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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원조의 경제학 ②] 자선금 줄어 큰일났다고? 기부 말고 세금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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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7호 최영태 발행인⁄ 2017.12.20 09:55:53

▲최영태 발행인

이영학 사건 등으로 ‘기부금을 삥뜯기는’ 경험을 여러 번 한 한국인들이 이제 기부금에서 멀어지려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예년에 못 미치는 기부금 액수를 걱정하는 언론들은 “이러면 안 된다. 믿을만한 자선단체를 골라서 기부하자”는 식으로 유도 중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믿을만한 자선단체를 골라야 하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주질 않는다. 차라리 믿을만한 자선단체의 명단을 A, B, C라고 콕 찝어 말해주거나, 반대로 D, E, F 자선단체에는 절대로 돈을 보내면 안 된다고 팩트체크를 통해 알려주든지…. 왜 돈을 내는 사람이, 자선단체의 규모와 양심, 회계보고 여부 등까지 일일이 검토까지 해가면서 돈을 내야 한다는 건지…. 도대체 한국인으로 사는 건 여러 모로 힘들다. 

이런 보도에서 보듯 한국 언론은 대체로 무책임하다. 선거 때만 봐도 그렇다. 미국 언론은 선거 때가 되면 “우리는 이 후보를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지지한다”고 선언을 한다. 이른바 공개지지(endorse)다. 대개의 경우 주요 언론의 공개지지를 받은 후보가 당선된다. 주요 언론의 지지를 받은 힐러리가 떨어지고 언론의 적대를 받은 트럼프가 당선되는 이변도 발생하긴 했지만…. 

“언론이 만들지만 언론은 책임 안 져”

언론의 이러한 공개지지는 위험부담을 언론사가 지는 방식이다. 힐러리 대신 트럼프가 당선되면 힐러리 지지를 선언한 언론사는 망신을 당한다. 그래도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공개지지가 편하다. 시민이 해야 할 일을 언론이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 언론은 항상 숨어서 일을 벌인다. 대선 때마다 어느 언론이 어느 후보를 지원하는지를 눈치빠른 국민들은 다 안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는 믿을만한 언론사가 여론조사 장난질을 벌이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왜 “우리 신문사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뒤에 숨어서, 마치 자신은 100% 공정한 심판이라도 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지 모르겠다. 당당하지 못하고 눈치를 잘 보는 한국식 행태의 한 가지다. 

▲이영학 후원금 구좌를 조사한 결과 기부자 중에는 5000원, 1만 원의 소액 기부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사진=YTN 화면 캡처)


필자의 경험으로는, 민간 자선단체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부금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선진국에서는 벌써 이런 과정을 다 거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경험을 한 번 말해보자. 미국의 한인 동포사회에선 2000년대에 북한에 구호물품을 전해주는 자선단체들이 많았고 활동도 많이 했다. 미국 언론도 소개할 정도였다. 어느 유명한 한인 구호단체의 회장 집엘 놀러갔었다. 그런데, 이 사람 잘 산다. 여유가 있다. 다른 생업이 별도로 없는데 여유가 있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자기 단체가 미국의 대기업 등으로부터 돈 또는 금품을 잘 받아내는 노하우가 있단다. “북한에 구호물품을 보내는 단체”라고 소개하면 미국 대기업 등은 “내가 100달러를 주면 당신 단체는 그 중 몇 %를 자체 경비로 쓰느냐?”고 물어온단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인 구호단체는 예컨대 접수 기부금 중 30%를 자체 경비로만, 즉 상근-비상근 요원의 인건비 등으로 쓰지만, 이 한인 단체는 “우리는 20%만을 경비로 쓴다”고 밝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 교민 사회의 특징을 이용한 ‘경쟁력있는’ 구호 단체 탄생의 현장이었다. 

기부금 중 일부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

그러나 결국 그 자선단체의 회장은 그 후 구호 금품 중 일부를 유용했다는 등의 시비에 걸려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기부금이라는 게 이런 구조다. 즉 주는 사람은 믿고 주지만, 최종 수혜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인건비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경비로 사라짐을 알 수 있다. 돈이나 상품을 내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서 하면, 즉 평양이든 원산이든 북한의 물자 부족 지역에 금품을 직접 갖다주면 최고이겠지만(즉, 유실분이 가장 적겠지만) 그 과정이 번거롭기에 일부 유실이 발생하는 줄 알면서도 구호단체에 금품을 전달하는 손쉬운 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한으로 보내지는 한국 쌀. 2000년대 미국에선 한인 자선단체들이 북한으로 많은 인도적 지원 물품을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 착복 시비 등이 일어나기도 했었다.(사진=KBS 화면 캡처)


