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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키예프] 체르노빌부터 전쟁까지…슬픈 땅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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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4.24 09:40:01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6일차 (키예프)

키예프 개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도시 탐방에 나선다. 인구 270만 명, 드네프르(Dnieper) 강을 끼고 국토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메트로는 3개 노선이 비교적 자주 다니며 도시를 넓게 커버해 주고 역명도 영어 병기와 함께 고유 번호로 표시돼 있어서 키릴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도 다니기에는 큰 문제없다. 환승도 편리하고 요금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저렴하다. 오전 시간, 환승역은 서울 신도림역만큼 혼잡하다.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레닌그라드)에 이어 3대 도시였던 키예프의 인구 규모를 분명히 보여 준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많이 걸어야 하는 오늘 악전고투할 일만 남았다. 먼저 히드로파크(Hidropark)를 찾는다. 드네프르 강 가운데 섬에 있는 시민 유원지다. 드네프르 강을 바로 앞에서 만난다. 강변 백사장과 테마파크, 놀이기구 등 위락 시설이 가득하다. 드네프르 강 건너의 도심 빌딩과 아파트군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아직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공원을 나와 걸어서 드네프르 강 다리를 건넌다. 제법 먼 길을 걸어 전쟁 기념관(정확하게는 2차대전 기념 국립 박물관)에 도착했다. 드네프르 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언덕 위에 넓게 조성된 기념관 광장에는 거대한 조국 동상(Motherland Statue)이 압도하며 서 있다. 우크라이나는 2차 대전 때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인명 손실을 입은 나라다. 동부 유럽의 십자로라는 중심적 위치와 많은 군수병참 공장 때문에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기념관 2층 전시실에는 전쟁으로 사라진 자들의 사진과 유품들이 가득히 전시돼 있다. 언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쟁 기념관 입구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총탄에 부서진 UN 차량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진행 중인 동부 내전 상황을 소개한다. 2014년 4월부터 2년간 9371명이 목숨을 잃었다. 함께 전시된 종군기자들의 사진이 생생하게 전황을 전달하고 있다.

페체르스크 라브라 수도원

전쟁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키예프 페체르스크 라브라(Pechersk Lavra) 수도원(성당)이 있다. 1077년에 창건된 거대한 수도원 복합단지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수도원 경내 도르미티온(Dormition) 성당의 아름다움에 탄복한다. 성화로 장식한 외부 전면과 후면, 황금 돔, 성당 내부의 화려한 금 장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당 앞 종탑(鐘塔, 벨 타워)은 예술의 극치다. 바로크 양식의 성당은 여기에 덤으로 멀리 강변 풍치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드네프르강 건너 도심의 빌딩과 아파트군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진 = 김현주

가슴 먹먹해지는 키예프 탐방

메트로 역으로 가는 길, 기근 희생자 박물관(Museum of Famine Victims)에 들른다. 1932~1933년 기근으로 250만∼350만이 아사(餓死)한 사건을 기린 곳이다. 들 넓고 날씨 좋은 유럽의 곡창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아사라니?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 박물관 입구 소녀상이 비에 촉촉이 젖어 빗물을 떨어뜨리니 차라리 눈물인 것 같다. 인근에는 무명용사 위령비(기념비)가 있고 이제 곧 찾아갈 체르노빌 박물관까지 보태어 우크라이나는 참으로 사연 많은, 슬픔어린 땅임을 깨닫는다. 가슴 짠해지는 키예프 여행이다.

▲체르노빌 박물관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념관으로 전시를 시작한다. 어린이 희생자들 수백 명의 사진도 걸려 있다. 사진 = 김현주

아, 체르노빌

체르노빌 박물관(Chornobyl Museum)은 입구 후쿠시마 원전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념관으로 전시를 시작한다. 체르노빌은 키예프에서 북서쪽 불과 150km 지점이지만 사고 당일 바람이 북서 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인구 밀집 지역 키예프는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전체를 어둡게 조명해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박물관은 1986년 4월 23일 새벽 1시에 발생한 원자로 폭발 사고의 원인과 경과, 수습 과정을 다룬다. 인근 주민, 원전 작업자, 구조팀을 합쳐 현장에서 또는 훗날 죽은 사람들의 수는 2만 5000명으로 추산된다. 박물관에는 그렇게 사라진 어린이 희생자들 수백 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만약 그 어린이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 40대 초반이 됐겠다는 생각에 잠시 멍해진다.

