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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에서 동래온천행 버스 만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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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5-516호(신년)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12.26 10:05:51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의 도시

이미 17세기 후반에 개발이 시작된 이르쿠츠크는 350년 된 유서 깊은 도시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교회, 그리고 바이칼호로 유명한 이르쿠츠크는 북위 52도, 인구 59만 명의 도시다. 인근 위성 도시까지 합하면 광역으로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큰 도시다. ‘동쪽으로 난 창문’이라는 말처럼 이르쿠츠크는 러시아가 극동과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고, 유배 와서 살던 정치범들이 도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데카브리스트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데카브리스트는 1825년 니콜라이 1세의 황제 대관식을 거부하며 혁명을 일으킨 러시아 개혁파 장교 집단이다. 12월에 거사를 일으켰다고 해서 영어로는 디셈브리스트(Decembrist)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화적으로 척박한 시베리아에 서구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귀족 장교들까지 보태어져 문화의 향기를 듬뿍 불어넣은 덕에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명칭까지 얻은 도시다.

중국 상인들

이 도시에도 한국산 중고 버스가 즐비하다. 한글 행선지 안내판이나 광고판을 그대로 붙인 채 달리는 모습은 또 다른 한류의 현장이다. 아침 공기가 쌀쌀하니 여기는 이미 가을이 온 듯하다. 중앙시장은 중국 상인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이곳에 중국 상인들이 진출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 등 생활 용품들이 거래됐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이미 이 땅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중국인들의 침투력은 거침이 없다.

바이칼 가는 길

이르쿠츠크 첫 방문지는 바이칼 호수로 정했다. 가슴이 뛴다. 시외버스 터미널을 향해 걸어간다. 어느 거리를 가도 흔하게 만나는 다양한 양식의 목조 건축물들이 아름답다. 이른바 이르쿠츠크 바로크 건축은 현란한 문양을 비롯해서 선명한 색채로 단장한 예술미 넘치는 외형 장식으로 유명하다.

그런 거리를 걷다 보니 가깝지 않은 시외버스 터미널에 금세 닿는다. 리스트비양카(Listvyanka)행 미니버스는 앙가라강 언덕과 호안을 끼고 빠른 속도로 달린다. 한 시간 쯤 달렸을까? 전나무 숲이 끝나니 탁 트인 만(灣)이 나타난다. 드디어 바이칼에 다다른 것이다. 타타르어로 바이칼은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이다. 바이칼에서 앙가라강이 갈라져 나오는 지점쯤에 위치한 바이칼 생태박물관에서 버스를 내렸다. 앙가라강은 바이칼에서 빠져나온 뒤 근처 여러 강을 모아 예니세이강에 합류한다.

박물관 마당에는 심해 잠수정이 전시됐다. 1976년 캐나다 제작, 3명이 승선하는 잠수정은 2000미터 깊이까지 80시간 연속 잠수할 수 있다. 박물관에는 바이칼의 지질, 지형, 생물, 수심과 수온, 학술과 탐험에 관한 전시물들이 가득하다. 바이칼에 서식하는 어종을 담은 수족관도 볼만 한데 그중 바이칼 고유의 물고기인 ‘오물’과 바다표범이 특히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바이칼 호반의 휴일 풍경.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바이칼은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이다. 사진 = 김현주

▲이르쿠츠크 시내버스에서 한글 행선지 안내판을 발견했다. 이것도 한류의 현장일까? 사진 = 김현주

지구 표면 담수의 20%

바이칼(Baikal)은 거대한 담수호다. 너무나 거대해 담수호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최대 수심 1637m, 폭 27~80Km, 길이 630Km로 면적도 면적이지만 깊이 때문에 엄청난 양의 물을 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 5대호의 물을 모두 합친 만큼의 수량을 담고 있다면 설명이 될까? 게다가 바이칼은 해발 500~600m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거대한 용기에 호숫물이 담긴 형국이다. 바이칼호 하나만으로 지구 표면 민물의 20%를 차지한다.  