사정이 이러하니 이영학 사건 등을 통해 실태를 알게 된 한국인들이 “이젠 아무데나 그냥 돈을 내놓지는 못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미국 기업들은 최소한 자선 금품을 낼 때 “경비로 없어지는 퍼센티지가 얼마냐 되느냐?”를 묻기라도 하지, 한국엔 이런 질문이 아예 없다. 박근혜-최순실 일당이 재벌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을 미르-K스포츠 재단으로 삥 뜯어갈 때, 만약 한국에도 미국 같은 관행이 있었다면 그 과정에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듯 싶다. 물론 삥뜯기는 줄 알면서도 어차피 권력을 쥔 측과 ‘뒷거래’를 하는 게 대기업들의 목적이었다면 그런 관행이 있건 없건 아무 상관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래서 한국은 힘있는 사람이 삥뜯기 참 좋은 나라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만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배경도 ‘자선금 사기’ 

사실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역대급 삥땅’이 가능했던 바탕에는 한국의 허술한 기부 문화가 있다. 임병도 저 ‘아이엠피터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보자. 

박근혜의 기반 원조는 구국여성봉사단 (…) 1975년 대한구국선교회를 조직해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는 명예총재 (…) 1976년 구국여성봉사단, 1979년 새마음봉사단으로 개명 (…) 전두환은 1980년 초 새마음봉사단을 해체 (…) 박근혜는 1989년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단체를 표방하는 근화봉사단을 조직 (92쪽)

1970년대 유신 시절에 ‘봉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대대적으로 뜯는 수법을 최태민이 개발했고, 이를 이어받아 21세기에 부활시킨 게 바로 박근혜-최순실의 미르-K 재단 돈 뜯기였다는 소리다. 기존의 한국식 자선기부금 구조를 그냥 놔두면 언제든 미르-K 재단 같은 사태가 언제라도 재발될 수 있으니, 올해처럼 기부금이 줄어드는 현상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현재의 사태에 대해 “연탄은행에 연탄이 모이지 않아 큰일 났습니다. 한 번 더 믿고 예전처럼 기부를 합시다”고 언론 등이 외치는 건 그냥 말로 성의를 다한다는 의미만 있을 뿐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칠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건 인식의 전환이다. 그 인식의 전환은 결국 복지국가로의 전환이고, 자선금을 더 내는 것보다는 믿을 만한 정부에 세금을 더 내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흔히 미국을 자선 대국으로 안다. 빌 게이츠니 워렌 버핏이니 하는 억만장자들이 천문학적인 기부금(도네이션)을 턱턱 내놓고, 그 소식이 미국 언론을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자선기금은 거의 대부분 이들 거부들이 내는 걸로 한국인은 착각하기 쉽다. 

미국 자선기금의 태반을 가난한 사람들이 낸다고?

헌데, 미국의 한 기사를 보니 전체 자선기금 총액 중 거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고 대부분은 중간 이하 평범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낸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한 기사는 이렇게 썼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알기 때문에 없는 형편에서라도 돈을 쪼개서 자선금을 낸다. 그러나 부자들은 돈 없는 고통을 당해본 적이 없기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자선금을 내기 힘들다”라고. 

2003년에 중국에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국에도 번역된 책 ‘당신은 왜 가난한가?’에서 저자 구구(古古)는 그런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의 원조는 감정에서 출발(물질과 마음을 함께 내미는 것)하고, 부자는 이성에서 출발한다(기부할 때 자신에게 명예를 가져오도록 만들고, 최후에는 그것을 이익으로 전환시킨다)”(161쪽)

차이를 아시겠는가? 가난한 사람은 불쌍해서 돈을 내놓고, 부자는 계산해서 돈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중간 이하 사람들이 내는 자선금이 총액 기준으로 볼 때는 거부들이 내놓는 억만금보다 많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 자선기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미들은 절대로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억만금을 ‘철저한 계산 아래’ 내놓는 거부들은 현인이자 선인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어 더욱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이런 게 세상의 이치인 셈이다. 인간의 세상이 얼마나 한심한지에 대해선 이런 지적도 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건진 안전벨트 관련 얘기다. 미국에서 안전벨트가 발명되고 그 착용이 의무화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운전자들이 안전벨트를 우습게, 또는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란다. 

