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오래된 LP판이 가득한 책꽂이. 향긋한 커피 향 가득한 카페. 참 분위기 좋다. 여기에 남경주, 전수경 배우가 등장하자 2016년이 아닌, 마치 1960년대 카페로 타임슬립한 기분이 들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무대에 올라온 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힘이 있었다.
1960년대가 떠오른 건 아마도 이들이 현재 열심히 연습에 매진 중인 뮤지컬 ‘오! 캐롤’의 영향일 것이다.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히트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11월 국내 초연을 앞뒀다. 1960년대 미국 마이애미 리조트를 배경으로 주인공 6인의 러브스토리가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국내 초연과 더불어 뮤지컬 1세대 대표 배우 남경주와 전수경의 오랜만의 커플 호흡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인터뷰는 마치 수다를 떨듯 진행됐다. ‘오! 캐롤’에 관한 현재 이야기부터 지금 자리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이야기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관한 이야기까지 들어봤다.
① 현재의 이야기 - 뮤지컬 '오! 캐롤'의 중심
“우리 커플 호흡이 14년 만인가? 그래도 꾸준히 커플을 하긴 한다(웃음).”
남경주와 전수경 배우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남경주는 1982년 연극 ‘보이체크’, 전수경은 1990년 뮤지컬 ‘캣츠’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현재까지 무대에 올라 왔는데, 커플 호흡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그래도 각 커플마다 특징이 있어 팬들의 기억에 남았다. 199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열렬하나 이뤄질 수 없는 마리아와 토니의 비극적인 사랑을 펼쳤다. 다음엔 2002년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나싼과 아들레이드의 위험한 사랑을 보여줬다. 오래된 커플인데 도박 때문에 결혼할 수 없는 위태한 관계였다. 나중에 이뤄지긴 했지만 그 과정이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2016년 ‘오! 캐롤’. 이번엔 수줍은 커플이다. 남경주가 맡은 허비는 에스더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가슴앓이를 해온 인물이다. 리조트 쇼의 MC이기도 한 그는 항상 에스더 주변을 맴돈다. 전수경은 남경주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전수경이 연기하는 에스더는 과거엔 화려한 스타였지만 현재는 파라다이스 리조트의 사장이다. 그는 허비의 진심 어린 사랑에 고민한다.
‘오! 캐롤’에서는 허비와 에스더 뿐 아니라 바람둥이 델, 뛰어난 재능의 작곡가 게이브,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사랑을 믿는 로이스, 수재이지만 사랑에는 서투른 마지 등 젊은 커플들도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이 좌충우돌 풋풋하다면, 허비와 에스더가 보여주는 사랑은 농익었고, 그래서 더 심쿵한다. 청춘의 로맨스뿐 아니라 중년 로맨스가 대세인 시대다. 드라마, 영화 에서 중년 로맨스를 많이 다루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맺어진 김국진, 강수지의 핑크빛 중년 로맨스는 특히 많은 관심을 받는다.
특히나 남경주와 전수경이 보여주는 중년 로맨스는 더욱 달달할 것 같다. 이건 두 사람의 호흡이 유독 잘 맞는 덕분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흔히들 배우를 보고 ‘믿고 보는 배우’라 하는데, 이들은 서로를 ‘믿고 연기하는 배우’라고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다.
“수경이는 정말 예전부터 알던 후배라 편안해요. 무대 경험도 많고, 여러 면에서 믿을 만한 후배죠. 없지 않아 제가 심리적으로 기대기도 해요(웃음). 든든하죠. 현재 연습 초반인데도 벌써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서로 캐릭터에 안 어울리면 모르겠는데,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했고요. 저는 극중 아재 개그를 선보이고는 하는데, 웃기지 못할 때의 포인트도 저랑 닮았어요(웃음).” (남경주)
남경주의 말에 “무슨 소리냐”며 깔깔 웃던 전수경. 입을 열자마자 남경주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팬심도 튀어나왔다.
