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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울란바토르] 몽골 말 뺨때린 한국 봉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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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8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1.16 09:29:46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9일차 (울란바토르)

몽골의 겨울 추위

지금은 찬란한 늦여름의 정취로 초원이 반짝이지만 이미 초원 한켠은 누런빛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짧은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멀지 않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몽골을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한겨울 1월, 2월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새벽 최저 기온이 보통 영하 35~45도이고 한낮에도 영하 20도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 단연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그래도 난방이 되고 방풍방한이 되는 도시 주택에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홑겹 천막집 게르에서 한 겨울 다섯 달을 지내는 유목민들의 생활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몽골 문자 vs 키릴 문자

울란바토르를 여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다. 거리 표지판과 음식점 메뉴 등  글자 또한 러시아 키릴 문자로 표기돼 있어서 헷갈린다. 물론 몽골 고유 문자도 있다. 수천 년 사용해 오던 문자를 소비에트 시절 키릴 문자로 전환했으니, 몽골 독립의 은인 러시아와 몽골의 관계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요즘은 조금씩 몽골 고유 문자 사용이 늘고 있다지만 여행자에게는 오히려 키릴 문자보다 더 복잡할 뿐이다. 몽골어는 한국어와 같은 우랄알타이어에 속하지만 발음은 흉내 내기도 어려울 정도여서 웬만한 외국인들은 1년 이상 배워야 겨우 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다. 다행히 가끔은 거리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을 만나서 도움을 받는 일도 있다. 해마다 수만 명의 몽골인이 유학, 국제결혼, 이주노동, 혹은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을 찾기 때문이다.

▲테를지 국립공원. 테를지는 넓은 초원 사이로 강이 여러 갈래 흐르는 물의 낙원이다. 사진 = 김현주

한국인과 비슷한 몽골인의 용모

몽골인은 생김새가 한국인과 무척 비슷하다. 현지인이 내게 길을 물을 정도로 몽골인과 한국인은 생물학적 유사성이 높으니 반갑고도 놀랍다. 몽골인 체격은 다소 큰 편인데 체격이 아주 큰 씨름선수 스타일도 드물지 않다. 강호동 같은 사람은 여기 오면 아주 제격일 것 같다. 그런데 몽골인 중에는 비만이 많다. 또한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이 많은데 육식 위주의 식습관 때문이다. 추운 날씨 때문에 채소가 귀한 것도 그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식습관에 한 몫 한다.

난개발로 신음하는 도시

몽골의 도로는 참으로 어수선하다. 게다가 겨울 동안 망가진 도로를 고치지 못해서 곳곳이 웅덩이다. 도로는 어디를 가도 먼지로 덮여 있으니 주변의 아름다운 초원 풍광을 해치고 만다. 동서로 길게 뻗은 도시는 꽤나 멀리 외곽까지 이어지고 지금도 계속해서 외곽에서는 아파트와 주택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대책 없이 팽창하는 전형적인 후진국 도시 팽창 패턴은 온갖 문제를 낳는다.

그중에서도 겨울철 대기오염이 심각하다고 한다. 주로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석탄에서 발생하는 오염이다. 도시 외곽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 발전소도 대기오염의 주범 중 하나다. 1년에 300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시티 오브 블루 스카이(City of Blue Sky)’라고 자랑했던 울란바토르가 겨울에는 회색빛으로 변한다니 안타깝다. 결국 대기 오염, 주택, 그리고 교통 문제까지 전형적인 난개발 도시의 삼중고(三重苦)가 모두 나타나는 셈이다.

