08도, 고도 2483미터라고 적혀 있다. 관광객들도 ‘E’자가 쓰인 노란 선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적도에는 독특한 자연 현상이 있다. 화장실 변기 물이 돌지 않고 곧장 내려간다든지, 그림자가 남북 양쪽으로 갈라진다든지, 좁은 못 머리 위에도 계란이 선다든지 하는 현상들이다.

▲도시를 굽어보는 언덕에 고딕 첨탑을 이고 서 있는 키토 대성당은 규모가 대단히 웅장하다. 사진 = 김현주

적도 공원을 나와 시내로 돌아온다. 어디를 가도 산기슭에는 마을이 있고, 마을을 사방으로 둘러싼 산에서는 마을로 푸른 카펫을 깔아내려 준다. 신께서 기후와 자연으로 축복한 땅이다. 센트럴에 들어오니 남쪽으로는 파네시죠가, 북쪽으로는 키토 대성당(Iglesia Nacional)이 보인다. 도시를 굽어보는 언덕에 고딕 첨탑을 이고 서 있는 키토 대성당은 규모가 대단히 웅장하다. 1572년 건립된 성당 내부는 어제 갔던 파네시죠처럼 성탄 장식이 예쁘게 걸렸다.

밤낮으로 예쁜 도시 키토

성당을 나오니 수업을 마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이 나에게 반가운 손짓을 건넨다. 다시 트롤리를 타고 산토도밍고로 향한다. 어젯밤 비오는 중에 잠깐 들렀던 광장이 예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도시가 밤에도 낮에도 예쁠 수 있을까? 산토도밍고 이글레시아 광장에는 이 도시 건설자 마리스칼수크레의 동상이 서 있다. 근처 시립박물관(Museo del la Ciudad)은 전시물보다는 중정(정원)이 더 예쁘다. 회랑과 정원이 어우러진 모습은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을 조금 베낀 것 같다.

독립 광장(Plaza de la Independencia)을 향해 가르시아 모레노 거리를 걷는다. 방코 센트럴 건물과 바로 붙은 예수회 대성당(Iglesia de la Compania de Jesus) 교회는 화려한 돌장식의 돔이 더해져서 남북 아메리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대광장(Plaza Grande)은 영락없는 스페인 광장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대통령궁과 대성당이 서 있다. 대통령궁의 장신 근위병이 멋지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1809년 독립 영웅들을 기린 독립기념탑이 있다. 많은 시민과 방문자들이 키토 오후의 달콤한 태양을 즐긴다. 센트럴에는 예쁜 콜로니얼 건축물들이 즐비해서 카메라에서 손을 놓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이 건물들을 짓느라 땀 흘렸을 수많은 인디오 노동자들이 생각나 가슴 한 끝이 찡하다.

▲우연히 지나던 포스터 가게에 김현중, 이민호 등 한국 배우들의 사진이 가운데를 장식한 모습을 발견했다. 한류 열풍을 여기서 또 느낀다. 사진 = 김현주

키토에도 한류 바람이

트롤리 정류장으로 가다가 우연히 지나던 포스터 가게에 김현중, 이민호 등 한국 배우들의 사진이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텔레노벨라(Telenovela, TV드라마, 소프오페라) 덕분에 이곳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꽃보다 남자’ 드라마와 그 주인공인 훤한 한국 청년들 얼굴이 여기서 어필한다는 얘기다. 이 먼 곳 에콰도르까지 한류의 물결이 퍼져 있을 줄 몰랐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국립문화박물관에 들른다. 역사, 문화, 고고학 박물관의 혼합이다. 마리스칼 수크레 상업지구의 번잡함을 보며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찾아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 이름도 마리스칼 수크레다. LAN 항공사의 항공편 취소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2박 3일에서 1박 2일로 축소된 키토 여정을 바쁘게 그러나 무사히 치렀다.

고산 지역인 여기는 해가 일찍 저문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공항터미널 바깥 인도에 큰 짐을 지고 아까부터 하염없이 걸터앉아 있는 인디오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무엇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냥하는 것도 아닌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나에게는 수천, 수만의 사연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키토의 전경. 둥근 모양의 언덕 위에는 파네시죠가 보인다. 사진 = 김현주

리마 공항에서 밤을 새다

밤 8시 50분 출발한 LAN 항공기는 두 시간 걸려 페루 리마 호르헤차베스(Jorge Chavez)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국제선 입국장 입국심사 대기하는 줄이 매우 길다. 북미, 유럽, 남미 인근 국가에서 국제선 여객기가 대부분 밤늦은 시각에 집중적으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입국장을 빠져 나가니 자정이 훨씬 넘었다. 예상했던 상황인 만큼 오늘밤은 그냥 리마 공항 터미널에서 지새기로 한다. 시내가 멀어 호텔에 들어갔다가 내일 새벽 6시 45분 쿠스코행 항공기 출발 시각에 맞춰 다시 나오려면 사실상 잠잘 시간도 없기 때문에 호텔 예약 자체를 하지 않았다. 리마공항 국내선 탑승구 입구 푸드코트는 나 같은 승객들을 위해 공간을 비워 놓았다. 새벽 비행기 승객을 위한 배려에 고마울 뿐이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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