“제가 대학생 때 경주 오빠가 출연한 ‘매직 인 더 미러’를 봤어요. 외국 배우들과 함께 등장했는데, 한국 배우 중 눈에 띄게 기량이 좋았죠. 특히 목소리가 정말 감미로웠어요. 그때 팬이 됐죠. ‘나도 저런 무대에서 같이 서고 싶다’ 생각했는데 1~2년 뒤인가 오빠랑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됐어요. 그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예요. 진짜 영광이었어요. 처음엔 선후배로 시작했지만, 오랜 세월 함께 무대에 서오다 보니 좋은 동료로 발전했어요. 오빠는 눈빛에서조차 상대 배우의 역량을 끌어내는 역할을 해요. 정말 연기 잘 하는 배우는 상대방에게서 집중력을 끌어내는데, 오빠가 바로 그래요.” (전수경)
두 배우가 보여주는 중년 로맨스는 닐 세다카의 음악으로 더욱 감미로워진다. 고등학교 시절 ‘스투피드 큐피드(Stupid Cupid)’ 작곡으로 데뷔한 닐 세다카는 1958~1963년 2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다. 국내에서도 CF와 영화 삽입곡으로 유명한 ‘유 민 에브리띵 투 미(You Mean Everything to Me)’,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 등이 러브 스토리의 가사를 입고 무대에 흐른다. 남경주와 전수경은 이야기하는 도중 음악에 빠져 눈을 살짝 감은 채 가사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음악에 대해 묻자 바로 “캬~!” 하는 감탄사를 내지른다.
“음악이 이 작품을 선택한 큰 이유이기도 해요. LP판에 바늘이 살짝 긁히는 소리 같이 아날로그적인 작품이에요. ‘그리스’ 초연 때 우리가 1대 댄과 리조를 연기했었는데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며 한창 디지털 사운드가 인기였죠. 그런데 그때 오히려 밴드의 락앤롤을 라이브로 무대에 올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엔 생소한 아이디어였기에 ‘무슨 소리냐’는 꾸중을 들었는데, 굉장한 히트를 쳤어요. 그런 생생한 음악이 요즘엔 부족한 것 같아요. 댄스 위주로 음악이 이뤄지고 자극적인 가사도 많죠. 이 가운데 부드러운 멜로디에 서정적인 가사를 입은 ‘오! 캐롤’의 음악들은 중년 세대에게는 흘러간 추억을, 현 세대에게는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몸소 느꼈어요.” (남경주, 전수경)
사랑을 노래하는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장르 자체로는 사람들에게 “저거 내 이야기”라며 큰 공감을 줄 수 있다. 풋풋한 첫사랑부터 진한 사랑과 가슴 이별, 그리고 또 다시 시작하는 사랑까지,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하며 산다. 하지만 공감이 큰 만큼 식상할 수 있다는 함정도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다 똑같은 거 아냐?” 하고. 여기에 남경주와 전수경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관객들은 한 배우가 어떤 배역을 맡았을 때 그 배역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이 배우가 어떻게 표현하고 보여줄지 궁금해 해요. 남경주가 연기하는 허비, 그리고 전수경이 연기하는 에스더,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을까요? 무대 위에서 그간의 경험들을 배역에 녹아내고, 여기서 공감 요소를 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죠. 또 배우들만큼 사랑의 색깔도 다양해요. ‘맘마미아!’가 청정 지역 그리스섬 여행을 가는 듯한 사랑이라면, ‘오! 캐롤’은 편의성이 갖춰진 마이애미 리조트를 놀러가는 듯한 사랑이죠. 크림소스 파스타를 먹느냐, 알리올리오를 먹느냐 그런 느낌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둘 다 맛있는 파스타이지만 맛은 확실히 다르죠.” (남경주, 전수경)
‘오! 캐롤’에서 다른 작품에서 보여줬던 사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이들에게 매력 포인트를 묻자 “우리는 자체발광 매력 덩어리랍니다”라며 크게 웃었다. ‘매력 덩어리 커플’ 남경주, 전수경의 호흡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11월 19일 개막하는 뮤지컬 ‘오! 캐롤’에서 베일을 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