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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73)] 지진이 앗아간 옛 식민수도의 정취를 맛보다

남북 미주를 모두 장악한 미국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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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6.11 11:38:56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6일차. 안티과 과테말라


치킨 버스에서 긴장하다


안티과 과테말라(옛 과테말라, La Antigua Guatemala)로 당일 나들이에 나선다. 쉽지 않는 길이다. 숙소를 나와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까지 간 후,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안티과 행 버스들이 출발하는 지점을 찾아간다. 버스는 미국에서 스쿨버스로 사용했던 중고차를 가져다가 중미 특유의 요란한 치장과 색깔로 장식한 이른바 ‘치킨 버스’이다. 가끔은 실제로 닭을 싣고 다니기도 하지만 닭장처럼 하염없이 승객을 많이 태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파나마에서도 비슷한 버스를 많이 보았듯이 중미 지역의 독특한 교통수단이다. 


버스가 꽤 자주 다님에도 불구하고 워낙 통행 인구가 많아 금세 버스가 가득 차는 황금 노선이라 사연도 많다. 과거 노선 운영권을 놓고 발생한 갱단끼리의 갈등으로 운전기사가 100명 넘게 살해 되었다니 머리털이 주뼛 선다. 그래도 다른 방법은 없다. 택시 요금이 워낙 비싼 이 나라에서 45km 거리는 택시 요금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이기 때문이다. 버스 요금은 한화로 환산하면 1300원. 매우 저렴하고 현지인들과 섞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금상첨화다. 
 

안티과엔 오래된 도시답게 화강암으로 바닥을 깐 차도 또는 보도가 많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정통 콜로니얼 도시 안티과


버스는 긴 고개를 넘어 1시간 30분 걸려 안티과에 도착한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화산이 연기를 뿜고 있는 것을 보니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안티과는 스페인 통치 시절 스페인 중앙아메리카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1773년 대규모 지진이 도시를 파괴해 버림에 따라 수도는 오늘날 과테말라시티로 옮겨가고 안티과는 버려졌다. 그 뒤 재건돼 오늘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원래 스페인 중앙아메리카의 수도는 현재 안티과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했으나 1543년 아구아 화산(Volcan de Auga)의 폭발로 파괴된 후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재 과테말라시티는 과테말라의 세 번째 수도인 셈이다. 

 

미국 스쿨버스 중고차를 수입해 화려하게 치장한 일명 치킨 버스. 항상 만원이라 정말로 치킨이 돼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중앙공원(Parque Central)에서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도시는 크지 않아 도보로도 충분하다. 다만 화강암 깔린 보도가 걷기 불편하고 가끔은 인도 자체가 사라지기도 하는 아쉬움은 있다.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성당, 정부청사, 산타클라라 수도원, 메르세드 교회(La Merced Iglesia), 그리고 이 도시의 상징인 산타카탈리나 아치(Arco de Santa Catalina)가 모두 지척이어서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방문자들로 붐빈다. 내가 다녔던 전 세계 콜로니얼 도시들 중 단연 으뜸에 속한다.


안티과 강추


도시 북쪽 끝 십자가 언덕(Cerro de la Cruz)에 오른다. 도시 전경과 함께 웅장하게 솟은 아구아 화산이 압도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서쪽으로 있는 두 개의 쌍화산(Volcan de Fuego y Acateango)이 마침 연기까지 뿜고 있으니 또한 독특한 풍경이다. 큰 기대 없이 찾은 안티과 과테말라는 대박이었다. 콜로니얼 거리와 건축물에 담긴 역사와 함께 사방을 둘러싼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멋진 도시는 일찌감치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콜로니얼 풍으로 단장된 안티과의 거리. 사진 = 김현주 교수
필자가 다녀본 콜로니얼(식민) 도시 중 으뜸으로 꼽을 만한 과테말라의 오래된 도시 안티과의 중앙공원 모습.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안티과 탐방을 마치고 무사히 숙소에 돌아왔다. 중심 광장(Plaza de la Constitucion)은 일요일 오후를 맞은 시민들로 가득하다. 광장 한켠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박수치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나 곡조가 무척이나 서글프다. 산처럼 쌓여 있을 이 나라 사람들 마음속의 사연들을 훔쳐본다. 과장된 여행 경고 정보 때문에 조금은 움츠려 들기는 했지만 과테말라 탐방을 무사히 마쳤다. 늘 도전할 수밖에 없는 여행자로서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작은 성취감이 이는 순간이다.

 

 

17일차. (과테말라 시티 → 니카라과 마나과) 


중미의 교차로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시티를 떠나 엘살바도르(El Salvador)의 수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공항에서 환승하여 니카라과 마나과 행 항공기에 오른다. 나라가 바뀌어도 여느 중앙아메리카 국가처럼 곳곳에 화산들이 우뚝 서있다. 나라는 여러 개 건너지만 모두 지척 거리이다. 엘살바도르는 중앙아메리카의 지리적 중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고 북미와 중미를 잇는 항공 교통의 요충이어서 여기 또한 미국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산살바도르 공항을 들고나는 항공기의 절반 이상이 북미 도시행이고 심지어 화폐도 미 달러화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안티과 북쪽 끝의 십자가 언덕에 오르면 도시 전경과 함께 웅장하게 솟은 아구아 화산의 압도적 풍경을 만난다. 화산이 연기까지 뿜고 있으니 단연 압권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드넓은 미국의 아랫마당


중남미, 특히 중미 지역은 미국의 아랫마당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미국의 아랫마당이 이렇게 넓고 다양할 줄 몰랐다. 두 대양을 안고 있고 사실상 미 대륙 전체를 자신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 두고 있는 미국은 분명히 제국이다. 


중남미를 보러 떠난 이번 여행에서 예상치 않게도 평소 보지 못했던 미국의 숨겨진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한편 같은 맥락에서 중국을 비교해 본다. 만만한 아랫마당 한 뼘 없는, 설령 있더라도 오로지 다른 여러 세력들의 견제 대상이기만 한 중국은 미국 추월은커녕, 미국에 버금가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항공기는 마나과에 닿는다. 우리나라의 1.3배 크기인 면적 13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600만 명 국가인 니카라과의 수도이다. 마나과는 과테말라시티에 이어 중앙아메리카에서 인구 두 번째(105만 명, 광역으로는 250만 명)의 대도시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니카라과에는 원래 레온(Leon)과 그라나다(Granada)의 두 도시가 수도로서의 정통성을 갖추었으나 갈등 때문에 두 도시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마나과가 수도가 되었다.
 

안티과 중심 광장에선 일요일 오후를 맞은 사람들이 박수치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곡조가 무척 서글퍼 치안이 불안한 이 나라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산악 기후에서 열대 기후로


입국세 미화 20달러 지불과 함께 황열병 접종 증명서(옐로 카드, Yellow Card)를 제시하고 입국장을 빠져 나오니 후끈한 열대의 공기가 몰려온다. 예약해 놓은 공항 근처 숙소를 찾아가느라 오랜만에 이마에 땀이 흐른다. 지난 열흘 넘게 볼리비아,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고산 지역을 다니느라고 땀이 흐를 일이 없었다. 


이 나라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깊숙이 미쳐 있다. 숙소 주변은 미국 남부 어느 어수선하고 음험한 뒷골목을 빼닮았다.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들른 현지 식당에서는 귀에 익은 1960-70년대 미국 팝송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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