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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67) 헤시피] 이런 노천 박물관 봤나! ‘브라질의 베니스’에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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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3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4.16 09:27:49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4일차 (브라질리아 → 헤시피) 


아프리카가 가장 가까운 곳


브라질리아에서 헤시피(Recife)까지는 1028마일. 브라질 전체 지도를 놓고 보면 아주 짧은 선 하나에 불과하지만 항공기로 2시간 20분이나 걸린다. 세계 5위 국토 면적인 브라질의 크기를 실감한다. 헤시피에 도착해 예약해 놓은 공항 터미널 바로 앞 숙소에 체크인, 여장을 던져 놓고 곧장 도시 통근 열차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열차 안에는 수시로 행상이 오간다. 풍요로운 브라질리아를 떠나 낙후한 브라질 북동 해안 지방에 왔음을 실감한다. 특히 이 지역엔 흑인이 많은데 체격이 매우 크다. 수백 년 전 노예로 이 땅에 발을 디딘 서부 아프리카인의 후손 아닌가? 미 대륙 전체에서 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 헤시피에서 아프리카의 최서단 세네갈 다카르(Dakar)까지는 직선거리로 1980마일, 3200km에 불과하다. 항공기로 난다면 네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브라질의 유대인?


페르남부쿠(Pernambuco)의 주도인 헤시피(Recife)는 브라질 9위 도시로서 브라질 북동부의 항공, 육로, 해상 교통의 요지다. 해변과 문화 유적이 어우러지고, 물과 호수, 운하를 통해 도시 곳곳이 연결돼 있어서 ‘브라질의 베니스’라고도 불린다. 


포르투갈인이 16세기 후반 먼저 도착했으나 1630년 네덜란드인들이 잠시 점령했고 그들을 따라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1492년 이베리아 반도의 국토회복 운동(Reconquista)에 따라 쫓겨난 유대인 중 네덜란드에 정착했던 사람들의 후손 중 일부가 신대륙으로 건너온 것이다.

헤시피 도시 통근 열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이 지역엔 흑인이 많은데 체격이 매우 크다. 사진 = 김현주
해변과 문화 유적이 어우러지고, 물과 호수, 운하를 통해 도시 곳곳이 연결된 헤시피는 ‘브라질의 베니스’라고도 불린다. 사진 = 김현주

유대인이 헤시피에 세운 유대교당은 따라서 신대륙 최초의 유대교당으로 기록된다. 이들은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에게 헤시피를 빼앗긴 후(1657) 대부분 네덜란드로 돌아갔지만 일부는 북쪽 카리브해 지역에 흩어졌고, 그 중 소수는 더 멀리 북쪽으로 올라가 당시 네덜란드 해외 영토였던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 오늘날 뉴욕)의 초기 유대인 정착자가 됐다.


콜로니얼 도시의 진수, 올린다


열차 역에서 내려 올린다(Olinda) 방향으로 걷다보면 곧 카사 쿨투라(Casa Cultura)를 만난다. 이전에는 교도소였으나 지금은 문화 시설과 쇼핑센터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니 올린다이다. 역사적 건축물들이 가득한 올린다의 구 도심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리우 못지않게 카니발로 유명한 곳이지만 아직은 계절이 일러 몇 군데 카니발 복장으로 위장한 사람들을 가끔 만나는 것이 전부다. 

이전에 교도소였으나 지금은 문화 시설과 쇼핑센터로 바뀐 카사 쿨투라. 사진 = 김현주

산타 크루스(Santa Cruz) 교회, 산티시모 사크라멘토(Santissimo Sacramento) 교회 등 셀 수 없고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교회들을 만난다. 한 블록 돌 때마다 또 다른 교회와 정원, 광장이 나타나 방문자의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한다. 수백 년 세월을 머금은 건물들이 건재하며 서 있고, 아직도 그 옛날 분주했던 시절처럼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여전히 활기차다. 400년 넘은 콜로니얼 건물들이 대규모로, 한꺼번에 온전히 이렇게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올린다 거리. 역사적 건축물들이 가득한 올린다의 구 도심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진 = 김현주

교회의 도시 헤시피


올린다의 옛 골목들을 돌고 돌아 다시 다리를 건너 헤시피의 구도심 산토 안토니오(Santo Antonio)로 돌아온다. 올린다에 비하면 헤시피는 현대적 건축물이 많아서 콜로니얼 분위기는 덜하지만 볼거리는 넘친다. 상조세(São Jose) 시장, 헤푸불리카 광장(Praça da Republica)과 산타이사벨 극장(Teatro Santa Isabel), 법무부(Palacio da Justica), 조각물과 금 장식물들로 화려하게 제단을 꾸민 카르모(Nossa Senhora do Carmo) 교회, 그리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회와 성당. 가히 교회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방문자에게는 짧은 하루해가 아쉬울 뿐이다.


 

헤시피는 교회의 도시다. 카르모 교회를 비롯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와 성당이 많다. 사진 = 김현주

아메리카 대륙 동쪽 끝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좁은 골목길들은 나의 발걸음을 더디게 붙잡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 다시 동쪽으로 다리를 하나 더 건너 헤시피 섬(Ilha do Recife)으로 다가가 대서양을 만난다. 도시는 해발 수면 2m 위에 찰랑거린다. 올린다(Olinda)와 올드 헤시피(Recife Antigo)에 들어섰던 항구는 한때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 가장 활발했다고 한다. 거리마다 늘어선 콜로니얼 건물들과 여전히 분주한 가게들이 지나간 시절의 영화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서 가장 동쪽에 돌출한 헤시피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확인한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건축물만이 아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신대륙의 문화가 만나 융합하면서 만들어낸 헤시피 고유의 색채는 댄스와 뮤직, 특별히 이 지역 교유의 망게 비트(Mangue Beat)라는 독특한 음악 장르를 낳았다.


거리는 어수선하고 사람들의 삶은 척박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브라질 북동부 해안 오랜 항구 도시 고유의 모습임을 확인한다. 그러면서도 도시 외곽으로는 굴지의 산업 시설과 디지털 IT 기반이 공존하는 헤시피는 분명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가난하고 남루해 보이지만 막대한 미래 가능성이 있는 도시는 감히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오가는 사람들로 헤시피의 좁은 골목길이 가득 찼다. 사진 = 김현주

우연히 들른 헤시피는 “대박”


브라질리아에서 사우바도르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하룻밤을 지내는 곳 정도로 알았던 헤시피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여준다. 적도 부근의 짧은 해를 이길 수 없어 이쯤에서 도시 탐방을 마친다.


올린다와 헤시피를 합친 거대한 야외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온 기분이다. 이 교회 저 건축물, 이 골목과 저 골목에 담긴 역사의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1/10도 충분히 더듬지 못하고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더디다. 그래도 브라질 서민들의 삶 속에 흠뻑 담갔다가 돌아오는 기분이 제법 삼삼하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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