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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시회 후원은 옛말, 천연색 자양분으로 진화

작품 활동 지원규모 매년 급증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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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5호 선명규 기자⁄ 2017.05.15 10:09:12

▲포스코미술관을 찾은 시민들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선명규 기자

(CNB저널 = 선명규 기자) 기업들의 ‘미술’ 사랑이 커지고 있다. 단편적인 전시회 후원이 과거 모습이었다면, 최근에는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 등 폭이 넓어지고 있다. 사내에 미술관을 마련해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기업들도 느는 추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도전기회가 적은 이른바 생계형 ‘투잡 작가’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있다. 기업들의 미술계 전반에 대한 지원 현황을 들여다본다.

기업들의 미술계 지원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의 ‘2015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해 기업의 미술분야 지원금액은 총 164억9000만원이다. 직전 해에 126억9500만원을 쓴 것과 비교하면 무려 29.9% 증가했다. 2013년 95억2100만원에 비해서는 2배 가까이 늘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기업들이 메세나(Mecenat·문화예술을 통한 사회 기여)에 투자한 총 규모가 매년 약 1%씩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최근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메세나’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의 미술관련 후원 활동은 비교적 단조로웠다. 주로 국내외 저명한 작가의 대형 기획전을 유치·후원하는 스폰서로서의 역할이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큰 변화는 기업들이 세운 미술관이 빠르게 등장했다는 점. 단순 전시공간이 아니라 작품활동 지원 등 저변 확대의 성격을 띠고 탄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턱 낮은 미술관, 신진 작가가 샘솟는 화수분이 되는 미술관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대림미술관과 두산갤러리(두산아트센터 내), 금호창작스튜디오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림산업이 2002년 설립한 대림미술관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 컨셉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상 속 예술 작품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전시와 더불어 지역 주민,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미술 감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쉬운 작품’을 쉽게 설명하는 이 친절한 미술관은 연간 46만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4월 28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린 ‘청춘이 청춘에게 전함’ 전시회. 사진 = 선명규 기자

이후 대림산업은 2015년 문화 예술 아지트 디뮤지엄, 2016년 ‘누구에게나 열린 소통과 창작의 공간’을 모토로 내세운 구슬모아당구장을 잇따라 열며 젊은 작가들을 응원하고 있다. 

두산이 2007년 문을 연 두산아트센터는 크게 전문 공연장 ‘연강홀’, 인큐베이팅 극장 ‘스페이스111’, 비영리로 운영하는 ‘두산갤러리’로 나눠 운영된다. 이 중 두산갤러리는 젊은 미술작가를 발굴해 국내외에 소개하는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국내작가의 편의를 위해 ‘두산레지던시 뉴욕’을 열었다. 만 40세 이하 젊은 작가를 선정해 보낸 뒤, 작품활동과 일상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운영하는 금호미술관은 지난 2005년 신진 작가들의 산실을 따로 마련해 주목 받았다. 경기도 이천에 설립한 금호창작스튜디오를 통해 만 40세 이하의 잠재력 있는 작가들을 선정,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매년 발표회 성격의 전시회를 열어 입주작가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도 준다.

회사 안으로 들어온 미술관

미술관을 따로 개관하진 않았으나, 회사 내에 미술관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0년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 1층에 전시공간 ‘일우스페이스’를 열었다. 총 면적 547.2㎡(165.8평) 규모인 이곳에서는 기성작가와 신진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작품이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1999년 서울 강남 사옥에 ‘문턱 낮은 미술관, 생활 속 열린 예술공간’을 표방하는 포스코미술관을 개관했다. 이곳에서는 유명작가의 무료전시, 신진 작가 발굴 및 전시 지원, 시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작가와 시민을 위한 다채로운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포스코미술관은 흔히 재단을 통해 운영되는 기업 미술관과는 달리 본사 HR실에 소속돼 있다. 이 때문에 현장 관계자들의 즉각적인 의견 반영으로 차별화된 전시, 실효성 있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

▲현대자동차와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한 ‘MMCA-현대차|뮤지엄 페스티벌: 마당’. 사진 = 현대자동차

서울시 광화문 신한은행 4층에 위치한 신한갤러리는 ‘작가지원→재능나눔’으로 이어지는 메세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한갤러리가 젊은 작가를 발굴해 전시 공간과 진행 과정 일체를 지원하면, 해당 작가들은 초등학생이나 소외계층 단체를 초청해 미술 기법 강좌 등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백화점들은 전국 지점에 갤러리를 마련하고, 문화예술 향유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갤러리 11곳을 통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를 기준으로 선정한 대중적인 작품들을 주로 전시한다. 한 가지 기준이 더 있다면, 재능은 있으나 여건 상 단독전시회를 열기 힘든 유망 작가들의 작품이 우선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15년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어린이를 위한 미술관,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을 판교점에 개관했다. 이곳은 연면적 2736㎡ 규모에 그림책 약 5000권을 보유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별도 갤러리 운영과 함께 누구나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매장 곳곳에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LG유플러스가 ‘사내 갤러리 개관’ 행렬에 동참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 사옥 1층 로비에 ‘U+ 아트&힐링 갤러리’를 열고 다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임직원은 물론 시민들도 무료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메세나 뿌리 튼튼, 외풍에도 굳건