안전벨트가 없는 세상에서는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인명피해가 크게 일어난다. 이런 재앙이 발생하면 영웅이 나오기 좋다. 교통사고가 발생해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는 현장을 용감한 남자가 뛰어들어가 멋진 구조 활동을 벌이면 그 남자는 영웅이 된다. 영웅 타이틀로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구해지는 인원은 정말로 극소수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인명을 구조해낸 것은 안전벨트라는 발명이고, 그 착용을 의무화하는 입법화를 이뤄낸 특정 의원이지만, 후세들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사고 난 뒤 구조 영웅은 기억해도 
안전벨트 개발자는 기억 안 나는 이유

못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을 만들어낸 뒤 억만금을 내는 억만장자는 선인-현인의 칭호를 받지만 실제로 그 자선금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어쨌든 억만장자는 신난다. 반대로 못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복지국가를 만들면 정부가 악착같이 세금을 걷어가므로 억만장자가 억만금을 내면서 광을 낼 필요가 없어지지만 세금을 통한 복지 효과는 필요한 모든 사람이 받게 된다. 전자는 부자가 광을 내는 지옥이고, 후자는 부자가 재미없는 천국이지만, 한국이 지난 정권까지 줄곧 달려온 길은 전자이다. 

▲2007년 한 포럼에서 만난 스티브 잡스(왼쪽)와 빌 게이츠. 게이츠는 세계 최대의 자선사업가 중 한 사람이지만 잡스는 생전에 거의 1달러도 자선 기부를 안 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사진=위키피디아)


구구의 말대로 미국 거부들의 천문학적 기부는 부자의 ‘머리’가 하는 일이다. 그냥 놔두면 어차피 세금으로 나가기에 미리 자선금으로 내놓아 뉴스를 타게 하는 게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다. 이렇게 거부들이 수천억씩 자선기금을 내놓아도 미국의 대도시 거리에는 거지들이 수시로 출몰해 그들로부터 행패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집이 없어서 동굴 같은 다리 밑에 사는 빈민들이 있고, 영화 ‘시코(Sicko)’에 나왔듯 병원 갈 돈이 없어서 병든 손가락을 스스로 잘라내는 빈민들이 있다. 

반면 빌 게이츠 만큼의 거액을 내놓는 독일 거부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또한 손가락을 제 손으로 잘라내는 독일인이 있다는 소식도 들어본 적이 없다. 복지국가와 비(非)복지국가의 차이다. 미국은 복지국가가 아니기에 부자들이 거액 기부를 하는 구조지만, 독일은 복지국가인만큼 거부들은 세금 부과를 많이 당하기에 거액 기부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자라면 미국이나 한국 같은 ‘복지 지옥’에 사는 게 좋다. 어차피 세금으로 낼 돈을 기부금으로 내면서 광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유럽 복지국가의 큰부자는 광을 낼 기회가 없으니 아쉽기는 하겠다.

이영학의 통장을 보면 단돈 5000원, 10000원을 보낸 경우가 많았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자선금은 없는 사람이 많이 낸다는 게 사실일 듯 싶다. 그리고 이영학의 자선금 사취 행각에는 한국의 무책임한 언론이 일조했다. 한 방송사는 이영학의 미담을 취재하던 중 그가 “이런 표정을 하면 더 효과가 있을까요?”라고 묻는 등 장사꾼 같은 자세가 너무 심해 취재를 중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방송사는 이렇게 취재를 중단했지만 그 후에도 여러 언론들이 이영학의 미담 사례를 보도했으니 이영학의 이상한 행동을 발견하고도 그냥 기사를 내보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에어컨 돈 냈는데 실제 설치는 선풍기만

기부금을 낸다는 행위가 얼마나 어이없어질 수 있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쓴 책 ‘쇼크 독트린’에 나오는 내용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쳐들어간 뒤 이라크 현지에서 복구 작업을 벌일 때의 사례다.

