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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캄차카] 머나먼 땅 한뼘도 소홀히 않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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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2.13 09:43:33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가깝고도 먼 러시아

밤 9시, 서울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향한다. 항공기는 1시간 40분 걸려 블라디보스토크에 닿는다. 600마일이 채 안 되는 곳에 러시아 땅이 있으니, 우리에게 러시아는 가깝고도 먼 나라다.


2일차  (블라디보스토크 →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도착)

공항 터미널 노숙

입국 수속을 마치니 자정 지나 0시 30분. 공항터미널 바깥에 나가보니 밤공기가 차다. 캄차카행 항공기는 아침 7시에 출발하므로 숙소를 찾아 멀리 나가기에는 애매한 시각이다. 공항터미널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하고 적절한 장소를 찾는다. 다행히 나 같은 형편의 러시아인이 여럿 있어서 의지가 된다. 

사할린행 북한 노동자

옆 게이트에서는 사할린행 항공기가 출발한다. 갑자기 1개 분대 규모의 중년 남성들이 들이닥친다. 영락없는 한국인 얼굴인데 볕에 그을린 얼굴과 흰 셔츠에 짙은 바지를 단체로 입은 모습이 낯설다. 사할린 근로현장 어딘가에 투입되는 북한 노동자들인 것이다. 애써 나의 눈길을 피하려는 것만 같다. 참으로 묘한 조우다. 참고로,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 극동러시아와 시베리아 지역에는 많은 수의 북한 근로자들이 있다. 북한 국영 고려항공(Air Koryo)이 평양-블라디보스토크 정기 노선을 운영할 정도다. 

오호츠크해를 건너

캄차카행 오로라 항공기가 드디어 이륙한다. 항공기는 곧 사할린섬 북단을 횡단하더니 오호츠크해를 만난다. 일본 홋카이도 동부 해안에서 만났던 바다 아닌가? 오호츠크해가 끝나고 얼마 안 가 항공기는 착륙 준비를 한다. 구름이 두껍게 끼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항공기는 요동도 없이 사뿐히 내려 앉아 승객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402마일, 3시간 20분 걸렸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항구. 인구 18만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는 캄차카주의 수도로, 러시아에서 가장 큰 잠수함 기지가 있는 전략적 요충이다. 사진 = 김현주

북태평양 요충

인구 18만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Petropavlovsk Kamtchatsky)는 캄차카주(Kamchatka Krai)의 수도로, 러시아에서 가장 큰 잠수함 기지가 있는 전략적 요충이다. 베링(1740 캄차카 도착), 쿡(1779), 라페루즈(La Peruse, 1787) 등 당대의 탐험가나 항해사치고 캄차카를 들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북태평양의 요충이다. 1854~1855년 크림전쟁(Crimean War) 중에는 러시아가 극동 태평양에 건설한 해군 기지를 눈엣가시로 여긴 영국-프랑스가 연합해 공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군사력과 화력, 전함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항구와 도시를 지켜냈다.

한국 중고 버스

공항 터미널을 나오니 집시 여인 두 명이 가장 먼저 다가와 구걸을 한다. 아무리 정처 없이 떠돈다지만 이들은 어쩌다 머나먼 동방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궁금해진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시내에서 북쪽 25km 지점에 있는 옐리조보(Yelizovo)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교통이 편리하다. 비행기 아니면 올 수 없는 곳이지만 일단 들어오면 시내버스 노선이 잘 발달돼 있어서 편리하다. 캄차카의 버스는 모두 한국산 중고 버스다. 시내버스, 학교버스, 학원버스 등이 한국에서 다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내를 누빈다.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휴일 풍경. 도심 작은 공원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시민들이 차지했다. 사진 = 김현주

30년 계획한 여행?

공항에서 시내까지 도로 주변은 드문드문 집이나 시설물이 있는 것을 빼고는 완벽한 냉대 원시림이다. 사실 이번 캄차카 여행은 30년 이상 계획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캄차카 반도라는 지명을 처음 접했고, 이후로는 미국 유학 시절과 그 이후, 한국과 미국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눈과 가슴에 품은 곳이다. 서울을 떠나 북미로 향하는 항공기가 동해를 건너 일본 열도를 스치고 홋카이도를 가르면 곧 발아래 펼쳐지는 거대한 땅이 바로 캄차카다.

