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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비평] 녹즙기·체인식당의 튀는 등장에 빛바랜 ‘사임당: 빛의 일기’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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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2호 윤지원⁄ 2017.02.13 10:14:12

▲조선 중기 뛰어난 화가로 이름 높았던 신사임당을 재조명하는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사진 = SBS)


‘간접광고’라 통용되는 PPL의 원래 의미는 ‘제품 배치(Product Placement)’다. 소품으로 쓸 제품을 화면의 어디에 둘지 결정해야 하는 제작진의 창의적 고민이 PPL의 저변에 존재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PPL은 관객(시청자)의 몰입에 방해될 만큼 노골적이어서는 안 되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PPL은 제품과 이야기의 시너지를 통해 더 실감나고 풍성한 관객경험에 기여할 수 있다. CNB저널의 PPL 비평 두 번째는 SBS 드라마 ‘사임당’이다.

녹즙기·체인식당의 튀는 등장에
빛바랜 ‘사임당: 빛의 일기’ 1회

‘사임당: 빛의 일기’는 2003년 한류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대장금’의 주인공 이영애가 13년 만에 사극 드라마로 복귀한 작품이다. 세계 91개 나라에 판매되어 수익만 130억 원에 달했다는 ‘대장금’의 영광을 기억하는 이들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불우했던 장금이가 최고의 수랏간 상궁을 거쳐 훌륭한 의녀로 성장한 과정에 열광했던 시청자들이 누구보다도 이영애의 ‘사임당’을 기다려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1월 26일 시작된 ‘사임당’ 첫 회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녹록치 않았고, “첫판부터 장난질이냐?”라는 ‘타짜’의 명대사를 상기시킬 정도였다. 

▲이영애의 13년 만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사임당: 빛의 일기’는 1회 방영부터 노골적인 PPL(간접광고)로 시청자의 비판을 받았다. (사진 = 방송화면 캡처)


배치돼야 할 PPL이 화면을 잡아먹으면?

일단 ‘사임당’은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대장금’ 류의 정통 사극이 아니었다. 이영애는 현재의 미술사학자 서지윤과 조선 중기의 사임당 신씨라는 1인 2역을 연기한다. 이 정보를 몰랐던 일부 시청자는 그녀가 단발머리에 핸드백과 스마트폰을 들고 서울 도심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모습에 당황했다.

11년이나 연기를 쉬었기 때문일까? 이영애의 연기력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극중 인물 서지윤이 신사임당의 일기를 입수하는 과정이 오로지 우연에서 우연으로 이어지는 ‘무성의한’ 스토리 전개만큼 그의 연기력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사임당(박혜수)과 왕족 이겸(양세종)이 첫사랑으로 만나, 평생 사랑으로 얽매이는 관계를 설정한 것도 크게 비판받았다.

제작진은 신사임당에게 덧씌워진 현모양처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걷어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낸 위인으로 재조명하겠다고 당초 장담했다. 그러나 ‘사임당’이 보여준 남녀관계는 “수많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또 우려먹었다” “의존적 여성상만을 재탕했다”는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대장금’을 추억하며 ‘사임당’에 큰 기대를 걸었던 시청자를 특히 분노하게 한 것은 간접광고(PPL)의 남발이었다. 시청자들의 불평이 모아진 장면은 △서지윤이 시어머니(김해숙)와 외식 프랜차이즈 ‘자연별곡’에서 만나 식사하는 장면에서 “얘, 여기 음식 꽤 괜찮다”고 한 대사(김해숙) △피곤한 하루를 마친 지윤이 이영애가 광고모델인 ‘후(后)’ 브랜드의 화장품을 바르면서 “좋은 크림이라 끝까지 잘 썼다”는 식으로 언급한 것 △역시 이영애가 광고모델인 ‘휴롬’ 착즙기로 열심히 녹즙을 뽑는 장면 등이었다.

뿔난 시청자들은 ‘사임당’ 초반에 21세기 현재의 장면 비중이 높은 이유가 “PPL을 최대한 뽑아먹기 위한 속셈이었냐”며 비난했다. 시청자들의 이런 분노와 비난은 꽤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늘어난 제작비 탓에 요즘 드라마에는 노골적으로 PPL이 들어가는 것을 그러려니 하면서도, 이야기 진행부터 제대로 하면서 ‘제품 배치’를 꼼꼼히, 시청자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해나가
야지, 첫 회부터 광고성 대사들이 남발돼 흐름을 끊는다면 13년을 기다려온 대장금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비판이다. 탄탄한 이야기가 받쳐주었더라면 ‘배치가 어긋나는’ PPL에 대한 비난은 아마도 훨씬 덜 했을 것 같다.

▲서지윤(이영애 분)은 교수가 되기 위해 교수댁의 궂은일도 마다앉는 시간강사이자 시어머니와 남편을 떠받들어 모시는 워킹맘이다. (사진 = SBS)


현모양처는 녹즙기로 녹즙을 직접 짜야 한다?