바이칼 호반 풍경

박물관 뒤 숲속 길을 걸으며 바이칼 원시림을 체험한다. 군데군데 만들어진 전망대는 다양한 호수 풍경을 선사한다. 9월은 바이칼의 만산홍엽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즌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4Km 정도 떨어진 리스트비양카 시내는 작은 백사장과 호텔, 식당,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유원지다.

오늘 늦여름 휴일의 태양을 즐기러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다. 호숫가에 내려가 보니 그냥 마셔도 좋은 만큼 물이 깨끗하다. 오래 전 캐나다 슈피리어호(Lake Superior)의 북안(北岸)에서 호수의 깨끗한 물에 놀라 일부러 마셔 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투명하다. 시계 40m의 초일급수다. 한 시간 운행하는 유람선에 올라 호안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많은 산자락들이 호수로 뻗어 내려오는 모습이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지형을 확인하게 해 준다.

▲이르쿠츠크는 19세기 말에 이미 20여 개의 대형 교회가 있었을 정도로 교회가 많은 도시다. 도시 외곽에 있는 카잔 교회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사진 = 김현주

▲바이칼은 거대한 담수호다. 바이칼호 하나만으로 지구 표면 민물의 20%를 차지한다. 사진 = 김현주

다인종 도시

도시로 돌아온다.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 섭씨 14도였던 기온이 섭씨 25도의 늦여름 날씨로 바뀌었다. 모든 시민들이 다 쏟아져 나온 듯 거리는 붐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가 있는 중앙시장 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러시아인, 몽골인, 중국인, 부리얏트(Buryat)인 등 다인종 도시 이르쿠츠크의 면모를 유감없이 즐긴다. 나도 그들에 섞여 잠시 이르쿠츠크의 시민이 돼 본다. 거대한 중앙시장은 물건으로 넘친다. 아시아 대륙 이 깊은 곳까지 도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들어와 산더미를 이뤘을까?


6일차 (이르쿠츠크 → 울란우데)

소비에트식 아파트 vs 민영 아파트

오늘은 먼저 시내 동쪽 끝 수카체프(Sukachev) 저택으로 향한다. 19세기 이르쿠츠크 시장의 저택에서 시베리아 목조 건물의 진수를 맛본다. 변방이지만 당시 귀족들이 누렸던 생활상 또한 엿본다. 순전히 목조로 지어진 건물 본관과 부속 건물 이외에도 족히 수천 평은 될  듯한 정원까지 가진 광대한 저택이다. 날이 선선해서 걷기에 그만인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내려온다.

이르쿠츠크 어느 거리도 마찬가지이듯 100년 넘은 목조 건물과 사회주의식 좁은 아파트, 그리고 근래 들어선 민영 아파트들이 어색하게 혼재한다. 낡은 목조 건물 중에는 아직도 사람이 사는 곳이 많다.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는 1인당 9평방미터로 주거 면적에 제한을 뒀다고 한다. 4인 가족이면 36평방미터, 즉 11평 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만 허용됐다. 서민들은 아직도 그런 곳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중산층들은 시내 요지에 계속 건설 중인 고급 민영 아파트를 채우고 있으니 극명한 빈부 차이를 확인한다.

▲이르쿠츠크의 여느 유명 목조 건물과 마찬가지로 유럽 하우스는 창틀과 지붕, 그리고 추녀의 장식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사진 = 김현주

화려한 목조 건축물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으로 되돌아오니 유럽 하우스(House of Europe)가 있다. 나무 울타리 안에는 이르쿠츠크 방문자 센터와 자매도시 광장, 시민생활 박물관(Museum of City Life)과 차(茶) 박물관이 함께 있다. 이르쿠츠크의 여느 유명 목조 건물과 마찬가지로 유럽 하우스는 창틀과 지붕, 그리고 추녀의 장식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추방된 예술가와 장인들이 망명 생활의 무료함과 울분을 달래기 위해 지극 정성을 기울여 건축했음을 짐작케 한다.