미술관이나 전시실을 운영하진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통큰’ 후원을 하는 기업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을 2023년까지 10년간, 총 120억원을 후원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 오랜 기간과 높은 액수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후 현대차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기성·신진 작가의 창작에서 전시로 이어지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작품을 전시할 때까지 러닝메이트로서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기업 메세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란 속성이 있다. 웬만한 외부 요인에 쉽게 영향 받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예외도 있다. 작년 하반기에 발생한 김영란법 시행과 대통령 탄핵 사태가 그 예다. 후원기업들이 ‘빅 이슈’ 앞에서 몸을 사리는 바람에 후원 분위기가 크게 위축됐었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 관계자는 CNB에 “대기업들의 메세나는 장수 프로그램이 많고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에, (탄핵 등 사회이슈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감은 있지만 지원이 크게 줄진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지원받고 싶어요” 생계형 투잡 작가들의 ‘한숨’

“잠재력이 풍부하고, 개인전 경험이 없을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지원받기가 쉽다” 

‘젊은 작가’를 발굴해서 지원하는 기업들은 보통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순수 아마추어면서, 발전 가능성은 있는 작가를 찾겠다는 취지다. 이런 원칙 하에 나름의 치열한 검증과정을 거쳐 지원할 작가를 선발한다. 

CNB가 7개월간 연재 중인 <연중기획-문화가 경제>(5.2현재 총44회) 취재 결과, 두산, 대림산업, 포스코, 금호아시아나, 신한은행, 종근당 등 대부분 기업들이 지원연령을 ‘젊은’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또한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작가군에 오른 작가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요컨대 개인전 경험이 없고, 비영리를 추구하면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젊은 무명 작가들이 주요 선정 대상이 된다. 일단 발탁이 되면 지원금과 함께 전시회를 열 공간을 제공받는 등 혜택이 풍성하다.

한 기업 미술관의 경우, 3~4개월 동안 각종 전시회부터 대학교 졸업작품전, 필요하면 SNS(사회관계서비스망)까지 샅샅이 탐구한다. 숨어 있는 실력파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보유한 네트워크를 죄 가동한다.

이렇게 발굴된 작가에게는 해당 작품에 대한 도서 발간, 세계적 평론가 초청 학술세미나 개최, 글로벌 홍보까지 총괄적으로 지원한다. 최종적으로 한국 미술가가 국내 전시를 기반으로 세계 예술계와 소통하는 데 까지 함께 한다는 계획이다.

▲금호미술관은 지난 2005년 경기도 이천에 금호창작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잠재력 있는 작가를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제7회 비평워크숍에서 참가작가들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 = 금호미술관

모 기업 미술관 큐레이터는 CNB에 “작가를 선발하면 전시 과정 일체를 후원하거나 해외진출까지 돕는 등 혜택이 워낙 크다”며 “자칫 ‘낙하산’ 같은 뒷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객관적인 실력이 출중한 작가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진 작가에게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양한 작가군이 지원대상에 오를 수 없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특히 생계형 투잡 작가들에게는 기업들의 메세나(Mecenat·문화예술을 통한 사회 기여)가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지난해 서울의 한 미대를 졸업한 A씨는 오전엔 편의점 파트타이머, 오후엔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다 밤이 깊어서야 작업실로 향한다.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도 A씨의 꿈을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25~35세를 보통 ‘젊은 작가’라고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A씨처럼 학자금 대출이나 생계문제로 인해 작품활동에만 매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작가이면서 생계 해결을 위한 직업을 따로 둬야 하는 ‘투잡족(族)’이 많다. 

기업들의 레이더망에 들어가려면 유명 공모전에 입상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이 선행돼야 쉽게 눈에 띌 수 있는데, 이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을 때 얘기다. 

경제력이 취약한 ‘미생 작가’는 능력을 표출할 기회가 적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작가들 사이에서는 기업들에게 능력을 보여줄 창구가 다양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청년 빈곤’을 염두에 두란 얘기다. 

또한 어렵게 개인전을 열어 이미 등용한 상태라면 기업들의 지원대상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개인전 경력이 곧 기성작가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진작가 위주로 발굴하고 있는 기업들의 취지와 어긋나게 된다. 

20대 한 작가는 CNB에 “아르바이트와 작업을 병행하느라 남들 세 번 전시 할 때 한 번 하기도 버겁다”면서 “기업의 지원이 꼭 필요하지만 어필할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 꼭 전시가 아니더라도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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