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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원조의 경제학 ①] 기업의 연탄-김장 봉사, 이게 최선입니까…자발성-忠恕는 고려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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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4호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2017.11.30 17:28:58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연말만 되면 기업체 임직원들이 산동네로 올라가 연탄을 나르고 김장을 담가주곤 한다. 흐뭇하다면 흐뭇한 풍경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보도가 나오면 피식 웃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특히 사장 등 임원들이 웃는 얼굴로 사진 기자들을 향해 동작을 멈춘 보도 사진을 보면 웬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불편함의 이유를 풀어주는 철학자의 발언이 있으니 한번 들어봐주시기 바란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상쾌하지만 봉사 받는 쪽은 마음의 부담을 느끼게 된다. 자원봉사자는 믿음직스럽지도 않다. 일이 서툴거나 자기 형편대로 쉬기도 한다. 돈을 지불한다거나 계약을 한다면 꾸짖거나 이행 강제도 할 수 있지만 자원봉사자에겐 그럴 수도 없다.(가라타니 고진 저 ‘일본 정신의 기원’ 234쪽)

자원봉사를 행한 중장년 중에 “보람을 느꼈다. 내가 세상이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정말 기뻤다”고 말하는 경우를 봤다. 헌데, 대기업 임직원이 “연탄 나르기를 했더니 정말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기뻤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은 없다. 대기업 임직원이라면 평소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나만큼 사회에 중요한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느끼고 있을 테니 이런 보람을 새삼 느낄 까닭이 없다.

자원봉사에 나서는 쪽만 “기분 상쾌”하면 만사오케이?

사회적으로, 특히 일 측면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중장년이 봉사를 통해 기쁨을 느끼는 건, 자원봉사의 좋은 측면이다.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은 기쁨을 느끼는 이쪽만 아니라, 부담을 느끼는 저쪽에 대해서도 생각해달라고 주문한다. 

자원봉사란 돈 받지 않고 하는 일이다. 너나없이 다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돈 받지 않고 하는 일이기에 관공서 입장에서는 힘든 일을 자원봉사자들이 일부라도 맡아서 해준다니 부담이 줄어서 좋을 듯하다. 

또 돈 많고 할 일 없어 무료한 유한계급에게는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이 보람찰 수 있겠지만, ‘봉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거북스럽고, 최상류층 봉사자들에게 외려 굽신거려야 하는 부담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고진의 지적대로 자원봉사자는 일의 템포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어차피 서툰 데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므로 자기 형편에 맞춰 쉬거나 앉거나가 봉사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겨울이 되면 전국에서 시작되는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의 현장.(사진=연합뉴스)


회사 차원에서 임직원을 동원한 단체 자원봉사에 나서는 것은 대부분 대기업들이다. 가난한 중소기업들은 대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국 경제의 최상부에 위치한 대기업 임직원들이 빈민촌에 납시어 연탄을 날라주고, 김장을 담가주고, 이를 취재하느라 언론사 기자들이 1년에 딱 한 번 산동네로 납시는 행사는, 지역민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외국 기업들이 이처럼 평일날 근무시간을 잡아먹으면서 봉사활동을 펼친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왜 ‘평일 직원 동원 봉사’ 안 할까?

미국에서 10년을 살고 현지 언론을 나름 읽어본 경험으로는, 미국 기업인-CEO가 ‘밥 퍼주기’ 봉사 같은 데 나섰다는 보도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단, 미국에서는 정치가나 유명인, 경제인 등이 저소득층을 위한 집 지어주기(‘Habitat’ 등의 명칭이 붙은 봉사활동) 현장에 나가 봉사했다는 기사를 읽은 경우는 있다. 집 짓기라는 게, 영어로 건축가라는 단어가 으뜸장인이라는 의미(architect = arche/으뜸 + tecton/장인)여서 예술적 측면을 가져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미국 기업의 직원들이 단체로 평일 근무시간에 동원돼 봉사활동을 펼쳤다는 뉴스는 전혀 본 적이 없다. 이는 기업이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뤄져 있는 상태에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기업이 나서서(인터셉트해) 한다는 게 영 뜬금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인 듯하다. 

▲집 지어주기 봉사에 나선 팀 쿡 애플 CEO. 미국에선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집 지어주기 봉사가 인기다.(사진= 팀 쿡의 SNS에서)


21세기 기업의 모델이랄 수 있는 애플 사의 창업주이자 정신적 지주인 스티브 잡스는 억만장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자선 헌금을 거의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애플과 잡스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 헌금을 하다가 걸린 적도 없고, 대통령이나 그의 문고리 권력에 다가가기 위해 은밀한 접근을 시도하다가 문제가 된 적도 없다. 

