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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상 골프 세상만사] 대통령은 ‘룰 무서운’ 골프를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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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0호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2016.11.21 09:31:54

(CNB저널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젊었을 때 나는 골프장에서 꽤 까다로운 사람으로 불렸다. 동창생들끼리 내기를 할 때도 룰 적용이 엄격했고, 시각장애인들에게 골프를 지도할 때도 ‘안 보여서 못 치는 것은 용서해도 늦게 치는 슬로우 플레이는 용서하지 못한다’는 원칙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니까 어떤 시각장애인은 “내가 이러려고 골프를 배웠나?”라고 탄식을 했고, 나는 “싫으면 차라리 그만두라”고 했다. 내가 강조한 것은 당신들이 안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골프장에서 슬로우 플레이를 해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면, 당신들의 후배들은 아예 이런 기회를 얻지도 못할 테니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골프를 계속하라고 했다.

동생과 라운드하다 티격태격한 적도 있었다. 재미로 1타당 1000원짜리 작은 내기를 했다. 파 5홀에서 동생의 세컨샷이 물을 건너지 못하고 빠졌는데, 그는 버기를 타고 물을 한참 건너가서 페어웨이에 볼을 던져 놓고 플레이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룰을 어기느냐? 최소한 동의를 구해야 되지 않느냐?”고 따졌더니, “캐디가 건너가서 치라고 권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편히 치는데 왜 유독 형만 눈에 불을 켜고 따지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런 골프는 못 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너와 골프 칠 때는 대충 치겠지만, 딴 데 가서 네가 망신을 안 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나는 약 20여 년 전에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모 클럽 챔피언을 포함한 고수들과 라운드 했는데, 파4홀의 세컨샷이 그린에 닿지 못하고 병행 해저드에 빠졌다. 캐디가 카트에서 볼을 꺼내 플레이할 지점보다 20여 미터 앞의 평평한 곳에 볼을 던져 주었다. 원래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려다가 진행에 누가 될까 봐 캐디가 던져 놓은 곳에서 그냥 쳤다. 홀아웃하고 다음 티잉그라운드로 가는데, 클럽 챔피언이 나에게 충고했다. “룰 공부 좀 해야겠네요.” 그때의 창피함을 잊을 수가 없어서 각종 룰 북을 다 읽고, 사례도 많이 연구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골프 신문에 2년 동안 룰과 에티켓 칼럼을 연재하게 됐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불통령’
상대 배려와 엄격한 규칙의 골프 배웠다면…

지지율이 5%로 하락해도, 100만의 국민이 촛불 집회로 퇴진을 외쳐도 별로 흔들리지 않는 대통령은 대단히 멘탈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달리 이야기하면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초지일관 불통령임이 틀림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의적인 가치 척도를 가지고 있다. 전임 대통령을 나쁜 대통령이라고 칭했고, 올바른 일을 하던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자리에서 쫓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그 사람 아직도 있느냐?”고 끝까지 추적해 아예 공직의 끈을 끊어버린 집요한 인물이다.

▲11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3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자기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오히려 대통령은 무서운 레이저빔 눈총으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서 아예 반대나 불평을 틀어막는 엄청난 독재력이 있다. 그래서 아무도 제대로 충고하지 못한다.

나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가 좋아했던 골프를 딸에게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보통 골프에는 심판이 따로 없고 플레이어들이 룰과 규칙을 바탕으로 자율적인 진행을 한다. 골프는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그 규칙 적용도 엄격하다. 보통 자기의 단순한 실수인 경우 1벌타를 부과 받지만, 상대에게 누를 끼친 경우나 고의적인 경우에는 한 타를 더한 2벌타를 부과 받는다. 다른 운동 경기와는 차별화 돼 늘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가운데 플레이하니 골프는 국제적인 신사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만약에 대통령이 골프를 쳤더라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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