키예프 중심 메이단

메트로를 타고 시내 중심 메이단(Maidan)으로 나온다. 중간 환승역인 아르세날나(Arsenalna)역은 지하 107m,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 역이다. 깊은 만큼 에스컬레이터 속도는 매우 빠르다. 메이단은 친서방파 유시첸코(Yushchenko) 지지자들이 주도한 이른바 오렌지 혁명이 일어난 곳으로 매체를 통해서 자주 봤기에 눈에 익다. 독립기념탑이 서 있고 광장 주위로 국립 뮤직아카데미, 우크라이나 호텔 등 멋진 건물들이 둘러싼다.  

▲전쟁 기념관 광장에 거대한 조국 동상이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성소피아 성당 vs 성미카엘 수도원

키예프의 또 다른 상징은 성소피아 성당이다. 11세기에 건립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프레스코와 모자이크로 장식된 전면과 황금 돔이 조화를 이루며 우크라이나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성소피아 성당 앞 광장 건너편으로는 방문자의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는 성미카엘 수도원(St Michael’s Golden-Domed Monastery)이 있다. 해가 나지 않는 날씨인데도 충분히 아름답다. 동화 마을에나 있을 법한 예쁜 파란색 성당이 우중충한 회색의 키예프 하늘을 환하게 만든다. 도시 탐방이 끝난 지금 시각 저녁 7시, 10시간 동안 비오는 키예프 거리를 누볐다. 슬픔과 환희, 무채색부터 화려함의 극치까지 모두 봤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로 인해서 동유럽의 참 모습을 엿보게 된 하루였다.


17일차 (키예프 → 오데사,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대평원

버스로 키예프를 출발, 480km 정남향, 6시간 거리에 있는 오데사로 향한다. 말끔한 제복을 입은 미모의 버스 안내양이 커피와 과자를 날라다 주고 와이파이까지 터지는 우등형 고속버스이지만 노면이 불량해 썩 안락하지는 않다. 키예프-오데사 양대 도시를 잇는 도로인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의 사정이 딱하다.

버스는 작은 산 하나 없는 광활한 대평원을 달린다. 국토의 80%가 평지인 유럽의 곡창 아닌가? 검붉은 흑토의 자양분을 머금고 온갖 곡식과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미국 중서부 곡창과 많이 닮았다. 비토리아 데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의 영화 ‘해바라기’에서 봤던 그 초원, 소피아 로렌이 남편을 찾아갔던 그 해바라기 밭을 계속 보며 간다. 이 기름진 땅을 얼마나 많은 동서, 남북의 세력들이 탐했겠는가? 그것이 우크라이나의 운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몽골 군대가 쓸고 지나간 이후 한 번도 편한 적이 없는 땅이다.

오데사 개관

버스가 오데사에 진입한다. 인구 100만,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다. 석유화학 공업이 발달했고 소비에트 시절에는 소련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자 흑해함대 본부이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 그리고 소비에트 시절을 통해 러시아 해외 교역의 중심이자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도시임을 한 눈에 파악한다. 낡은 트램, 한때는 우아했을 그러나 이제는 쇠락한 지중해식 건물, 먼지, 무질서, 마구 파헤쳐 놓은 인도, 차량들의 맹렬한 경적…. 여기는 유럽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어디쯤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생김새만으로 간신히 유럽임을 확인할 뿐이다.

▲기근 희생자 박물관은 1932~1933년 기근으로 250만~350만이 아사한 사건을 기린다. 사진 = 김현주

▲키예프의 또 다른 상징인 성소피아 성당. 11세기에 건립돼 유서깊은 성당이다. 사진 = 김현주

작은 감격, 흑해 일주 완성

숙소에 여장을 풀고 도시 탐방 길에 나선다. 흑해 해변 셰브첸코(Shevchenko) 공원부터 찾는다. 오늘 토요일 오후, 많은 시민들이 여름을 즐긴다. 가장 풍광이 좋은 곳에 전승비가 있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나의 세계 여행 초기, 터키 이스탄불에서 흑해(마르마라 해)를 만나고 가슴 뛰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후 동유럽 여행길에 루마니아 콘스탄차에서 흑해 서안을, 코카서스 여행길에 조지아 바투미(Batumi)에서 흑해 동안을 밟았다. 지금은 흑해 북안에서 흑해 일주를 완성하는 순간이다. 마음속으로 나만의 세리모니를 올린다.