미국인들이, 세계인들이 애플을 좋아라 하는 것은 그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과 소비자의 이익(쉽게 해킹할 수 없는 핸드폰을 고집스레, 미국 정보기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만드는 등)을 동시에 생각하며, 많은 수익을 올려 충실하게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이른바 ‘애플빠’(애플 제품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팬)는 애플의 제품과 거기 담긴 철학에 감동하는 것이지, 애플 직원들의 봉사활동에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애플도 지난 2011년부터는 애플 재능 기부 프로그램(Apple’s Matching Gifts Program)이란 걸 시작해 직원이 자신의 동네(커뮤니티)에 재능 기부 봉사를 “골라서” 하면 회사 차원에서 1시간 자원봉사 당 25달러를 기부해준다. 이 프로그램에서 눈여겨볼 것은 직원 개인이 자신이 원하고 선택하는 커뮤니티에서 봉사를 하면 회사 차원에서 별도로 도와준다는 것이다. 애플의 프로그램에선 직원 개개인의 자발성(volunteer)이 출발점이고, 한국에서의 기업 봉사는 회사 차원의 결정과 하달이 먼저다. 자발적으로 하면 하는 사람도, 자원봉사를 받는 사람도 즐겁기 쉽다. 강제로 시키면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어줍기 쉽다. 어느 쪽이 올바른 방식인가?

▲애플의 봉사단복을 입고 봉사에 나서는 애플 직원들. 자신이 '고른' 곳에 봉사를 하면 애플에서 일정 금액을 도네이션 해준다.(사진=애플 홈페이지)


기업이 사회봉사를 하는 방법 네 가지

기업 본연의 의무는 사업 잘하기이고, 사회공헌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 중 일부는 전자에는 불충하면서(세금포탈, 비자금 조성, 정치인에 대한 뒷돈 등으로), 후자(‘우리는 한국을 사랑한다’는 광고 세례와 봉사활동 사진 찍히기 등)에는 과도한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연말이 되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대기업이 정말로 최하층의 구들장 온도가 걱정된다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네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방법 1: 좋은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법이 정한대로 세금을 따박따박 납부해 국가의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연탄과 김장을 공급할 풍부한 예산과 인원을 마련하도록 도와준다, 방법 2: 방법 1로는 회사의 이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면, 봉사 활동에 젊은이 아르바이트 등을 동원해 그들에게 돈도 벌고 일할 기회도 주면서 티를 낸다, 방법 3: 지금처럼 임직원을 동원해 일자리를 비우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방법 4: 애플처럼 직원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자원봉사를 하게 하고 회사에서는 직원의 이러한 자발적 자원봉사를 지원한다, 즉 자발성을 존중해 아이디어가 샘솟게 하는 방식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방법 1이다. 복지 재원이 풍성해진다면 자격을 갖춘 서민이면 누구나 가리지 않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은총을 받기 위한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고,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받는 혜택이기에 당당해질 수 있다. 방법 3은 수혜자 일반의 입장에선 최악이다. 대기업 본사가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고, 관련 소식을 전할 언론사도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기에 서울의 특정 산동네는 겨울마다 연탄을 배달받을 수 있지만, 대기업도 언론사도 드문 지방에서는 이런 은총을 그저 강 건너 축제마냥 ‘약오르게’ 구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법 2에도 지역적 차별이란 문제는 그대로 남기 쉽지만, 그래도 청년층에게 돈 벌고 봉사할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차선책은 될 듯 싶다. 방법 4는 직원 각자의 개성과 자발성을 북돋을 수 있어서 좋다.

▲기업의 김장 봉사 현장.(사진=연합뉴스)


특히 대기업-공기업 등의 ‘평일 단체 자원봉사’가 연중 벌어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고임금 손실의 총액도 꽤 클 듯 하다. ‘신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임금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하는 대신, 예상되는 임금 손실액만큼을 젊은층에게 줘서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게 방법 2의 아이디어다. 직장을 못 구해 애간장을 끓인 끝에 결국 자신을 ‘잉여 인간’으로 자학하는 20대 젊은이들에게 ‘연중 끊이지 않는 봉사의 일자리’를 제공하면 대기업과 젊은이 모두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다.

베풀고 싶다면, ‘忠恕의 도’부터 인식해야
  
‘베푸는 기업’이 화두라면, 유교의 이른바 ‘충서의 도’(忠恕之道)를 알 필요가 있다. 충(忠)이라면 흔히 ‘국가에 대한 충성’을 생각하지만, 원래 그런 국가주의적-전체주의적 개념이 아니라고 중국의 저명한 저술가 이중톈은 자신의 저서에서 여러 번 밝혔다. 

