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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창작뮤지컬 '쿵짝'의 호통 "인간들아! 책 좀 읽어라!"

한국 대표 단편소설 3편을 현대적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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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기자⁄ 2016.10.21 10:46:00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역의 은채원(오른쪽)과 사랑손님 역의 조현식이 열연하는 모습.(사진=스토리피)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오죽 책을 안 읽으면 내가 이렇게 책에서 튀어나왔겠어!” 공연 시작과 더불어 등장한 배우가 관객에게 친절한 미소는커녕 호통을 친다. 누군가 싶었더니 그 유명한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옥희란다. ‘옥희가 저렇게 성질 있는 애였나’ 하고 있는데, 이 옥희가 한국의 단편소설 세 편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등장하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와 더불어 ‘동백꽃’ ‘운수 좋은 날’까지, 자기가 한국 대표 단편 소설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단다.


아시아문화원과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가 신작이자 ‘간다’ 소속배우인 우상욱의 첫 연출작 뮤지컬 ‘쿵짝’을 내놓았다. 제목만 들어도 누구나 익히 아는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취지는 이렇다. 일단 우상욱 연출은 이 작품을 10년 전 구상했다. 그는 “서른 쯤 한국 대표 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정말 좋았다. 왜 이런 감동적인 작품을 학교 다닐 때는 지루해 했을까. 과거의 나처럼 이 좋은 작품을 청소년들이 지나치지 않고 재미를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드디어 이번에 무대에 올렸다”고 말했다.


그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전히 청소년들은 입시 전형 아래 ‘꼭 읽어야 할 필수 도서’로 꼽히는 한국 단편 소설을 읽기 지루해하기도 하지만, 독서에 관한 풍토도 많이 바뀌었다. 종이책이 점점 힘을 읽어가는 추세다.


하물며 최근엔 종이책 시장의 강자로 꼽혀 온 일본 출판 시장도 전자책으로 이동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인기 많은 만화책들도 안 팔린단다. 만화책도 안 팔리는데,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 속의 여타 다른 책들은 더욱 사람들에게 읽힐 리 만무하다. 전자책이 있기는 하지만, 순간순간마다 나오는 자극적인 뉴스나 글에 시선이 대부분 쏠리지, 극중 옥희의 말처럼 한국 대표 단편소설을 펼쳐놓고 진중하게 읽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그래서 옥희는 갈수록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자기가 책을 읽어주고, 또 보여주겠단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낯설거나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그걸 또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재미있게 들려주겠다고 한다.


옥희는 ‘사랑손님과 어머니’ ‘동백꽃’ ‘운수 좋은 날’에서 모든 상황을 꿰뚫어보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들려주기도 한다. 예컨대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요즘 세대들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서로 내외하는 어머니와 사랑손님의 모습을 보고는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지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내뱉는 식.


‘쿵’ 하고 두드리면
‘짝’ 하고 나오는 재미있는 소설 이야기


▲뮤지컬 '쿵짝'은 한국의 대표 단편소설 세 편을 현대적 재해석을 거쳐 보여준다. 사진은 '동백꽃' 장면.(사진=스토리피)

한국 단편 소설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옛 감성들이 어른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각 단편소설들의 시대적 배경은 1930~50년대인데 고복수의 ‘타향살이’, 봉봉사중창단의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 진방남의 ‘꽃마차’ 등 노래들이 현대적으로 편곡돼 무대를 채운다.


출연 배우인 조현식은 “연기를 하면서 일단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극 속의 소설이 익숙한 부모 세대부터 소설이 낯설지만 이 작품을 통해 소설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손자 세대까지, 공연이 끝나고 밥을 먹으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총 90분 동안 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 마음이 있었지만 가까워질 수 없었던 ‘사랑손님과 어머니’(주요섭 作,) 그리고 짝사랑하는 소년을 괴롭히는 점순이의 이야기를 담은 ‘동백꽃’(김유정 作,) 마지막으로 비극적이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보여주는 ‘운수 좋은 날’(현진건 作)까지.


현대적 재해석이라고는 하지만 예상되는 패턴으로 흐르긴 한다. 특히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패러디된 바 있다. 특히 옥희는 수줍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아닌, 알 거 다 아는 영악한 아이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공연의 옥희도 비슷한 형태다. 따라서 여기서 특별한 신선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신선함이 느껴지는 부분은 ‘동백꽃’의 재해석이다. 동백꽃은 본래 점순이와 소년 사이 오가는 말과 싸움, 거기서 피어나는 감정에 집중하는데, 공연은 금방 끝날 수도 있는 이야기에 닭들을 화자로 내세우면서 재미 요소를 더했다. 점순이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년에게 화가 나서 닭싸움을 시키는데, 이 닭들은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다. 이 닭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접근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진다. 웃음 요소를 더한 가운데, 나중에 점순이와 소년 사이의 변하는 관계를 보다 명확히 보여줘 눈길을 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와 ‘동백꽃’에서 웃음이 펼쳐졌다면, 마지막 ‘운수 좋은 날’은 안타까움과 감동으로 마무리한다. 원작은 김첨지의 안타까운 사랑을 통해 운수에 집중됐는데, 공연은 김첨지와 부인이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사랑했을지 보여주고, 또 부인에 대한 김첨지의 사랑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운수 좋은 날'은 김첨지와 부인의 안타까운 하루를 보여준다.(사진=스토리피)

수많은 단편소설 등 중에서 선정된 이 세 편의 소설은 사랑이라는 공통 주제로 귀결된다. 배우 임혜란은 “세 이야기에서 자신의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데에서 현 시대 사람들과의 공통점도 느껴졌다. 그래서 공연을 본 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한다거나, 부모에게 전화 한통 드리는 등 마음 속 사랑을 용기대서 표현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 이야기를 줄기차게 보여준 옥희는 마지막에 직접 한국 단편소설 책을 들고는 한 번은 읽어보라고 권한다. 또 공연의 시작과 마지막은 책을 펼치는 소리와 덮는 소리로 마무리된다. 책을 점점 안 읽는 세대들에게 알고 보면 책 속에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접근 용이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엮어 보여준다.


민준호 ‘간다’ 대표는 “공연 제목인 ‘쿵짝’에는 염원을 담았다.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다. 쿵짝이 잘 맞는다는 말이 있지 않냐. ‘쿵’ 하면 옛 책 속, 한국 단편소설뿐 아니라 서양 단편소설이나 전설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모두 튀어나오는 주문이 ‘짝’ 하며 튀어나오는 주문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드라마, 공연 등을 통해 다시 책이 재조명 받는 일이 많다. 원작 책과 비교 분석도 이뤄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갈수록 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세상, 특히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지는 옛 단편소설의 경우 이런 추세가 더욱 강해질 것도 같다. 그래도 덕분에 기억에서 잊혔던 한 책을 다시금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책장을 넘기는 그 소리와 책장의 감촉을 떠올릴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공연은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에서 10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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