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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문학 ② 아모레퍼시픽] ‘아시아 美’ 인문연구로 세계 7위 뷰티 브랜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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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4호 윤지원⁄ 2018.04.20 17:17:13

아모레퍼시픽재단이 지금까지 펴낸 '아시아의 미' 연구 성과를 담은 책들. (사진 = 아모레퍼시픽그룹)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 아이패드를 선보이면서 “애플은 항상 인문학과 기술의 갈림길에서 고민한다”는 말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예술사, 심리학과 같은 인문학을 공부했고,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 집중했다. IT 혁신을 선도하며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 상위권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두 기업은 이처럼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탄생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최근 인문학의 중요성에 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임직원들을 상대로 인문학 강연을 마련하고, 대학 인문학 분야에 후원을 늘이며, 경영 현장과 인재 발굴 과정 등에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에 CNB저널은 국내 기업들의 인문학 경영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두 번째 기업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이다.

 

아모레퍼시픽재단 '아시아의 미' 시리즈 8번째 책 '아름다운 사람' 표지. (사진 = 아모레퍼시픽재단)

뷰티 기업, 아시아의 아름다움

 

아모레퍼시픽재단이 지난 4월 3일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이 재단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창업자 서성환 회장이 지난 1973년 설립한 학술‧교육‧문화사업 지원 재단이다.

 

도서출판 서해문집에서 펴낸 ‘아름다운 사람’은 아모레퍼시픽재단이 ‘아시아의 미(美)’ 연구를 기반으로 기획, 발간중인 인문교양 시리즈 ‘아시아의 미’ 여덟 번째 책이다. 아시아의 미 시리즈는 2014년부터 발간을 시작했으며, 총 20여 권에 이르는 시리즈를 엮어낼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재단은 아시아인들의 미적 체험과 인식에 관한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아시아의 미 탐색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난 2012년부터 매년 ‘아시아 미의 개념’, ‘아시아 미와 신체’, ‘아시아 미와 예술’, ‘아시아 미와 일상생활’ 등에 대한 연구 공모를 진행, 선정된 연구자에게는 편당 3000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을 ‘아시아의 미’ 총서 시리즈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번에 펴낸 ‘아름다운 사람’은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아시아퍼시픽재단 이사인 백영서 교수가 이끄는 6명의 공동 연구진 ‘아시아 미 탐험대’가 두 번째 공동 작업을 마치고 그 성과를 엮어낸 책이다.

 

이번 책은 이들이 학제 간 연구에 따라 아시아의 미를 규명하려 한 긴 여정의 중간 결산으로, ‘아시아적 특성을 지닌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생각과 ‘사회적 영성을 찾는 사람’이 되는 삶의 방식을 각자의 테마(사랑·고독·꾸밈·성찰·수행·감각)로 표현했다. 책에서 이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좀 더 신성에 가까워지는 길을 감으로써 지금보다 인간다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샤넬 코스메틱 광고 모델 릴리 로즈 뎁. (사진 = 샤넬)
설화수가 브랜드 최초로 송혜교를 모델로 기용했다. (사진 = 설화수)

‘아시아의 美’ 탐구는 아시아 뷰티 기업의 숙명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화장품을 제조‧유통하는 기업이다. 현재의 뷰티 문화는 서구에서 시작됐고 세계적인 뷰티 브랜드 대부분이 유럽과 미주의 기업이다. 한국의 뷰티 기업으로서 아모레퍼시픽은 서구 뷰티 제품의 원리와 기술을 있는 그대로 아시아인(한국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알고, 아시아인에게 좀 더 적합한 제품을 연구‧개발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서구인과 아시아인 골격이나 피부 특성과 같은 물리적 차이는 과학 기술로 탐구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인 개념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나 아름다움에 대해 추구하는 이상은 그 사람 혹은 사회의 환경과 역사, 문화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발이 작아야 아름답다며 어린 소녀의 발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꽁꽁 묶어 작고 기형적인 형태로 만드는 중국의 전족(纏足) 문화는 거의 천 년 가까이 이어져 왔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를 잔인한 처사로 여기고 이해하지 못한다.

 

‘아시아의 미’ 프로젝트는 서구 중심의 ‘미’ 개념으로부터의 전환의 필요성을 깨달아야만 했던 한국 뷰티 기업의 숙명이었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재단은 아시아 미 개념의 특성을 밝혀내고 아시아인들의 미적 체험과 미 인식에 관한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 2012년부터 연구비를 지원했다.