노골적인 PPL 장면 중에서도 특히 녹즙 장면을 불쾌해 하는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이 장면에선 ‘자연별곡’이나 ‘후’ 화장품 장면과는 달리 대사를 통한 제품 언급은 없었다. 광고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녹즙이 늦게 퇴근하는 남편(이해영)에게 먹일 간식이었다는 점이다.

지윤은 워킹맘이다. 미술사학계의 실세인 민정학 교수(최종환)의 조교이자 교수 임용을 꿈꾸는 시간강사다. 지윤은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민 교수에게 충성을 다 바친다. 이날도 민 교수네 잡일까지 거들며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자기 분야의 커리어를 쌓아 올리기 위해 부당한 권력에 굴종하는 비합리적인 현실과 타협한 모양새다. 민 교수의 권력은 인사 권한을 가진 상급자이자 연장자이며 또한 남자라는 데서 오고, 지윤은 하급자이자 여성이라서 미술사와는 완전 무관한 민 교수 아내의 살림을 거들고, 자녀 뒤치다꺼리까지 해주면서 점수를 쌓아야 한다.

민 교수네 일을 마친 지윤은 시어머니와 아들을 챙기기 위해 달려간다.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헬리콥터 맘’이다. 아들의 출세와 손자의 성적, 그리고 며느리의 교수 타이틀까지 모두를 자신의 훈장처럼 여기고 싶어 간섭하고 강요한다. 서지윤이 교수가 되고 싶은 게 자기 성취를 위해서인지, 남편과 시어머니의 뜻에 따라서인지가 모호하다.

파김치가 될 지경은 아니더라도 하루 종일 바깥일을 보고 귀가한 지윤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대신 남편을 위한 녹즙을 열심히 만든다. 두 잔을 만들어 자기도 한 잔 마시는 것도 아니고 남편 것만 만든다. 지윤이 남편 침실까지 녹즙을 가져다 바친다. 남편은 한 모금 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주부 지윤의 모습은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그동안 신사임당에게서 걷어내려고 애써왔던 ‘유교적 현모양처’의 모습을 닮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남편과, 남편의 가족과, 아들과, 남자 교수에게 종속된, 대한민국의 여자들에게 부당하게 강요되어온 삶을 ‘대장금’ 이영애가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포스터. (사진 = SBS)


PPL에도 연출이 필요하다

제작진은 드라마 ‘사임당’에 대해 “위대한 율곡을 낳은 어머니라는, 남자에 종속된 신사임당이 아니라 그 자신이 조선 중기 중국까지 명성을 떨쳤던 뛰어난 화가였다는 신사임당에게 정당한 이미지를 찾아내주고, 21세기의 지윤 역시 자신을 가로막는 부당한 권위와 차별의 장벽을 뛰어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30부에 걸쳐 펼쳐내겠다”고 했다. 따라서 ‘남자에 종속된 현모양처’라는 부정적인 모습은 지윤 스토리의 출발점으로,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설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드라마의 이러한 전개 방향, 캐릭터의 설정, 작가의 의도 등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데, 특히 PPL 장면에서 실패했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주제 전달을 위해 ‘아내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녹즙을 만들어 주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그게 뭔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매끈한 배경에 이영애와 착즙기와 야채가 중앙을 차지하는 구도를 볼 때 시청자는 ‘지윤의 곤경’보다는 ‘PPL이군’을 먼저 느끼지 않을수 없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그간 ‘태양의 후예’나 ‘도깨비’ 등 인기 드라마에는 항상 ‘과도한 PPL’ 논란이 있었다. 중요한 장면에서 불필요한 PPL로 인해 몰입에 방해를 받은 시청자들은 특정 소품이 조금만 부각돼도 PPL을 의심한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이영애는 21세기의 서지윤(왼쪽)과 조선시대의 신사임당을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사진 = 방송화면 캡처)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광고산업활성화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PPL에 대한 여러 연구에서 수용자가 PPL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2011년 DMC미디어가 수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PPL에 대한 긍·부정 평가 항목에서 부정적인 편이라거나 매우 부정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는 13.9%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PL이 드라마 몰입을 방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동의했다. 즉, 다른 매체를 통한 광고형식과 비교했을 때 PPL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지만, PPL이 이야기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불만이라는 결론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모든 장면이 마찬가지지만, PPL 장면에도 연출자의 의도가 담겨야 한다.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해선 안 되는 장면에서라면 PPL을 연상시킬 수 있는 작은 요소까지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영화의 도입부, 드라마의 첫 회는 이후의 에피소드를 이끌고 가는 기관차 역할이다. 그만큼 중요한 장면들로 가득 채워야하니, 몰입을 깨는 PPL은 배제하는 노력도 고려해볼만 하다. 녹즙을 갖다바치는 행사도, ‘자연별곡’에서 맛있게 식사하면 장면도, 첫 회가 아니라 중간이나 후반쯤에 적절하게 나왔더라면 배치가 그럴듯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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