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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카잔] 카잔 크렘린의 美에 홀리고 아픔에 멍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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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6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5.22 09:34:34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일차 (키시너우 → 모스크바 환승 → 카잔, 러시아)

카잔 약사(略史)

역사박물관에서 확인한 내용을 보태어 카잔의 특별한 역사를 정리해 본다. 카잔은 11세기 이후부터 스칸디나비아에서 바그다드에 이르는 볼가 교역로의 중간 기착지이자 교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13세기 몽골의 침입과 지배 이후 킵차크와 불가르(Bulgars)의 혼인으로 카잔 타타르인이 탄생했고 1438년에는 카잔 칸국(Khanate of Kazan)이 성립했다. 1552년에는 이반 4세의 카잔 함락으로 카잔 칸국은 소멸하고 모스크와 궁전은 파괴되고, 타타르인은 기독교로 개종되고, 또한 곳곳으로 흩어졌다.

카잔 문화가 부활한 것은 러시아 혁명 이후인 1920년 소비에트 연방 타타르 공화국이 성립하면서부터다. 2차 대전 중에는 유럽 전선으로부터 동쪽 멀리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에 군수 산업의 중심이 된 것을 계기로 전후 산업과 과학기술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에는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의 수도로서 연방정부로부터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율자치권을 행사하며 공화국으로서 독립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카잔 크렘린

역사박물관에서 ‘5월 1일 광장’ 건너편은 카잔 크렘린(Kazan Kremlin) 입구다. 스파스카야 탑을 지나 크렘린에 입성한다. 타타르 요새가 섰던 자리에 성당, 종탑, 모스크, 망루 등이 늘어서 있다. 당초 12세기에 건설됐다가 이후 파괴와 화재 등으로 소실된 것을 재건, 복원했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중에서 쿠올샤리프(Qolsharif) 모스크는 타타르스탄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2005년 카잔 도시 성립 1000년을 맞아 헌정됐다. 어느 것 하나 간단한 것이 없다. 상상을 초월하게 아름다운 크렘린 성내에서 오후 내내 경외감에 젖는다. 너무 황홀해 멍해지지만 이곳에 숨겨진 아픈 역사의 사연이 있기에 복잡한 감회가 뒤섞인다.

▲카잔 크렘린 경내 쿠올샤리프 모스크는 타타르스탄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2005년 카잔 도시 성립 1000년을 맞아 헌정됐다. 사진 = 김현주

수윰비케 탑의 애절한 사연

수윰비케(Suyumbike) 탑의 기막힌 사연을 소개한다. 아주 야릇하고 오묘하게 기울어진 사탑(斜塔)은 이반 4세에 의해 카잔 칸국이 망할 때 왕의 조카가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반 4세로부터 아내가 돼달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조국이 망해서 사라진 마당에 적국 수장의 아내가 되느니 세상을 스스로 하직한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사연이다.

볼가강 유람선

하루 두 번 떠나는 볼가강 유람선을 타러 서둘러 강변 선착장으로 향한다. 표를 구입해야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우왕좌왕하는데 선착장 여직원 카츄샤가 끝까지 도와주며 승선을 배려해 준다. 러시아 여행에서 이런 고마운 순간을 가끔 겪는다. 유람선은 바다처럼 넓은 볼가강을 건너 밀레니엄 대교가 가까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하루 두 번 떠나는 볼가강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바다처럼 넓은 볼가강을 건너 밀레니엄 대교가 가까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사진 = 김현주

유럽에서 가장 긴 볼가강(3960km)은 모스크바 북쪽 460km 지점에서 발원해 남쪽 카스피해로 흘러든다. 하류에는 볼가-돈 운하가 있어서 내륙 바다 카스피해 대신 흑해와 연결, 선박들이 대양과 통하게 하니 가히 러시아 수운의 대동맥이다. 유람선 승선 두 시간이 넘도록 가족, 연인 단위의 유람선 승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통해 러시아인의 소박한 생활을 엿본다.


