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처럼 생긴 식물? 아니다. 식물처럼 생긴 동물 같기도 하다. 참 묘한 생물체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세포의 이형적 증식과 교합을 통해 유기체에 기이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업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허은경의 개인전 ‘보태니멀 가든(Botanimal Garden)’을 5월 10일~6월 24일 연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140점의 보태니멀 드로잉 시리즈를 포함해 전시장 지하에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 1층에 전시된 작품의 이미지들은 식물처럼 보이지만, 모두 이형적인 생물체의 형상으로 그려졌다. 식물이라는 의미의 ‘보태닉(botanic)’, 그리고 동물의 ‘애니멀(animal)’을 합성해 부르는 이 ‘보태니멀(botanimal)’ 시리즈는 정형과 이형의 경계, 동물과 식물의 분류, 아름다움과 낯선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한다.
기괴함과 비정형을 배제해 버리는 지구 한 구석에 이들의 자리를 마련해 준 작가는 “한없이 하찮고 부질없어 보이는 생명체들이 주변에 치열하게 적응하려는 모습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파리 한 줄기, 풀대에 돋아난 솜털, 우주를 비추는 것 같은 반짝이는 눈알에서는 처절한 생명 에너지까지 느껴진다.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이 생물체들은 자연적 환경에 의해 선별, 탈락돼 온 진화의 과정과 닮아 있다. 작가는 기존의 생물학적 특성을 변화시켜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고, 이들을 증식, 분열시켜 다양한 생물의 유전자들이 얽힌 모습을 그려내는 것. 작가의 생물체는 “창조를 과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의 지하에서는 유기체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대형 설치작업을 볼 수 있다. 은사를 뜨개로 엮어 만든 레이스 천막이 하늘을 만들고 땅에는 축축한 이끼가 어떤 생물체의 관처럼 보이는 무덤 위에 자라나고 있다.
작가는 실존하는 생명체가 사는 공간이 아닌, 외계의 장소로 관객들을 인도함으로써 우주적 생명력을 전달한다. 이로써 우리는 그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 존재하는 인류,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시간과 운명을 느낄 수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익숙한 풍경에서 이형적 낯섦을 증식, 분열시키는 허은경의 보태니멀 시리즈를 완성도 있게 보여주고자 한 이번 전시에서 피조물과 생명에 대한 미학적 탐구의 면모를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허은경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위치한 아트센터(Art Center College of Design, Pasadena, CA)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2년 패서디나에서의 첫 개인전 ‘신화 이후(After Myth)’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다수의 국내 개인전을 포함해 미국과 한국, 독일, 중국을 오가며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