몽골 초원에 발 딛다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70km 떨어진 테를지(Terelji) 국립공원에 가고 싶은데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 버스 시간에 도저히 맞출 수 없어서 무리해서 차량을 섭외했다. 사방을 둘러싼 마른 산, 초원 곳곳에 게르가 흩어져 있는 풍경에 감탄한다. 게르는 실제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은 관광 휴양지라서 관광객 숙박용 게르도 많다. 나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게르 숙박을 하지 못하지만 대개 1박 3식에 미화 35~40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좀 비싼 게르는 샤워시설까지 있다고 한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간단 수도원이 있다. 1930년대 소비에트의 광기어린 종교 박해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수도원이다. 사진 = 김현주

▲공항 가는 길에 신시가지 아파트 건설 현장이 보인다. 난개발로 초원이 신음하는 게 느껴진다. 사진 = 김현주

자연이 모두 내 것

거북을 닮은 바위, 거북바위(turtle rock)에 도착하니 주위 풍경이 점입가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드디어 테를지 초입이다. 여기는 캠핑 지역이 따로 없다. 어디에서든 노숙(露宿, bivouac)하거나 텐트를 치면 그곳이 바로 야영지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어디든 차를 몰고 들어가면 곧 길이다. 그런 뜻에서 한국산 기아자동차 1톤 봉고 소형트럭은 이곳 유목민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다. 어떤 이들은 소형 트럭이 유목민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고 찬양한다. 크기가 적절하고 운전이 쉽고 힘이 좋아서 가축을 싣기에도 좋고 심지어 게르 천막도 무난히 실을 수 있다고 한다. 봉고 트럭이 없던 시절에는 덩치 큰 러시아제 군용 트럭이 전부였다고 한다. 

낙원이 따로 없다

테를지는 넓은 초원 사이로 강이 여러 갈래 흐르는 물의 낙원이다. 초원에서 이렇게 수량이 풍부한 지역을 만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흐르는 물위로 드리워진 나뭇가지와 물 위에 비친 주변 산 그림자가 선경(仙境)을 만든다.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고 무엇이랴. 풍광이 빼어난 이곳에는 몽골 유일의 5성급 호텔도 있고 골프 코스도 있다. 트레킹 이외에도 한 시간에 미화 5~10 달러만 주면 말을 빌려 초원을 유유자적 거닐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초원 관광의 매력이다. 


10일차 (울란바토르)

한류가 압도하는 거리 모습

오늘 일정은 시내 탐방 후 자정 무렵 서울행 항공기 탑승이다. 도시라고 해봤자 열심히 걸으면 한 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는 규모라서 느지막이 탐방길에 오른다. 거리는 온통 한국풍이다. 서울 거리(Seoul Avenue)가 도시 중심 거리를 형성하는가 하면 한국 음식점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한국 슈퍼마켓, 한국 호텔, 한국 가라오케가 즐비하다. 아시아 대륙 깊숙한 이곳에도 이렇게 한류가 넘치고 있다.

▲수흐바타르 광장 남쪽 입구에는 수흐바타르의 기마상이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간단 수도원

평일 낮인데 거리는 자동차로 메워져 움직일 줄 모른다. 도심이건 외곽이건 차량 홍수다. 국영 백화점(National Department Store)에서 15분쯤 걸었을까? 도시를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간단 수도원(Gandan Monastery)이 있다. 1930년대 소비에트의 광기어린 종교 박해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수도원이라서 희소가치가 높다.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크고 작은 탑들이 본전(本殿)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예쁘다. 

도시 탐방

서울 거리(Seoul Avenue) 부근 국영 백화점을 마주보는 지점에는 육각형 정자 ‘서울정’이 서 있고 그 뒤 광장에는 국립 서커스 극장이 있다. 게르 형상의 노란 지붕이 무척 자극적이다. 몽골의 상징적 건물 중에는 이처럼 게르 형상을 한 것이 많다. 서울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걸으니 곧 수흐바타르 광장 부근이다. 1921년 중국과 겨루어 독립을 쟁취한 홍군(Red Army) 지도자이자 독립 영웅 담딘 수흐바타르(Damdin Sukhbaatar)의 이름을 딴 광장이다.

볼 것 많은 초이진 사원

이 부근에는 또한 울란바토르의 중요한 건축물들이 많다. 국립 드라마극장, 국립과학원, 중앙우체국, 국립 오페라극장,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높다는 스카이시티(Sky City) 등이 그것이다. 국립 드라마극장에서 큰길 건너 요지에는 한국학 정보센터가 있어서 여행자의 관심을 끈다. 초이진 사원(Choyjin Temple)도 빼놓을 수 없다. 1938년까지는 실제로 수도원으로 쓰였던 곳이지만 이제는 박물관이 돼 라마 불교의 역사와 예술의 결정체들을 보여 준다.