외국 계약업자들은 수만 명의 외국 노동자들을 데리고 이라크 국경선을 넘어왔다. 미국 납세자들은 분명 에어컨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그 돈은 네 명의 손을 빙빙 거치다가 결국 선풍기 한 대를 들여놓는 걸로 끝났다. 원조 자금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강탈되고 있는 걸 이라크 사람들은 지켜봤다.(451쪽)

미국이 점령한 ‘자유 이라크’에 에어컨을 설치해주겠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자선금을 냈는데, 에어컨을 설치해주라고 준 돈은 결국 몇몇 수완좋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과정에서 선풍기로 끝나고 말았고, 이라크의 가난한 사람들은 이 과정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에어컨+설치비로 1백만 원의 자선금을 냈는데 실제로 설치된 결과는 5만 원짜리 선풍기가 되는 현상을 막으려면 자선기금을 낸 사람들이 직접 이라크 현지로 날아가 에어컨을 설치할 가정을 일일이 지정하고, 또 에어컨 설치를 할 현지인 일꾼에게 일일이 일당까지 챙겨줄 수 있으면 최고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돈을 맡기긴 해야 하는데, 돈이 전달되는 과정에는 고약한 손들이 한둘이 아니니 문제다.

80조 출산장려금을 임산부에게 다 줬더라면 

‘새는 돈’의 사례로, 한국의 출산 장려 예산만큼 좋은 보기도 드물 것이다. 지난 10년 간 한국 정부가 쏟아부은 저출산 대책 예산만 80조 원이 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예산의 상당액은 “나한테 돈을 주면 내가 광고로, 홍보로, 이러저러한 사업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장담하는 수많은 업자들 또는 단체들의 손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80조 원이란 엄청난 돈이 개개 임산부의 손으로 들어갔다면, 이처럼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 예산을 80조나 썼지만 출산율은 계속 줄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기혼-미혼 가리지 않고 출산 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출산율 회복 국가가 됐다.(사진=국민의당)

그래서 원리는 같다. 이영학의 딸에게 가라는 돈은 이영학의 손으로 들어가고, 임산부를 돕겠다는 돈은 임산부의 손으로는 전달되지 않고 수완좋은 업자들의 손으로 들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자선금은 아무리 양심적인 자선단체라도 그중 일부는 반드시 자체예산으로 쓰이고, 나쁜 단체에게 주면 전액이 술값과 유흥비로 탕진된다. 

출산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게 정부의 목적이 아니고, 출산율을 실제로 높이는 게 정부의 목적이라면 담당 공무원을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배치해 애를 낳는 임산부의 손에 직접 얼마를 쥐어주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업자한테 주면 안 되고, 심지어 병원 측에 그 돈을 쥐어줘서도 안 된다. 

결론적으로, 자선을 하고 싶다면 이런저런 자선단체를 찾기보다는 세금을 많이 내면 된다. 물론 정부에 세금을 많이 낸다고 그 세금이 모두 옳은 일에 쓰이지 않음은 최근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를 잘못 고르면 세금을 내는 족족 수백, 수천억씩 정권 실세들의 호주머니로 쏙쏙 들어가게 된다.

▲12월 18일 광화문 사랑의 온도탑이 29.3도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연말연시 모금활동인 '사랑의 온도탑'이 예년보다 오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예년보다 30%가량 모금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가난한 사람들의 힘든 겨울나기가 걱정된다면 우선 투표를 잘해 제대로 된 정부를 뽑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옳고 그른 자선단체를 골라내는 데 힘을 쓸 게 아니라, 세금을 제대로 많이 내 정부로 하여금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게 하는 일이다. 정부에 주는 돈도 얼마든지 샐 수 있지만 그래도 민간 자선단체보다는 정부기관을 감시하는 기능이 훨씬 더 발달돼 있으며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노력하면 수많은 자선단체를 감시하는 것보다는 정부기관 몇 군데를 감시하는 게 훨씬 더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선금 줄어든 현실을 개선의 발판으로 삼자

일부 언론에선 ‘일본처럼 자선단체를 감시-관리하는 위원회를 정부 산하에 만들어서 관리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위원회 운영에 추가로 돈이 들고, 그런 위원회가 생긴다고 제대로 감시를 할 수 있을지 역시 의문시된다. ‘남의 돈’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정부 일자리만 늘리고 돈만 더 쓰면서 사이좋게 ‘남의 돈’을 나눠 쓰는 사태가 추가로 벌어질 수도 있다. 기존에 있는 정부기관과 감시기관을 잘 활용해 복지에 쓰일 재원을 한 군데로 몰아서 통합관리하고 그 몇 군데에 강한 조명을 비춰 음습한 구석을 없애는 게 새는 돈을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방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2017년 세밑의 국민 다짐이 지금처럼 ‘자선금이 줄어서 큰일났다’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긴 생겼지만, 앞으로는 기부 말고 세금을 더 내고 더 잘 감시하자’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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