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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62) 모스크바] 러시아의 ‘경주’ 골든링의 숨멎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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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78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3.12 09:38:19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7일차 (모스크바 → 블라디미르 도착)


골든링으로 시간 여행


시간 여행을 떠나는 아침이다. 모스크바 북쪽에 환상(環狀)으로 산재한 중세 도시들을 일컫는 이른바 골든링(Golden Ring)을 순환하는 여정에 오르기 위해서다. 여러 도시들이 줄지어 이어지지만 도시 간 교통이 불편할 것이기에 아예 렌터카를 운전하기로 했다. 러시아 초기 역사와 러시아 정교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곳이어서 각 도시마다 크렘린(Kremlin: 성곽도시, 요새)을 비롯해 수도원, 교회, 성당 등 러시아 고대 건축물을 만나게 될 기대로 부풀어 오른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에보 공항(Sheremetyevo, SVO)으로 나가 예약해 놓은 렌터카를 픽업한다. 모스크바 도심의 교통 체증을 벗어나느라 애를 먹는다. 오늘은 토요일, 나들이 차량에 군데군데 도로 확장 공사까지 보태져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사회주의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낡은 라다(Lada) 자동차와 최신형 독일제 고급 승용차가 공존하는 러시아의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특별한 체험이다.

블라디미르 시내 중심 한복판에 서울 남대문처럼 서 있는 골든 게이트가 석양에 금빛을 반사한다. 사진 = 김현주

드디어 블라디미르(Vladimir)에 도착했다. 모스크바 공항을 떠나 230km를 주행하는 데 4시간 30분이 걸렸다. 도시 외곽은 러시아의 여느 산업화된 도시와 다르지 않다. 인구 30만이 넘는 번잡한 도시이지만 시내 문화유적만큼은 깔끔하게 보존돼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타이틀을 얻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중세 분위기에 젖어드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에서 러시아 고대 건축물의 백미를 만난다. 시내 중심 한복판에 서울 남대문처럼 서 있는 골든 게이트가 석양에 금빛을 반사한다. 이 도시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바투칸(Batu Khan) 몽골군에게 도시를 빼앗긴 1238년 이전에 건축된 것들이고 골든 게이트는 900년 됐다.

블라디미르에서도 으뜸은 우스펜스키 성당이다. 12세기 중반에 건축된 것으로, 러시아 정교회당 중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사진 = 김현주

조금 이동해 성당 광장(Cathedral Square)을 찾는다. 크고 작은 언덕마다 교회와 성당이 있는 이 도시에서도 으뜸은 바로 이 Assumption(구세주 부활) 성당(우스펜스키 성당)이다. 12세기 중반에 건축된 것으로, 러시아 정교회당 중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원래는 돔이 하나였으나 키에프 성소피아 성당을 닮으려고 훗날 네 개의 돔을 추가로 건축했다고 한다.

하얀 돌로 지은 드미트리우스 성당 또한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 김현주

가까운 곳에서는 하얀 돌로 지은 드미트리우스(Demetrius) 성당 또한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당 옆 언덕 위 공원에서는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비록 깊은 산중은 아니지만 천년 고찰을 만난 것처럼 야릇하게 풍기는 중세 분위기에 젖어든다.

 

 

18일차 (블라디미르 → 수즈달 → 이바노보 → 코스트로마 도착)


천년 고도의 정취 수즈달


수즈달(Suzdal)을 향해서 북쪽으로 차를 몬다. 광활한 스텝 초원을 지난다. 수많은 동서양 세력들이 탐했던 땅이다. 몽골의 침입과 통치, 타타르의 굴욕 240년, 그리고 이반 대제(이반 3세)…. 이런 생각들이 운전하는 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난다.

수즈달은 숲과 들, 강과 호수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으로 방문자를 맞는다. 사진 = 김현주

한 시간이 채 안 걸려서 도착한 수즈달은 숲과 들, 강과 호수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으로 방문자를 맞는다. 크렘린 성벽을 따라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어제 들렀던 블라디미르가 웅장했다면 여기는 아기자기하다고 해야 할까? 모스크바로 러시아 수도가 정해지기 전까지 수도였던 이곳은 성당을 빼놓고는 2층이 넘는 건축물이 없을 정도로 아늑하니 그야말로 야외 박물관 그 자체다.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천년 고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그윽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시간의 발자취를 따라온 여행의 목적 중 절반은 달성한 셈이다.


더 북방으로 차를 몬다. 큰 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초입마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과일, 채소, 꽃부터 수공예품, 직물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들과 머리에 흰 스카프를 두르고 앉아있는 러시아 할머니들….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묘한 풍경을 계속 본다.