▲뜻밖에 울란바토르에서 서울의 거리를 마주했다. 몽골에서 한류를 상징하는 곳이다. 사진 = 김현주

수흐바타르 광장

드디어 광장 한복판이다. 광장 남쪽 입구에는 수흐바타르의 기마상이 서 있다. 광장을 에워싸는 건물 중에서 북쪽으로 들어선 의사당 건물은 거대하다. 건물 정중앙, 현관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들어선 초대형 칭기즈 칸 좌상은 몽골의 상징물 중 단연 으뜸이다. 좌상 앞으로 여러 쌍의 신혼 커플들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신랑, 신부는 서양식 웨딩 복장인 반면 양가 어른들은 두루마기식 전통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두루마기식 전통 복장은 체격이 비교적 큰 몽골인에게 잘 어울린다.

국회의사당 뒤 정부청사에서 길 건너 서쪽에는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Mongolia)이 있다. 선사시대, 고대 유목국가 시대, 몽골제국 시대, 청나라 지배 시기, 사회주의 시대, 그리고 민주주의 시대 순으로 정리해 놓은 체제가 효율적이다. 고대 유목국가 시대 전시실은 흉노족과 돌궐족(투르크)에 관한 기록을 많이 담고 있어서 몽골족은 두 부족을 자신들의 먼 뿌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돌궐족 시대 전시물은 터키 정부의 지원으로 꾸며졌다는 안내문이 몽골과 터키의 오랜 인연을 말해 준다.

열악한 도로 인프라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6시 30분이다. 오늘밤 자정 무렵에 서울행 항공기가 있으니 시간은 아직 많지만 딱히 할 일이 남지 않았거니와, 불확실한 도로 사정을 감안해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 가는 외길은 극도로 혼란하다. 다리 위에서 발생한 접촉사고로 수십 대의 차량이 발이 묶여 있다. 정상적으로 소통돼도 도로가 차량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이런 해프닝은 치명적이다. 시간을 아주 넉넉히 잡고 나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속이 탈 뻔했다. 도심 도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외곽까지 무질서한 몽골 도로의 현실이 답답하다.

▲국회의사당 뒤 정부청사에서 길 건너 서쪽에는 국립박물관이 있다. 선사시대, 고대 유목국가 시대, 몽골제국 시대, 청나라 지배 시기, 사회주의 시대, 그리고 민주주의 시대 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사진 = 김현주

어디에든 건설 현장

공항 주변에도 수백, 수천 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 중이다. 건설 현장을 들고 나는 대형트럭들이 먼지를 날리며 황량한 들판을 오간다. 마구잡이 개발로 초원은 몸살이 날 지경이다. 서울행 대한항공 중대형 여객기는 만석이다. 한국행 승객 이외에도 일본과 미국 등 제3국행 환승 승객들도 많다. 인천까지는 1226마일, 3시간 30분 걸린다. 참 가까운 길이다. 여행이 무사히 끝나감에 안도하며 대합실에 앉아 항공기 출발을 기다린다. 


11일차 (울란바토르 → 서울 도착)

시베리아의 재발견

오전 4시 인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여행이 끝났다. 이번 여행도 간단치 않았다. 의욕은 컸으나 학기말의 분주한 일들로 준비가 소홀하다 보니 진작 구입해서 모셔 놓았던 러시아어 회화 책도 챙기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장대한 시베리아 대륙을 만나 감회에 젖어 봤고, 한민족의 시원(始原)일지도 모르는 바이칼까지 가서 한국인과 DNA 구조가 비슷하다는 부랴트인을 수없이 봤다. 아직은 여전히 개척이 진행 중인 곳이지만 시베리아는 우리에게 무한한 미래 가능성의 땅임을 확인했다. 낭만의 길로만 알았던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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