21일차 (카잔 → 모스크바 환승 → 블라디보스토크 행)

타타르의 멍에

긴 여행이 끝나간다. 러시아에서 시작해 결국 러시아에서 끝난다. 언어와 문자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는 분명히 매력적인 방문지다. 이방인을 따뜻한 관심과 호감으로 대해 주는 러시아인을 곳곳에서 만난 덕분에 긴 여행 기간 동안 마음이 편했다. 거대한 러시아는 경험하면 할수록 더 오묘해진다. 항공기로 카잔을 이륙한다. 몽골군이 들어와 240년간 지배했던 땅, 슬라브인들에게는 ‘타타르의 멍에’를 씌웠던 곳이다. 황인종과 백인종이 격돌했던 최전선 중 하나였던 카잔은 그래서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카잔에서 모스크바 가는 항공기에서 짙푸른 초원을 내려다본다. 우랄 산맥을 넘어온 몽골 바투 원정군이 평정한 후 폴란드와 헝가리를 지나 대서양까지 내달렸던 땅이다. 슬라브인에게는 본향과도 같은 곳이니 어찌 ‘멍에’가 아니었겠는가? 하늘에서 본 모스크바는 물의 도시이다. 강과 운하가 거미줄로 연결돼 외부 세계 대양으로 통한다. 러시아는 강으로 축복받은 나라다.

▲타타르스탄 역사 박물관. 카잔 문화가 부활한 것은 러시아 혁명 이후인 1920년 소비에트 연방 타타르 공화국이 성립하면서부터다. 사진 = 김현주

▲5월 1일 광장에 카잔 봉쇄(1552) 희생자 추념비가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블라디보스토크 행 항공기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공항을 오후 4시 15분에 출발해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향하는 대형 여객기는 승객을 완전히 가득 채웠다. 거의 대부분 백인이다. 그것도 유리구슬처럼 파란 눈에 금발이 유독 많은 순종 슬라브 백인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흔히 않은 순혈통 백인을 마지막 순간까지 실컷 본다. 머나먼 극동까지 러시아의 영토라는 뻔한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22일차 (블라디보스토크 → 서울)

우리가 잘 모르는 이웃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3991마일(6385km), 서울에서 중동 두바이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출발 7시간 후 항공기는 이번 여행의 첫 방문지였던 블라고베셴스크 상공을 지난다. 여기서 아무르강 중·러 국경을 따라 동진하니 곧 블라디보스토크다. 대륙 동안(東岸) 북태평양 고기압대의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가 밀려온다. 

집에 아주 가까이 왔음을 실감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로라 항공기로 환승해 한 시간 남짓, 울릉도 상공을 선회하니 곧 동해안, 그리고는 삽시간에 인천공항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인천공항까지 채 두 시간이 안 걸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거대한 러시아가 있다. 금단의 빗장이 열린 지 20년 남짓, 한·러 무비자 시행으로 왕래가 간편해진 것은 불과 2년 반 지났을 뿐이다.

▲수윰비케 사탑이 이반 4세에 의해 카잔 칸국이 망할 때 왕의 조카가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사진 = 김현주

▲역사박물관에서 5월 1일 광장 건너편은 카잔 크렘린 입구다. 황홀하게 아름답지만 이곳에 숨겨진 아픈 역사의 사연이 있기에 복잡한 감회가 뒤섞인다. 사진 = 김현주

▲하늘에서 본 모스크바는 물의 도시다. 강으로 축복받은 땅 러시아 여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진 = 김현주

깊이 있는 나라 러시아

이제야 러시아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보면 러시아를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가면 갈수록 더 가보고 싶은 깊이 있는 나라다. 국토 면적과 인구,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복잡한 역사는 러시아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고 지냈거나 세계사적, 인류사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던 이웃, 그것도 거대하고도 중요한 이웃이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의의는 크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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