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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71)] 가난에 찌든 볼리비아에서 황금번쩍 콜롬비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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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8-58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5.21 09:31:1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1일차 (라파스) 


어떤 노익장


어제 이맘때보다 몸이 한결 가볍다. 숙소 앞 여행자 거리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여러 투어 프로그램 팀이 출발한다. 페루 국경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주변과 휴양지 코파카바나(Copacabana),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융가스 로드(Yungas Road) 바이크 투어 등 탐나는 것이 여럿 있다. 그러나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고산증을 겪고 있는 나에겐 무리이다. 


그 일행 중 어제 이 거리에서 만났던 미국인 프레드(Fred)를 다시 만났다. 케이블카 타는 방법을 자상히 알려준 사람이다. 미국 플로리다 주 포트 로더데일(Ft. Lauderdale)에서 한 달 예정으로 온 관광객이다. 나이는 64세지만 아직 꽤나 젊고 핸섬해 보인다. 서로에게 노익장을 격려해 준다.


오늘은 도시 하부 지역 시내 중심에 있는 무리요(Murillo) 광장부터 찾는다. 이 나라 독립 영웅의 이름을 딴 곳이다. 대통령 청사 등 정부 건물과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1835년 건축) 등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도시의 대표적인 콜로니얼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이곳만 벗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대로 관리했더라면 우아했을 여러 콜로니얼 건축물들이 부서지고 쇠락해진 자리에는 대신 우후죽순 밋밋한 콘크리트 빌딩이 올라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융가스 로드로 자전거 투어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팀. 사진 = 김현주 교수
해발 3250~4100m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희박한 도시인 라파스의 모습. 멀리 보이는 설산이 이 도시의 높이를 말해준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라틴아메리카의 고질병


도시 골목마다 행상과 걸인들이 많다. 중남미 어디를 가도 드넓은 땅, 빼어난 기후와 자연 경관,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들 나라의 공통점인 부패한 정치, 관료주의, 포퓰리즘, 그리고 지독한 빈부 격차의 극치를 볼리비아에서도 본다. 200년 전 지구상에서 누구보다 먼저 스페인 제국주의를 몰아냈다는 혁명 정신, 남미판 촛불 정신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참 모를 일이다.

 

라틴아메리카 4대 경제 대국 중 하나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시내 모습. 남-북 아메리카의 정중앙에 위치한 중요한 국가의 수도다. 사진 = 김현주 교수

12일차 (라파스 → 보고타)


제3세계 탈출


라파스 공항의 출국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전형적인 제3세계 현상이다. 남은 돈까지 세어 보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이 이 정도였던 것 같다. 무사히 건강한 모습 그대로 떠나게 되어서 작은 안도감마저 든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야릇한 감정이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자 도시 외곽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엘알토의 수 만, 수십 만 개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초롱 불빛이 발아래 찰랑거린다. 지난 닷새 동안 오르내렸던 여러 도시와 사막의 언덕길이 눈에 선하다. 고산증도 이제는 거의 벗어난 것 같다. 


또 다른 미지의 세계 도착을 앞두고 설렘이 인다. 식지 않는 열정과 호기심도 병 아닌 병인가 보다. 콜롬비아는 스페인이 일찌감치 1499년 발을 디뎌 남미 정복의 전진 기지로 삼은 곳이다. 1819년 중남미 넓은 지역을 아울러 Gran Colombia로 독립했다가 1903년에는 파나마 운하 독점을 노리는 미국의 개입으로 파나마가 떨어져 나가 독립했다. 

 

해발 2640m에 위치해 날씨가 선선한 보고타는 황금처럼 반짝이는 도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인종, 문화, 언어, 기후, 생태적으로 가장 다양한 나라 중 하나이다. 아마존 정글부터 초원,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모두 끼고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게다가 ‘불의 고리’(Ring of Fire)에 위치함으로써 화산 등 경관적 다양성까지 갖추고 있다.

 
남미의 보석 보고타


라파스를 이륙한 지 3시간 30분, 아비앙카(Avianca) 항공기는 보고타에 도착한다. 인구 800만 명, 북위 4.6도, 적도가 매우 가까운 곳이지만 해발 2640m에 위치한 도시는 날씨가 선선하다. 중미와 남미를 연결하는 거점 도시이다. 보고타 엘도라도(El Dorado) 공항은 이름 그대로 금향(金鄕), 찬란하게 아름다운 아침 날씨가 방문자를 반긴다. 이번 여행길에서 남미의 보석 하나를 건진 느낌이다. 1000m 정도의 고도를 내려왔을 뿐인데 지난 며칠 나를 괴롭히던 고산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해발 3000m쯤의 몬세라테 언덕을 단 5분만에 오르는 푸니쿨라의 모습. 대기 줄에서 오래 기다려야 탈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보고타는 풍요롭다.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에 이어 라틴아메리카 4대 경제 대국 콜롬비아의 수도 아닌가? 인구(2016년 기준 4865만 명)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브라질, 멕시코에 이어서 3위이고 지리적으로는 남북아메리카의 정중앙에 위치한 중요한 국가이다. 남미에서 가장 친미 국가임을 말해 주듯 보고타는 절반이 미국이다. 공항 계류장에는 미국 항공기들이 줄지어 서있고,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널찍한 도로 양옆으로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들의 지역 본부가 늘어서 있다. 


1960년부터 50년 넘게 이어진 정부군과 좌익 게릴라(FARC), 우익 사병(私兵), 그리고 마약 카르텔이 뒤엉켰던 내전도 마침내 2006년 11월 산토스(Santos) 대통령과 FARC 게릴라의 평화 협정으로 종식되었다.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주연의 영화 ‘긴급명령(Clear and Present Danger, 1994)’ 같은 데서 봤던, 내전으로 암울했던 보고타 모습은 이제는 없으니 긴장을 푼다. 


복잡한 혈통, 오묘한 얼굴


공항 터미널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생김새가 매우 다양하다. 유럽계, 토착민, 메스티조, 흑인 등 매우 다양한 이 나라의 인종 구성의 일면을 읽는다. 인종 분류가 불가능할 정도로 혈통이 복잡하고 오묘한 얼굴들이 많으니 이 나라에서 인종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로 보인다. 공공장소에서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짙은 애정 표현을 할 수 있는, 정말로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곳이 여기 아닐까 싶다. 

 

보고타에 우뚝 솟은 몬세라테 언덕 정상엔 예쁘게 불을 밝힌 교회와 수도원이 속세를 잊게 만든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예약해 놓은 시내 숙소를 찾아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당초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 바로 옆 나라인 베네수엘라(Venezuela)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그곳의 정정이 갈수록 불안해져서 베네수엘라 일정을 포기하는 바람에 보고타에서 무척 여유로운 일정이 생겼다. 


저녁 무렵, 도시 뒤에 우뚝 솟은 몬세라테 언덕(Cerro de Monserrate)을 찾는다.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 겨우 오른 푸니쿨라(funicular)는 단 5분만에 정상에 닿는다. 300m쯤 올라왔으니 해발 3000m 가까운 지점이다. 푸니쿨라를 오래 기다리는 바람에 정상에 도착하니 막 해가 졌지만 대신 산 정상에 예쁘게 불을 밝힌 교회, 수도원과 함께 보코타 전역의 야경을 조망하는 행운을 얻는다. 여기가 안데스 깊은 산중 어디쯤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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