항구에는 사일로(silo)가 즐비하다.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축제가 열리는 공원길 프리모르스키 불러바드(Primorsky Boulevard)를 걷는다. 가로수가 울창한 쾌적하기 이를 데 없는 공원길이다. 포템킨호와 아무 관련이 없는 낯선 교차로에서 포템킨호의 선상 반란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만났다. 원래 포템킨 계단 근처에 있던 것을 옮겨 왔다고 한다. 이쯤에서 포템킨(Potemkin, Potiomkin)호 반란 사건을 언급해 보겠다.

포템킨호 선상 반란 사건

1905년 러시아 흑해 함대 전함 포템킨호에서 일어난 선상 반란은 불량한 식사(구더기가 나오는 썩은 음식)와 장교들의 폭압에서 발단했다.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반란은 곧 진압됐고 전함은 루마니아 콘스탄차로 도망쳐 수병들은 그곳에서 망명했고, 전함은 러시아가 회수한 사건이다. 훗날 이 사건은 러시아 영화감독 예이젠시테인(Sergei Eisenstein)에 의해서 영화로 만들어져서 더 유명해졌다.

프리모르스키 광장

드디어 포템킨 계단 주변 프리모르스키(Primorsky) 광장이다. 걷는 길이 너무도 상쾌해 먼 길을 돌아왔는데도 쉽게 이곳에 닿았다. 시청사, 국립 오페라발레극장, 문학 박물관, 지역 박물관 등 이 도시의 중심 시설이 모두 모인 곳이다. 푸시킨(Alexander Pushkin)의 동상은 많은 방문자들의 인증 샷 명소가 됐다.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은 자유주의 시를 지은 탓에 오데사로 유배돼 머무는 동안(1820∼1825) 외국 문학을 접하고 작품 활동을 하며 인생을 키웠다.

▲메이단은 친서방파 유시첸코 지지자들이 주도한 오렌지 혁명 진원지다. 사진 = 김현주

▲성소피아 성당 앞 광장 건너편에 있는 성미카엘 수도원. 예쁜 파란색 성당이 우중충한 키예프 하늘을 환하게 만든다. 사진 = 김현주

포템킨 계단에 서다

드디어 역사의 현장에 섰다. 계단 아래 쪽 페리 터미널에서 도시를 오고가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포템킨 계단은 무척 혼잡하다. 포템킨호가 정박했을 항구는 페리 터미널로 바뀌었고 계단 위, 시내 중심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 도시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인 프랑스인 리슐리외(Richelieu)의 동상이 있다. 200여 개의 계단을 일부러 오르내리락 해 본다. 계단 한편에는 ‘유럽 영화의 보물’이라는 동판이 각인돼 예이젠시테인을 기린다. 영화 ‘전함 포템킨’은 그 유명한 몽타주 기법을 도입해 영화사에 이름을 남겼다.

빛바랜 한 시절의 영광

도심을 향해서 발길을 재촉한다. 목 좋은 광장에는 이 도시를 건설한 러시아 에카테리나 여제의 동상이 서 있다. 도시 창건 100주년을 맞아 1894년 건립했다. 동상의 왼손이 항구와 바다 방향을 가리킨다. 오데사는 설립한 후 급속도로 발전해 10년 만에 러시아 4대 도시로 성장했다니, 당시 이 도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해본다. 훗날 도시는 전체적으로 쇠락했으나 그래도 찬란했던 한 시절의 영화는 관광객 거리에 화려하게 재단장한 클래식 건물들을 통해 조금은 되살아나는 듯도 하다. 이 도시의 중심 거리인 카테린스카야 거리를 걸어 역 부근 숙소로 돌아왔다. 꽤나 먼 길이지만 울창한 가로수 길은 피로를 많이 덜어준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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