‘충서의 도’란 공자가 인애(仁愛)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내세운 내용이다. 
충이란 자기가 서고자 한다면 남을 세우고 자신이 영달하고 싶으면 먼저 남을 영달하게 하라는 것이다. 서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공자도 서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恕道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전제가 들어있다.(‘백가쟁명’ 700쪽)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서'가 더 믿을만 하다.(‘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576쪽)  

남을 먼저 세우고 그걸 바탕으로 자기가 일어선다는 충(忠)의 방법론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서(恕)의 방법론이 더욱 믿음직하다는 얘기다. 

기업의 ‘평일 근무시간 봉사’에 대해 충서의 도를 적용시켜보면, 우선 기업이 서민층에게 가장 충(忠: 상대방을 먼저 일으켜세움)할 수 있는 방법은, 어느 한 집이나 한 동네를 콕 찝어 연탄을 나르거나 김장을 담가주는 것보다는, 사업을 잘 일으켜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다. 특정 가정-지역에만 선택적으로 혜택을 주기보다는, 세금을 많이 내 정부로 하여금 봉사하게 만드는 게 좋은 이치는 다음 비유를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 TV의 오락 프로그램 중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포맷이 있다. 집 고쳐주기 프로젝트다. 사연이 있는 허름한 집을 유명 건축가가 최신형 주택으로 깔끔하게 고쳐주는 집 고쳐주기 프로젝트는, 사연도 재밌고, 깔끔하게 변한 집의 모습에 감동하는 수혜자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TV의 집짓기 프로그램 잘하면 서민주택 문제 해결된다?

그래서 과거 인기있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저렇게 한 집씩 고쳐주면 하층민이 사는 집들이 전반적으로 좋아지겠구나”라고.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한 방송국이 1년에 아무리 많은 집을 고쳐줘봐야 그 총 갯수는 54개를 넘지 않는다. 10년간 진행해봐야 540집에 불과하다. 전국의 허름한 수십만, 수백만 주택 중 540집을 고쳐봐야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 

▲2000년에 시작돼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MBC의 ‘일요일일요일 밤에’의 ‘러브하우스’ 코너의 방송 화면.


▲주거복지의 진정한 변화는 TV의 집 고쳐주기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통해 나온다. 이런 정책을 펼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의 성실 납세다.(사진=연합뉴스)


진정한 변화는 정부 정책에서 나온다. 정부가 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계획을 내놓고 실행에 옮기면, 사연이 있건 없건, 자격이 되는 모든 서민이 따뜻한 집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것도 당당하게. 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계획 같은 효과는 특정 방송사의 집 고쳐주기 프로그램이 아무리 인기 있어도, 그래서 TV 방송국이 모두 그 일에 나선다고 해도 절대로 달성될 수 없다. 

기업에게는 이런 납세와 일자리 창출의 기본 의무가 있는데, 이를 등한시하면서(심지어 배후에서는 온갖 비리를 일삼으면서), 1년에 몇 번 정도 특정 동네에게만 혜택을 주는 연탄-김장 봉사를 티나게 하면서 “저희는 국민을 사랑합니다”라는 홍보를 저렴하게(직원들을 동원하니 추가 돈을 조금만 써도 되고) 과시하는 것이 세밑 봉사의 진짜 목적이라면, 그건 좀 아니올시다 아니냐는 말씀이다.   

서(恕)를 몰랐던 두루미와 여우의 손님접대

충(忠)의 차원에서 기업이 해야 하는 게 성실납세라면, 서(恕)의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은 봉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는 것일 게다.

▲'내' 기준만으로 상대를 대접하면 기쁨은커녕 고통만 줄 수도 있음을 쉽게 보여주는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도해.(사진=위키피디아)

서(恕)란 남에게 뭔가 해주고플 때 ‘나’를 기준삼지 말고, ‘당하는 남’을 기준 삼으란 당부다. 나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낭패가 되는 사례는 이솝 우화의 두루미와 여우의 우화가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살아 있는 물고기가 튀어나가지 못하는 유리병 속에 물고기를 넣어 부리로 잡아먹길 즐기는 두루미는 자신이 좋아하는 싱싱한 물고기를 유리병 속에 담아 여우에게 주지만, 부리가 없는 여우는 이걸 먹을 방법이 없다. 반대로 널찍한 접시에 담긴 수프를 핧아 먹기 좋아하는 여유는 두루미에게도 수프 접시를 대접했지만 두루미의 부리로는 수프를 핧아 먹을 수 없어 서로 화만 내게 됐다는 얘기다. ‘나’만을 기준으로 선의를 베풀면 이런 꼴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같은 이치는 장애인 돕기에도 적용된다. 장애인을 도울 때는 반드시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먼저 묻는 게 순서다. 그렇지 않고 경사진 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휠체어 장애인을 도와준답시고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밀어주었다가는 다가오는 패럴릭핌을 대비해 언덕길 오르기 체력훈련을 하는 장애인 선수의 맹훈련을, 시민들의 ‘나 위주 판단’의 선의가 번번이 헛되게 만들 수도 있다.  

