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76)] 중세 으뜸도시 톨레도보다 아늑한 세고비아 좋아라

  •  

cnbnews 제59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7.02 09:41:3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4일차 (톨레도 당일 왕복)


스페인 기독교의 중심


톨레도(Toledo) 행 알사(ALSA) 버스(www.alsa.es, 왕복 9.7 유로)는 만석으로 마드리드 엘립티카 버스 터미널(지하철 6호선 Plaza Eliptica역)을 떠나 정확하게 한 시간 후 톨레도에 도착한다. 톨레도 버스 터미널을 나서자 멀리 높은 언덕 위 거대한 중세 건축물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절묘한 지형 위에 버티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인다. 중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으뜸 도시에 왔음을 실감한다.


톨레도는 인구 8만 3000여 명, BC 3세기 선주민 켈트(Celtic) 족을 몰아내고 로마의 고대 도시가 세워진 곳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에도 도시 올드타운에는 로마 시절에 건설된 우물, 목욕탕, 상수도 시절 등이 남아 있다. 로마가 떠난 이후에는 고트족(Visgoth)이 지배하다가 8세기 초(711~715)에는 무어족(정확하게는 시리아에 수도를 둔 움마이아드Ummyyad 왕조)에게 점령 당했다. 1085년에는 카스티야(Castilla) 왕조 알폰소(Alfonso) 왕이 무어족을 몰아낸 후 톨레도는 기독교 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많이 걸을수록 더 잘 보이는 톨레도 


길지만 지루하지 않은 언덕을 걸어 중심 광장에 닿는다. 올드타운 탐방의 출발점이다. 여기부터는 발품을 파는 만큼 도시를 즐길 수 있다. 상업 시설과 주거 지역이 혼재돼 있고, 워낙 골목이 복잡한 미로 구조이고, 게다가 걷기에 불편한 화강암 보도에, 오르락내리락 비탈길이 많아, 걷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수많은 중세 고딕 교회 중에서 단연 으뜸은 대성당(Catedral Santa Maria de Toledo)이다. 13세기에 건축을 시작하여 260여 년 걸려 완성된 성당(1227~1493년)은 안과 밖이 모두 거대하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스페인 사람들이 해외 식민지에 세운 성당만 보고 다녔는데 스페인 가톨릭의 본산인 톨레도 성당을 보니 화려함의 극치 그 자체라는 표현 말고는 마땅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260여 년 걸려 완성된 톨레도 성당은 안과 밖이 거대하면서도 정교해 화려함의 극치 그 자체였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톨레도에서는 성채의 문과 교량을 무수히 만나게 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이 도시의 또 다른 상징 건축물은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알카사르(Alcazar) 성채이다. 그러나 도시 탐방의 피날레를 장식하려면 발품을 좀 더 팔아야 한다. 시가지에서 언덕 너머 반대편 미라도르(mirador, 전망대)에서 도시 외곽 스페인 중부 고원의 경관을 감상한 후 테호(Tejo) 강을 건너 맞은편에서 올려다보는 장엄하고 장대한 풍경이 톨레도 도보 탐방의 종결판이다. 


결국 톨레도는 고딕 첨탑과 문(puerto)과 다리(puente)가 어우러져 풍경을 완성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볕 좋은 벤치에 앉아 나른한 오후 한 때를 즐긴다. 

 

 

25일차 (세고비아 당일 왕복)


고대 로마 토목 기술의 백미


세고비아(Segovia) 행 세풀비다(Sepulvida) 버스가 출발하는 마드리드 지하철 3호선 몽클로아(Moncloa) 역 환승 센터는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아 이른 새벽 걸어서 간다. 세고비아행 버스(왕복 14유로)는 한 시간 남짓 걸려 세고비아에 도착한다.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작은 지방 소도시는 마드리드나 톨레도보다 춥다.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수도교(물길 다리)는 20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멀쩡하고 일부는 아직도 물길 용도로도 사용된다니 그 크기와 견고성에 놀라게 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버스 터미널에서 도보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로마 수도교(水導橋, Acueducto de Segovia)부터 찾아간다. 경이로운 모습의 거대한 구조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2000년 훨씬 넘은 구조물이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전 구간 남아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로마가 제국 영토 전역에 건설했던 수도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다. BC 2세기 로마 토목공학  기술의 진수를 본다. 길이 818m 구간에 170개의 아치를 세워 2만 5000여 개의 화강암 블록을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은 자연 봉합 기술로 올려놓았다. 지금도 일부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데 이용될 만큼 잘 지어진 구조물이다. 긴 구간에 걸쳐 남아 있고, 도심 한복판이라는 위치와 우아한 건축미 때문에 스페인에 남아 있는 가장 인상적인 로마 건축물이라고 평가받는다. 


마법의 성 알카사르


마요르 광장(Plaza Mayor)에 있는 중세 고딕 양식의 세고비아 대성당은 웅장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1523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245년 걸려 1768년에 완성한 대표적인 스페인 중세 건축물이다.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알카사르(Alcazar)가 마법의 성처럼 다가온다.

 

마드리드의 많은 광장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마요르 광장에선 항상 흥겨움이 넘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11세기에 건설한 알카사르는 로마 시절 요새가 있던 자리에 건설했고 한때 이사벨라 여왕의 거주 공간으로도 쓰였다. 견고하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세고비아 성벽은 이미 무슬림 시절 건설되었던 것을 알폰소 6세가 이교도들로부터 도시를 탈환한 후 확장, 강화했다. 주로 화강암으로 지었지만 로마 시대 무덤의 묘비석을 가져와 사용하기도 했다.