그런데 이쯤에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뭔가를 잘못 조작했는지 GPS 내비게이터가 먹통이 된 것이다. 모스크바 부근에서는 그나마 영어가 조금은 통했는데 꽤나 멀리 북방으로 올라온 이곳에서 영어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그래도 키릴 문자는 해독할 수 있으니 어쩌다 만나는 도로 표지판에 의지해 북행을 이어간다. 앞으로 여러 날 더 여행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발상지 코스트로마


한 시간 남짓 달리니 이바노보(Ivanovo)에 닿는다. 전형적인 소비에트 식 공업 도시에 사는 러시아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엿보며 도시를 관통한다. 직물 공장이 유명해 러시아의 맨체스터라고 불렸을 정도다. 노동자들이 많아서 소비에트 혁명 때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원시림…. 도로에서 몇 발짝 벗어나면 곧바로 짙은 숲이다. 한 시간 반을 더 달려 코스트로마(Kostroma)에 도착한다. 바다처럼 넓은 볼가(Volga) 강 중류에 자리 잡은 인구 28만 명인 이 도시는 골든링의 북쪽 끝이자 반환점이다. 

아름다운 코스트로마 이파티에프 성당. 거대한 성곽도 성곽이지만 종탐과 성당 또한 숨이 멎도록 아름답다. 사진 = 김현주 

여기서 골든링 탐방의 절정을 맞이하는데 그중 압권은 도심에서 작은 강 건너에 있는 성 이파티에프(St. Ipatiev) 수도원이다. 크렘린의 규모는 모스크바 못지않게 웅장하다. 거대한 성곽도 성곽이지만 종탑과 성당 또한 숨이 멎도록 아름다우니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직감한다.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의 차르로 등극한 대관식이 열렸던 곳, 즉 로마노프 왕조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이다.


시내에도 특색 있는 건물들이 여럿 있다. 수사닌 광장(Susaninskaya Ploschad)에 자리 잡은 소방 망루(Fire Watchtower)의 독특한 모습도 이 도시의 명물이다. 대화재 이후 세워졌는데 그로테스크한 모습만으로도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그만일 것 같다.

 

 

19일차 (코스트로마 → 야로슬라블 → 로스토프 → 세르기예프 포사드) 


볼가강 중류의 중심 야로슬라블


오늘부터는 남행이다. 코스트로마에서 한 시간 남짓 달리니 야로슬라블(Yaroslavl)이다. 인구 60만 명, 볼가강 중류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골든링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볼가강 무역로의 요충이었다. 이 땅을 터전으로 성장한 야로슬라블 왕국은 훗날 모스크바 공국으로 합병돼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야로슬라블 수도원이 보인다. 여느 러시아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크렘린은 방어 기능을 하는 요새이자 종교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 공간이다. 사진 = 김현주

시내 탐방에 나선다. 스파스키 구세주 성당(Spassky St. Savior Cathedral)과 수도원은 이름값을 충분히 해낼 만큼 아름답다. 여느 러시아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크렘린은 방어 기능을 하는 요새이자 종교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 공간이다. 도시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강변에는 도시 설립 1000년을 기념하는 수변 공원이 조성돼 있다.


백색 크렘린, 로스토프


남쪽으로 한 시간 차를 몰아 로스토프(Rostov)에 닿았다. 다른 지역에 있는 같은 이름의 도시들과 구분 짓기 위해 로스토프 벨리키(Rostov Beliky)라고도 부른다. 네로(Nero) 호수를 떠라 서 있는 백색 크렘린으로 유명한 곳이다. 교회 종소리 울려 퍼지는 오후 한때의 느린 풍경은 남유럽 어디쯤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얀 성벽과 하얀 구세주 부활 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는 골든링에서도 가장 웅장한 것으로 평가된다.

야로슬라블 수변 공원. 야로슬라블은 볼가강 중류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골든링 중 최대 도시로서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볼가강 무역로의 요충이었다. 사진 = 김현주

성 바깥 작은 언덕에서 동네 아이들이 풍경화 그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 멋진 풍경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사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인다. 전혀 사전 정보 없이 우연히 들른 마을 남쪽 어귀 수도원도 예사롭지 않다. 수도원 마당에 서 있는 성 야곱 교회(St. Jacob)와 성 드미트리 교회(St. Demetry)의 은색, 청색 돔은 너무도 아름다워 여기가 지상인지 천상인지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다. 이렇듯 골든링은 점입가경이니 다음번에는 또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 시간을 달려 페레슬라블(Pereslavl)에 도착했다. 시내 한복판 레드스퀘어에 있는 알렉산더 네프스키 동상이 도시 탐방의 시작이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러시아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존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Alexander Nevsky)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인근에 있는 네프스키 교회는 단순 명쾌하다. 유럽 발칸이나 발트 각국을 다니다 보면 네프스키 교회를 자주 만나는데 따지고 보면 여기가 원조인 셈이다.


러시아 정교의 본산


또 한 시간, 드디어 골든링 여행의 종결지인 세르기예프 포사트(Sergiev Posad)에 도착했다. 삼위일체 수도원(Trinity Sergius Lavra)을 찾는다. 마침 오늘은 세르게이 성자를 기리는 축일(祝日) 전야라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여기 모였다. 어린아이들은 설빔처럼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었다. 


교회당에서는 성가가 울려 퍼진다. 수도원 안 교회들은 저마다 웅장하면서도 특색 있게 아름답다. 러시아 최고의 수도원, 러시아 정교의 본산이라는 평가에 손색이 없다. 숙소로 발길을 돌리지만 찬란한 아름다움을 두고 나오는 걸음이 더디다. 러시아 골든링은 대박이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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