여름이면 푸르고, 겨울이면 새하얀 저 아래에는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관심을 품어 봄 직한 일이었다. 바로 그 오래된 관심에 오늘 답하게 됐으니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2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7시간  대기를 포함해서 서울에서 17시간 걸린 가깝고도 먼 길이다.

잠시 산책을 시도했다가 곧 포기하고 돌아와 히터를 찾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겨울에는 일평균 영하 7도로서 시베리아 다른 지역보다 덜 춥다는 점이다. 난류 덕분이다. 쿠릴 열도 같은 곳은 비가 훨씬 더 많아 일조일수가 세계에서 가장 적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캄차카의 버스는 모두 한국산 중고버스다. 시내버스, 학교버스, 학원버스 등이 한국에서 다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내를 누빈다. 사진 = 김현주

남쪽 땅 갈구해 온 러시아

여기 사람들은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최소한 날씨에 관한 한, 러시아 사람들은 존경할 만하다. 영토가 방대한 만큼 열악한 기후 지역이 많지만 가리지 않고 개척해 도시와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 이래 왜 그렇게 남쪽 영토에 목을 매왔는지 알고도 남는다. 어느새 어둠이 깔린다. 여기는 러시아의 변방이지만 지구상에서도 끝자락인 것 같다.


3일차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여기에도 레닌 광장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밖부터 살펴봤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얼굴에 물을 적시는 둥 마는 둥하고 도시 탐방에 나선다. 버스를 타고 레닌 광장(Ploschad Lenina)으로 간다. 도시 중심에 거대한 레닌 동상이 온전히, 그리고 경건하게 서 있는 드문 도시 중 하나다. 레닌 광장은 해변과 닿아 있다. 아바차 만(Avacha Bay) 건너 머리에 눈을 인 채 도시를 감싸고 있는 2000~3000미터 높이의 화산들이 장엄하다. 그중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아바친스키 화산(Avachinsky, 2741m)은 아예 전체가 구름에 가려져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광장 주변에는 기념비와 동상이 유독 많아 도시의 역사적 위치를 말해 준다. 러시아 해군의 부탁으로 세계 항해길에 오른 덴마크인 베링(Vitus Bering)이 1740년 아바차 만 방문 후 놓았다는 도시 기반석(foundation stone)이 아직도 해변 공원에 건재하고 있다. 도시의 이름이 된 피터폴(페트로 파블로프스크, 베드로와 바울) 동상이 있다. 베링 기념비, 초대 군사총독 자보이코(Zavoiko) 동상, 라페루즈 기념비 등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비에트 장병 기념비는 1946년 쿠릴 열도 접수를 기념하면서 당시 작전에 참가한 장병들을 ‘쿠릴 해방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과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쿠릴열도 남부 4개 섬(일본 입장에서는 북방 4개 도서)이 그렇게 ‘해방’됐다는 뜻이다. 

▲레닌 광장 주변에는 기념비와 동상이 유독 많아 도시의 역사적 위치를 말해 준다. 사진 = 김현주

도시 탐방

광장 중앙 좋은 위치에 세운 승전 기념탑 또한 볼거리다. 북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가 치룬 전쟁의 승리를 기념한 것으로 크림전쟁(1854~1855), 러일전쟁(1904~1905), 2차 대전(1941~1945)을 묘사한 부조가 각 벽면에 새겨져 있다. 영토에 대한 집착이 철저한 러시아가 머나먼 변방의 땅 한 뼘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강한 결의의 표현으로 보인다. 광장의 남쪽 끝은 극장과 이어져 있다. 각종 문화예술 이벤트 광고 플랜카드가 자칫 우중충할 뻔 했던 광장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해준다. 그 건너편에는 캄차카 주청사를 비롯해 각종 공공건물이 이어지고 채플(chapel)과 성당도 있다. 