 

아시아퍼시픽그룹은 '아름다움'의 의미를 시각적인 것에서만 찾지 않으려 한다. (사진 = 아시아퍼시픽재단)

보이는 美 넘어 오감으로 ‘美의 경험’ 탐구

 

아모레퍼시픽재단 관계자는 “서구 근대의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뛰어넘는 ‘감성적 전환’을 요청하는 21세기에 아시아는 문화적 다양성과 문명적 깊이를 지닌 지역으로 주목된다”면서 “동시에 아시아는 경제 개발을 통한 윤택한 삶에 대한 열망으로 사람들 간의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매우 유동적인 공간이다. 아시아의 역동성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는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소통을 통한 상호 존중과 이해를 위해 다문화적 감수성이 요청되는 가운데 ‘아시아의 미’ 연구는 ‘미’에 대한 아시아 지역의 인식을 비교함으로써 아시아를 연결시키고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구의 미 개념이 주로 시각을 중심으로 예술과 인간 몸에 대한 미 인식을 강조해왔다면, 아시아의 미 연구는 정서적 만족을 이끌어주는 미적 체험에 관여하는 모든 감각, 즉 시각을 포함한 오감을 연구 대상으로 확장한다. 오감의 경험은 미에 대한 시각적 경험, 몸과 마음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고 감각의 통합을 이끌어낸다. 아시아의 미 연구는 오감을 통해 구성된 생활 체계 속의 미 개념과 미적 체험에 대한 연구를 장려한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인류 보편의 인식이지만, ‘미’는 사회적 맥락, 일상적 체험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연구 지원 사업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미를 탐구하기보다, 아시아 특정 지역이나 문화권마다 구성된 미적 체험, 미의 인식, 생활세계 속 미의 경험 등을 탐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기획 의도에 따라 재단은 2016년까지 20개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지원작으로 선정된 주제들은 인도 신화에 나타난 아름다움, 산수화나 건축물, 실내장식 등 예술과 공예에 표현된 미,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의 ‘히잡’에 나타나는 미의 인식이나 통합적 정체성 관점에서 본 노년의 미, 공자 사상에 깃든 내면의 미 등등 분야와 접근법이 다양하다. 그 성과물 가운데 2014년부터 지금까지 ‘아시아의 미’ 시리즈 8권을 출간했다.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2014년부터 ‘아시아의 미’ 도서 시리즈 8편이 출간됐는데, 연구는 궁극적으로 ‘아시아의 미학’이라는 이론 틀을 정립하기 위한 과정이지만, 책은 아시아인들 간의 상호 이해와 소통을 장려하기 위해 쉽고 평이한 교양인문서 텍스트를 지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의 미’ 강좌를 통한 소통의 시간도 마련하고 있다. 재단은 2012년부터 ‘아시아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강연자로 초대해 왔다. 2015년까지는 최재천 교수, 승효상 건축가, 안상수 디자이너, 장률 영화감독,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등등 13명의 강사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을 제공했고,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아시아의 미 시리즈 저자들을 모시고 좀 더 전문적이고 풍부한 논의를 진행했다.

 

아시아퍼시픽재단의 인문교양강좌 '미'.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처)​​​​

본질 고민하는 인문학적 방법론, 다양한 사업에 반영돼

 

‘아시아의 미’에 대한 진지한 탐구 덕분에 아모레퍼시픽은 자신의 사업 분야는 물론 시장 환경과 소비자에 대해 가능하면 본질에 다가가려는 기업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사안의 본질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사업에 반영된다.

 

예를 들어 아모레퍼시픽의 주력 뷰티 브랜드 중 하나인 ‘이니스프리’(Innisfree)는 ‘자연주의 뷰티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켜나가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뷰티 제품은 무농약 녹차, 한란, 화산송이 등 제주도에서 나는 천연 원료를 활용해 만들어진다. 진정한 친환경 브랜드가 되기 위해 제품이 담긴 용기도 친환경 소재로 만들고 있으며, 적극적인 공병 수거 활동도 기업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다. 낭비 없는 착한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제품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됐다.