도시 바깥 성곽 너머 작은 언덕에 조성된 유대인 묘지 터(Cemeterio Judio de Segovia)를 찾는다. 유대인들은 일찍이 기원전 이곳으로 건너와 강제 추방될 때까지 2000년 가까이 살았지만 묘비 하나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 다만 고고학 발굴 팀이 작은 동산 여기저기서 그들의 흔적을 캐내기 위해 표시해 둔 것이 전부이다. 나라 잃고 떠돈 수천 년,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기억한다. 도시 안으로 돌아와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그 옛날 어느 겨울날, 이 침침한 골목을 오늘 나처럼 조심스럽게 걸어갔을 유대인 노파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다.


국토회복과 유대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완전히 몰아내어 국토회복(Reconquista)을 완성한 1492년을 전후해 유대인에 대한 대규모의 학살과 박해가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유대인이 무슬림의 로마 가톨릭 박해를 방관하거나 협조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무슬림의 축출로 유대인들은 설 땅을 잃게 되었고 정해진 시한까지 국외로 떠나지 않으면 처형 당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흩어진 유대인은 북아프리카 등 무슬림들이 쫓겨 간 곳으로 따라가거나 동유럽 등 안전한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가톨릭 개종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개종의 진정성을 면밀하게 감시받았고 결국 처형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땅에 살아오면서 많은 부와 지식을 쌓고 흔적을 남겼으니 세고비아는 톨레도와 함께 기독교, 무슬림, 유대교 세 문화의 도시(Cities of Three Cultures)라고 불린다. 


세고비아 vs. 톨레도


오늘도 어제처럼 도시를 완전히 한 바퀴 크게 돌았다. 더 이상 다리가 마음을 따라주지 않을 만큼 걸었다. 그러나 참으로 분위기 넘치는 하루였다. 왁자지껄한 중국인들로 붐비는 톨레도 올드타운에 비하면 세고비아는 의외의 수확이었다. 조금만 부지런히, 조금만 더 움직이면 고즈넉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세고비아의 매력을 발견했다. 마드리드에서 하루 쯤 더 시간이 난다면 톨레도보다는 세고비아를 추천한다.  

 

한때 찬란했던 대제국의 수도는 화려한 건축물과 동상 등으로 여행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마드리드로 돌아와 도심을 산책한다. 세계 여행을 시작했던 8년 전, 지중해 남유럽 일주 여행길에 들렀던 곳을 다시 찾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한때 찬란했던 대제국의 수도. 제국은 기운 지 오래지만 아직 위용이 장엄하고, 화려한 건축물, 교회, 기념비, 동상이 이 도시를 찾은 여행자를 행복하게 해준다. 오페라, 왕궁, 솔 광장(Puerta del Sol)을 지나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을 찾는다. 마드리드의 수많은 광장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찾은 마요르 광장


처음 왔을 때 그렇게도 넓어 보였던 마요르 광장이 왠지 오늘은 소박해 보인다. 전 세계를 다니며 거대한 광장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오늘도 그때처럼 이 광장에는 흥겨움이 넘친다. 각박한 서민들의 삶, 어려운 경제 상황 같은 것은 여기에는 없어 보인다. 어릿광대들의 익살과 애교, 갖은 물건을 파는 만물상 잡상인들, 광장을 둘러싼 음식점에서 풍겨 나오는 스페인 특유의 고소한 양념 냄새까지 변함없이 나를 반긴다. 늦은 오후 해를 맞으며 한참을 앉아 있는다. 


긴 여행의 끝날, 마지막 저녁식사는 케밥이다. 식당 주인은 방글라데시 출신 이민자다. 일이 무척 고되어 보이지만 여기 삶이 행복하다며 싱글벙글한다. 이젠 곧 즐거운 나라를 떠난다. 다만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전체 실업률 25%, 청년 실업률 50%가 넘는데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들이 웃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어딜 가도 마주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밝은 미소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수많은 문(門)과 다리로 완성되는 도시 톨레도의 풍경. 사진 = 김현주 교수

26-27일차. (마드리드 → 베이징 환승 → 서울 도착)


25번 째 항공기 탑승


오늘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번 여행처럼 집으로 갈 날을 이렇게 기다려온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외롭고 힘들었다는 뜻일 것이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 해발 고도의 급격한 변화, 불규칙한 산악 날씨, 불편한 여행 인프라, 무려 25회에 이르는 항공 이동. 그래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이 장대한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절대자께 감사드린다. 


다시 중국인들 사이에 섞여 베이징 행 에어차이나 항공기에 오른다. 한 무리의 중년 남성들이 비즈니스석 전용 줄을 통하여 항공기에 탑승하려다 직원의 제지를 받는다. 일부 중국인들의 무(無)매너는 도를 넘는다. 그럴 때마다 쌓이는 중국인에 대한 현지인들의 편견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언젠가 어디선가 돌아올 것이다. 외국인들이 입장에서는 사실상 한국인은 중국인과 생김새로는 구별이 어렵기 때문에 이른바 ‘도매금’으로 취급된다는 뜻이다. 중국 인구의 9%, 1억 2000만 명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현실에서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기에 더욱 염려스럽다.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지루한 비행 시간, 항공기 안에서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결국 ‘다음 번 여행은 어디로 가야 할까?’ 하는 생각에 닿아 기내지의 세계 지도를 뒤적거린다. 외롭고 힘들었던 여행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하나의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낳는다는 여행자들의 말에 동감한다. 여행은 중독성이 있나 보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런 종류의 중독이라면 얼마든지 빠져도 좋다. 힘차게 일상으로 돌아갈 분명한 이유를 여럿 찾고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중남미-스페인 여행 시리즈 끝)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CNB 저널 FACEBOOK

CNB 저널 TWITTE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