광장을 벗어나 남쪽을 향해 낮은 언덕길을 오른다. 앙증맞은 작은 목조 교회가 세월의 무게를 받치고 서 있다. 마침 일요일 미사 준비를 하러 교당으로 들어가는 사제와 눈이 마주쳐 가벼운 목례로 답했다. 긴 언덕 끝쯤 도달하니 오른쪽으로 아바차 만이 좁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좁은 어귀를 열어 북태평양과 만나는 아바차 만은 천혜의 항만이다. 레닌광장으로 돌아와 해변으로 나가 바닷물에 손을 적셔 본다. 난류 영향으로 오호츠크해나 인근 쿠릴 부근보다는 바닷물이 따뜻하다고 하지만 북태평양 바닷물은 역시 차다. 

▲승전 기념탑. 러시아가 북태평양에서 치룬 여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것으로, 크림전쟁, 러일전쟁, 2차 대전을 묘사한 부조가 각 벽면에 새겨졌다. 사진 = 김현주

캄차카 휴일 풍경

캄차카의 오후를 즐기러 도시 곳곳을 여유롭게 배회한다. 중심 가로를 따라 길게 남북으로 이어지는 도시 구조는 단순해서 좋다. 시내 상업 지역에는 즉석 좌판들이 섰고 도심 작은 공원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시민들이 차지했다.

시내 중심 광장에서 나도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스피커에서는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이 흘러나온다. 세계 최강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자랑스러운 러시아의 역사를 찬양하는 음악이다. 광장에서 대중음악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차라리 생경하다. 아무리 변방이라도 러시아는 러시아다.

국경 없는 중국 상인들

중앙시장을 찾는다. 이 지역 날씨 때문인지 시장은 건물 안 실내에 들어서 있다. 여행 짐에 모자를 챙기지 않은 것이 걸려 모자를 하나 사려고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린다. 머리가 큰 편인 나에게 맞는 모자를 하나 발견해 기분 좋게 7000루블(한화 1만 5000원)을 지불하고 보니 반갑게도 중국 OEM 우리나라 제품이다. 

유즈노 사할린스크,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 극동 러시아 다른 도시에서도 그랬듯이 시장 상인들 중에는 중국인이 무척 많다. 돈 될 만한 곳에는 어디든 반드시 나타나는 중국 상인들의 침투력은 역시 대단하다. 시장 상인들 중에 러시아인이 적은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하고 상품 공급선이 취약한 러시아인에게 중국 상인들은 상대하기 힘겨운 경쟁자일 것이다.

▲좁은 어귀를 열어 북태평양과 만나는 아바차 만은 천혜의 항만이다. 사진 = 김현주

캄차카 출신 고려인

시내 광장에서도 그랬고 시장에서도 느꼈지만 페트로파블로프스크는 국제화된 도시다. 러시아 백인 이외에 키르기즈인과 중앙아시아인이 눈에 많이 띈다. 머나먼 이곳까지 돈을 벌기 위해 온 이주 노동자들이다. 여기서도 돈 벌 일이 많다는 뜻이다. 

시장 채소 좌판에서 만난 한국 동포 중년 아주머니도 뇌리에 남는다. 속일 수 없는 한국인 얼굴을 하고 있기에 물어 보니 맞다고 한다. 한국말이 또렷하다. 캄차카에서 태어났다니 더욱 놀랍다. 한국 전쟁 중 그의 부모가 전쟁을 피해 평양을 떠나 캄차카에 와 정착했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것까지는 묻지 못했으나 짐작컨대 소비에트 시절 소련으로 이민 올 정도라면 그의 부모는 북한에서 지위가 높았던 분들이었을 것이다.

채소 좌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의 고운 얼굴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머나먼 변방 작은 도시에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고 또 느끼는 것은 세상이 참 좁다는 것이다.

여행 일기를 정리하는 지금, 캄차카 시작 밤 9시 30분(한국 시간 저녁 6시 30분)이지만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았다.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마다 품고 키워왔던 발아래(비행기 아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오랜 호기심이 채워지는 짧았지만 뜻 깊은 시간을 머릿속에 곱씹어 본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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