 

원료 대부분의 산지가 제주도인 것은 제주도가 오염되지 않은 물과 공기, 따뜻한 기후, 비옥한 토양을 갖춰 좋은 원료가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대 서성환 회장이 1979년에 제주도에 녹차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부터 관련 사업에도 진출한 오랜 인연과 관계가 있다. ‘이니스프리’라는 브랜드 명이 윌리엄 B.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도 제주도라는 섬이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이니스프리는 브랜드의 핵심 근거지인 제주도의 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 공헌 사업을 실천 중이다. 동백꽃잎 같은 원료의 구입은 원료를 수확한 지역 주민들에게서 직접 구매하는 공정 구매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015년에는 ‘제주에 가치를 더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이니스프리 모음재단을 설립, 쓰레기 매립장을 생태숲으로 가꾼 ‘이니스프리 비밀의 숲’ 조성 사업을 진행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제주 농업과 농민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할 수 있도록 최신 농업기술을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니스프리의 원료로 사용되는 제주도산 무공해 녹차, 화산송이, 한란(왼쪽부터). (사진 = 이니스프리)
이니스프리의 그린티 씨드 세럼. (사진 = 이니스프리)

데카르트의 명제에서 첨단 마케팅 영감 얻어

 

최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그룹 정기조회에서 르네 데카르트의 제1명제를 인용해 고객 경험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 회장은 고객은 “‘나는 구매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나는 사용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경험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고객을 나타내는 데 더 적합한 시대”라면서 “기업과 고객 간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고객 간의 소통이 더 중요하게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이는 앞으로 기업은 고객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기보다 구매 이후의 과정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경영 철학에 대한 서두였다. 서 회장은 “지금 고객은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 나아가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 여기저기 보내는 것까지 가능해졌다”며 “구매자로서의 고객이 경험자‧사용자로서의 고객으로 완연히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고객 경험 혁신의 예로 온라인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를 예로 들었다. 그는 에어비앤비에 대해 “이틀 묵으면 하루 무료로 이용하게 해 주는 식의 프로모션과는 다른 관점으로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면서 “축제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 맛집을 투어하고 싶은 사람, 좋은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에어비앤비를 찾을 수 있도록 이야기 한다”고 설명했다.

 

서 회장 발언의 요지는 고객 경험의 방식들을 고민하고 정비해야 하며, 계속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 상품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고객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서 회장은 고객 경험의 적극적인 소통 창구로 부상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장점에 주목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사진 = 아모레퍼시픽그룹)

이에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적극적 활용을 위해 관련 업체와 MOU를 체결하고, 뷰티 크리에이터 육성‧지원에 직접 나서 K뷰티 콘텐츠 영향력과 온라인 다중 채널 네트워크(MCN) 산업 성장에 기여할 예정이다. 제품을 만들고 나서 이를 팔기 위해 마케팅 채널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현 시점에 뷰티 업계에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채널을 직접 키운다는 발상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사드 여파로 다소 주춤하긴 했으나, 서 회장 취임 후 약 20년간 매출액 10배, 영업이익 21배, 수출액 181배 성장이라는 거침없는 질주를 해 왔다. 2016년에는 국내 뷰티 업체 최초로 미국 뷰티‧패션 전문매체 WWD(Women's Wear Daily)가 발표한 세계 100대 기업에서 7위로 꼽히기도 했다.

 

이처럼 양적인 성공을 거두는 가운데 사회공헌사업에 무려 연간 240억 원 가량을 투자하고,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메세나 사업도 진행하며 사회‧문화적으로 기업 시민의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좋은 이미지도 갖췄다. 그 결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조사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서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1위에 선정됐다.

 

이러한 성장의 바탕에는 아모레퍼시픽그룹 특유의 기업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사업 및 활동 전반에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요소가 골고루 반영되어 있다”며 “이는 ‘좋은 물건으로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개성상인의 자부심과 장인 정신을 강조했던 선대 회장인 서성환 창업자로부터 전해온 그룹의 전통에 더해 서경배 회장의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 애호가의 성향 등이 그룹 경영 철학에 묻어나오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완공된 아시아퍼시픽그룹의 용산 신사옥 건물.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디자인으로, 한국 고유의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고려한 예술적인 건물로 각광받는다. (사진 = 아모레퍼시픽그룹)

 

■ '기업&인문학' 지난 기사 보기

 

① 신세계 - "인문학자 힘 빌려 문화 흐르는 매장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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