서(恕)의 방법론을 동원해 대기업들이 국민에게 “여러분들이 저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너무나 뻔하다. “애플 같은 최고의 기업이 돼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게 가장 큰 대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 정치인-관료-법조-언론 구워삶지 말고, 이상한 정치 공작 하지 말고, 비자금 만들지 말고 세금을 제대로 내고, 직원이나 국민에게 갑질하지 말라는 등의 주문이 이어질 듯 싶다. 이러한 물음의 과정, 즉 서(恕)를 거치지 않고 마치 무슨 유행이라도 되는 듯 ‘신의 직장’ 사람들이 때만 되면 연탄-김장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뭔가 순서가 잘못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후쿠시마 원전 재해 때 왜 일본인들은 떼지어 자원봉사에 나서지 않았을까

한국의 상식은 “도우면 무조건 좋은 거다”이다. 그래서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같은 게 나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현장으로 달려가 자원봉사를 한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대형 재난이 일어나도 일본인들은 우루루 현지로 몰려가 자원봉사를 펼치는 찡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일본인의 입장이 있으니 한 번 들어볼 만은 하다. 2011년 NHK 프로듀서 출신 후지모토 도시카즈 경희대 초빙교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기자가 ‘한국 같았으면 온 국민들이 벌써 우르르 몰려가 재난 구호를 했을 것이다’라고 묻자) “일본은 자원봉사에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원전(原電)과 여진 문제로 정신이 없는 면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현장에 가면 그쪽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지시’가 있으면 다 갈 것이다.”

▲자발적으로 태안 기름유출 사고 현장으로 수십 만 명이 달려가 자원봉사에 나선 한국인들. 그러나 당시 "시민이 무료봉사에 나서자 돈 받고 일하는 공무원-업자들은 일을 대충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진=위키피디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자원봉사에 나선 일본인들. 일본 정부의 요청이 있기 전에 일본인들은 자발적 봉사에 나서지 않았고, 그 이유는 "폐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었다.(사진=위키미디어. 사진가 = 나카노 하지메)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있지만, 이런 폐에 대한 걱정을 정부가 지시로써 없애주면 다 함께 갈 수 있다니, 참으로 일본인다운 얘기라고 할 수도 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수십만 명이 몰려가 손으로 일일이 기름을 닦아내는 대장관을 연출했지만, 자원봉사자 중에서는 “만리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수거한 수십 톤의 기름을 방제업자들의 늦장처리로 만조 파도에 다 엎질러져 바다로 유실되었다. 업자와 군인과 경찰, 공무원, 현지 주민은 무엇을 하고 외지에서 먼 길을 달려온 자원 봉사자들은 누구를 위하여 물과 기름과 싸우고 있는가?”(1365중앙구조단 카페의 2007년 12월 11일 게시 글 중)이란 비판도 있었다. 공무원이 할 일을 시민이 나서서 하면 공무원은 놀아도 되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이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대량으로 자원봉사에 나서는 한국인도 참 한국인스럽지만, 아무리 큰 사고가 터져도 정부가 지시하지 않으면 안 나서는 일본인도 참 일본인스럽기는 하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더 가깝고 강한 건, 한국 기업 또는 일본 기업?

그러나, 이 칼럼에서 문제를 삼은 기업의 자원봉사에 대해서만 묻자면, 떼져서 자원봉사에 나서는 한국 기업과, 떼져서 자원봉사에 나서지 않는 일본 기업 중 ‘글로벌 스탠다드로 볼 때’ 어느 쪽이 더 기업다운 기업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일본 기업”이라는 게 아마 중론일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의 대기업처럼 이상한 데 돈 주고, 정부 관료 구워삶아 국민에 폐 끼치면서 자기 기업에만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이,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건 아마도 공지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나? 비리를 수시로 하면서 떼지어서 자원봉사하는 기업들인가, 아니면 일본 기업처럼 떼지어 자원봉사를 벌어지는 않지만 비리도 덜 벌이는 기업들인가?

“자원봉사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남을 돕는 데도 이처럼 생각 또는 철학이 필요하다. 생각 없이(또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뭉칫돈을 내면서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태가 계속 벌어질 수도 있다. 다음 칼럼에선 ‘돈 주는 원조’에는 어떤 철학이 필요할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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