티 루트(Tea Route)

자매도시 광장에는 한국 강릉에서 보내온 조형물들이 있어서 눈길을 잡는다. 차 박물관에도 눈여겨 볼만한 전시물들이 있다. 이름하야 티 루트(Tea Route) 지도다. 중국에서 몽골을 건너 이르쿠츠크, 톰스크, 노브고로드, 그리고 모스크바와 그 너머 유럽까지 차가 이동한 경로를 보여준다. 육로 이동 과정에서 이르쿠츠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깨닫는다. 유럽 하우스 옆에는 볼콘스키 하우스(Volkonsky House)가 이제는 데카브리스트 기념박물관이 돼 서 있다. 19세기 데카브리스트들의 사교 활동 중심지 중 하나였던 곳이다. 

▲자매도시 광장에 한국 강릉에서 보내온 조형물이 있어서 눈길을 잡는다. 사진 = 김현주

교회의 도시

이르쿠츠크는 19세기 말에 이미 20여 개의 대형 교회가 있었을 정도로 교회가 많은 도시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교회만을 보는 데도 며칠은 족히 걸릴 것 같다. 그중에서 나는 도시 외곽에 있는 카잔 교회(Our Lady of Karzan)를 찾는다.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교회는 걷는 수고를 보상해 주고도 남는다. 내부는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교회에서는 신앙심도 저절로 우러나오는가 보다. 평소에는 인색했던 기도를 저절로 올린다.

근처를 지나가는 트람바이(tram bay)를 잡아타고 시내로 돌아온다. 카를라 막사(Karla Marksa) 거리를 중심으로 시내 중심가가 이어진다. 중앙시장과 카를라 막사를 잇는 보행자 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거리 악사와 거리 미술가들을 만날 수 있고 각종 음식점도 많은 화려한 거리가 300m쯤 이어진다. 여성들의 현란한 옷차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러시아의 알래스카 진출

오후 들어 내리기 시작한 비가 멈출 줄 모른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냥 비를 맞으며 걷는다. 버스 터미널 쪽 카를라 막사 거리가 시작하는 지점에는 이르쿠츠크 역사박물관이 새 단장을 하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고학 발굴품 전시를 비롯해 17세기 유럽인의 진출과 도시 성립, 모피 무역, 18세기 알라스카 진출 등의 근현대사를 상세히 소개한다.

당시 이르쿠츠크는 동방 진출의 거점으로서 러시아-아메리카 회사가 있었다. 1741년 피요트르 대제의 지시로 베링 해협과 알류샨(Aleutian) 열도를 건너 북미 대륙 알래스카까지 진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는 1867년 러시아가 경영을 포기하고 미국에 양도함에 따라(당시 가격 720만 달러) 미국의 영토가 된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영어 캡션이 없는 것만 빼면 아주 훌륭한 박물관이다.

▲키로프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 분수대를 사범대학, 시청사, 앙가라 호텔 등 대형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 = 김현주

키로프 광장

비가 오는 도심을 걸어 키로프(Kirov)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 분수대 주변은 사범대학, 시청사, 앙가라 호텔 등 대형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강변으로 나가니 꺼지지 않은 불꽃이 이 지역 출신 전몰자들의 영혼을 기리며 타오르고 있다. 주변으로는 하얀 외벽의 석조 건축물인 스파스카야(Spasskaya) 교회와 시베리아 바로크 양식의 진수 바카야 블레니어 사원이 대비되는 독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울란우데(Ulan Ude)행 열차로 도시를 벗어난다. 열차는 밤 10시에 출발해 앙가라강을 따라 남행한다. 슬류디양카(Slyudyanka)를 지날 즈음부터 열차는 바이칼 호반을 매우 가까이 두고 달리기 시작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구간인데 이미 어두워져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르쿠츠크에서 울란우데까지는 456km, 8시간 30분 걸리지만 이제 이 정도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바깥 기온은 14도까지 내려가 있지만 오히려 열차 안은 쾌적해서 잠을 이루기 좋다. 열차는 밤사이 바이칼 호수의 남쪽 호안을 돌아 아침 6시 40분 울란우데에 정시 도착했다. 가을을 앞당기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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