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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상 골프만사] “필드가 솜사탕 같다”는 블라인드 골퍼…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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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8-599호 김덕상 (사)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2018.07.30 10:22:08

(CNB저널 = 김덕상 (사)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세상에 태어나 한 일 중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여기는 것 하나가 시각장애인들에게 골프를 보급한 것이다. 봉사에 열심인 친구를 돕기 위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가는 등산 모임에 참여했다가 많은 숫자의 장애인들과 교제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몇 사람의 시각장애인들로부터 “골프를 가르쳐 주고 골프를 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자원봉사로 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에게 골프를 지도하였는데, 그 몇 년의 경험에 힘입어 블라인드 골프 지도와 보급에 앞장 설 수 있게 되었다.


블라인드 골프의 역사는 1924년에 미국에서 시작된다. 미네소타 주에 살던 러셀이 자동차 타이어 폭발로 실명하고 실의에 빠져 은둔생활 할 때, 친지들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향군협회는 실명한 군인들의 치료 수단으로 골프를 권장했다. 월남전 참전 조종사 중에서 실명 후 재활 프로그램으로 골프를 한 것이 블라인드 골프의 보급 계기가 되어, 지금은 약 20여개 나라에 수많은 블라인드 골퍼들이 생겼고, 매년 다양한 블라인드 골프 대회도 열리고 있다.  


블라인드 골프의 역사가 100년이 다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10여 년 전인 2006년 말에 산행 모임 회원 8명의 골프 배우기로 시작되었다. 당시 골프를 가르치며 봉사단을 이끌었던 내가 2007년 10월 세계협회장을 초청하고 제1회 시각장애인 골프대회를 베어크리크 골프클럽에서 개최한 게 최초의 공식 기록이다. 현재 전국에 약 100명이 블라인드 골퍼로 운동하고 있다.

 

호주 시각장애인 학교의 피터 리처즈 군이 골프를 치는 모습을 촬영한 1960년대 사진. 사진 = 위키미디어

처음에 나는 그들을 위한 봉사자라고 생각했지만, 블라인드 골프의 수많은 과정을 통해 성숙해진 나야말로 진정한 수혜자라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나는 아픔, 안타까움, 기쁨의 눈물은 물론 감동의 눈물까지도 수 없이 흘렸으며, 골프를 통해 그들과 희망의 빛을 나누기도 하였다.

 

골프로 희망의 빛을 찾은 사람들


희망의 빛을 찾은 제자 중에 황 마리아는 음악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후천적으로 실명했고,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하는 어려운 여건에도 골프에 도전하였다. 약 10개월의 훈련 끝에 제1회 대회에서 18홀을 걸어서 라운드를 마쳤다. 


그 후 그녀는 한 때 포기했던 꿈인 복음성가 가수가 되어 ‘행복레슨’ 등 두 장의 앨범을 내고, 지금은 환자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대에 봉사자 복음 성가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한 명언을 잊을 수가 없다. “필드에 서 보셨어요? 그건 솜사탕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신혼 6개월만에 실명을 한 양o경 씨는 500미터를 걷는 데 쉬엄쉬엄 30분이나 걸릴 정도로 허약하였지만, 골프로 훈련을 한 후에 18홀을 거뜬히 걸어서 시합을 마침으로써 큰 감격을 안겨주었다. 훗날 국가대표 볼링 선수까지 된 그녀가 골프 시합을 마친 바로 그날 밤에 서투른 솜씨로 내게 보내준 문자는 스마트폰으로 바꿀 때까지 몇 년 간 보관했고, 지금은 내 기억의 돌판에 새겨져 있다. “사람이 거듭 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깊은 감사 드립니다.”


보석 세공사로 일하던 최 모 씨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늦은 나이에 맹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지압 안마사로 일하는 왕년의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열심히 훈련하였고, 또 운동 신경도 좋은 편이라서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기록을 내는 스타 플레이어가 되었다. 자주 만나던 나의 희망대로 크리스천이 된 그는 지금 아내와 함께 지압원을 운영하면서 전도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내가 아무 조건 없이 물심양면으로 자기를 돕는 것을 무척 감사히 여기며 “선생님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느 육교 위를 걸으며 내가 그에게 이야기했다. “여보게 천국에 가면 눈이 다 잘 보일 테니, 거기에서는 자네가 나의 캐디를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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