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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치유의 미술] 작가는 그리며 치유받고, 관객은 보면서 치유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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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12.12 10:16:25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어느덧 12월이다. 이렇게 한 해가 또 지나간다. 1년 365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 화남과 즐거움 등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다. 언제나 행복함만을 느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재해, 환경오염에서부터 인간 존엄성의 상실, 인간관계의 단절에 이르는 많은 부작용들이 생겨났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존재한다.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거창한 사회적 이슈를 말하지 않아도, 각자 자신의 하루만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얼마나 상처받고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지 예상할 수 있다. 발전과 진보에 집중하는 시대에 대한 자기반성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들은 모두 각자가 세워놓은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대중매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힐링(healing), 웰빙(well-being)과 같은 단어들은 현대인들의 바람과 욕구를 대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치료)가 주목받고 있다. 엄밀히 말해 치료는 질병이나 장애 등을 고쳐주는 것이고 치유는 심적 편안함과 안정감까지 회복시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자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접근이고, 치유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접근에 가깝다. 예술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심리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야기되어왔다. 그 중에서 미술은 언어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복잡하고 섬세한 심리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로 여겨져 왔다. 상처받은 내면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림 그리기를 치료의 방법으로 선택했던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의 시도는 많이 인용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쿠사마 야요이, ‘호박(Pumpkin)’, 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Urethane Paint, 200 x 220cm, 2010. 사진제공 = 더줌아트센터

미술로 자신의 마음 상태, 감정, 갈등과 고통, 트라우마(trauma) 등을 밖으로 표출하고 전달하는 것은 분명 효과가 있어 보인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미술을 통한 자기 치유라는 주제에서 가장 익숙한 작가이다.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일그러지고 과장된 형상들, 두껍게 바른 물감은 그의 심리적 불안과 고통, 고뇌가 얼마나 힘든 것이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고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뭉크(Edvard Munch) 역시 어린 시절 겪었던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 아버지의 우울증으로 인한 불행, 그로 인해 신경쇠약과 정신분열증에 이른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작품에 투과했다. 최근 국내에서 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소아마비, 전차 사고,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수차례의 수술들, 다리 절단, 유산과 불임,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불륜 등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고통을 작품에 쏟아냄으로써 자기 치유를 이루어냈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성장 과정에서 받았던 학대, 신경쇠약, 여성으로서 경험했던 차별에 대한 분노와 상처를 다트(dart)를 던져 완성한 다트 초상화, 물감 주머니를 총으로 쏘아 즉흥적인 물감의 흔적을 남긴 슈팅 페인팅(shooting painting)에서 표출시켰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후 그녀는 나나(Nana) 시리즈에서 인종, 육체적 특성, 사회적 지위로부터 자유로운 여성, 삶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인간을 표현할 수 있었다. 춤을 추는 풍만한 육체의 여성상은 상처를 극복하고 삶의 기쁨을 체험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여성억압을 물감 쏘기-터뜨리기로 해소한 드 생팔
강박신경증을 물방울과 호박으로 이겨낸 쿠사마  
     
한편 지난 칼럼에도 등장했던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는 미술을 통한 자기 치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10세 경부터 강박신경증으로 인한 환각과 환청을 경험했던 쿠사마는 자신을 둘러싼 환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공포를 지워내기 위해 물방울무늬(polka dot), 그물망(net), 점(dot) 등을 그렸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치유하기 위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체의 퍼포먼스들을 진행했다. 세상을 치유하겠다는 그녀의 목표는 공공조각에서도 잘 나타난다. 1990년대 이후 시작된, 물방울무늬가 가득한 꽃과 호박 형상의 대형 조각들은 동화와 환상의 나라를 꿈꾸고, 자유로운 동심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여 감정의 정화를 이끌어낸다.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녀의 상징이 된 호박(Pumpkin) 시리즈는 소외받은 존재들에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갖는 그녀의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쿠사마는 ‘호박이 못생기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단어이지만 나는 호박에서 단단한 정신적 균형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강박신경증 환자이자 아시아 여성으로서 소외받았던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다른 존재들을 포용하게 된 것이다.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작품 ‘나의 침대(My Bed)’(1998)의 주인공이기도 한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역시 성폭력과 인종차별, 비정상적인 가족관계에서 온 상처를 담아내는 자기고백적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기애를 되살려낸다. 사실 우리의 기대(편견)와 달리 에민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렇게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특히 그녀의 아플리케(appliqué: 천을 잘라서 깁거나 이어붙이는 방법) 작업들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의 불안정한 생활, 친구의 죽음 등이 고스란히 담겨 관객과 진솔한 소통과 공감을 이뤄낸다.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표현함으로써 치유를 이뤄낸 작가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미술을 통한 치유에는 관람자로서 작품을 경험하며 치유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유사한 감정이나 충동 등을 느끼고, 감정이입을 하여 대리만족을 경험하거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내적, 외적 상처와 억압을 받고 살아간다.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치유의 해법들이 있다. 그 중 하나로 미술도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힘들고 지친 누군가의 마음을 미술 작품이 어루만져 주길 기대해본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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