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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26살 코코 카피탄,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겪은 마음 성장통

대림미술관서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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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3호 김금영⁄ 2018.08.30 10:08:15

코코 카피탄 작가.(사진=대림미술관)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6살. 꼬마 아이들은 어른이라고 말하고, 연륜 있는 어른들은 아직 어리다고 하는, 어른과 아이 사이 애매한 나이. 26살 작가 코코 카피탄이 “나는 코코 카피탄”이라며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말을 건넸다.

 

대림미술관이 코코 카피탄의 개인전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전을 내년 1월 27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재능 있는 젊은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대림미술관이 기획한 자리다. 그간 거장 작가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해 왔던 대림미술관으로서는 이색적인 행보다. 안주휘 수석 큐레이터는 “대림미술관이 젊은 신예 아티스트로 대형 개인전을 꾸리는 것은 도전이었다. 또 이번 전시는 코코 카피탄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코 카피탄을 택한 이유가 있다. 한정희 실장은 “코코 카피탄의 전형적이지 않은 작업에 관심이 갔다. 사진작가로 유명하지만, 사진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설치, 페인팅,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본인의 생각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그 안에 제 2의 사춘기라든가, 마음 성장통 등 26살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작업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코코 카피탄은 보그, 데이즈드, 도큐멘터 저널 등 패션 매거진과 작업하며 다양한 패션 사진을 찍었다.(사진=김금영 기자)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코코 카피탄은 런던 패션대학에서 패션 사진을 전공했다. 보그, 데이즈드, 멀버리, 메종 마르틴 마르지엘라, 컨버스 등 유명 패션 브랜드 및 매거진과의 화보 촬영을 진행했으며, 2015년 영국 런던 포토그래퍼스 갤러리에서 FF+WE 상을 수상하는 등 사진작가로서의 재능을 입증했다.

 

이번 전시는 코코 카피탄의 사진 작업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작업들을 전면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가장 먼저 2층 전시장에서는 아티스트로서의 코코 카피탄을 만날 수 있다. ‘패션이 없는 패션 사진’ 섹션에서는 사진 속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초상 사진의 장르적 특성을 접목시켜, 모델의 포즈, 성격, 그리고 감정까지 전달하는 작가의 특별한 접근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빅 팝 이후의 예술과 상업’ 섹션에는 소비문화의 아이콘이자 팝아트가 대표적으로 다뤄 왔던 코카콜라를 주제로 한 세 점의 핸드라이팅, 사진, 세라믹 설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구찌와의 컬래버레이션 화보와 자신의 글을 접목시킨 구찌 티셔츠를 활용한 설치 작품은 ‘돌아가고 싶은 동화를 믿었던 시절’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구찌와의 컬래버레이션은 내 커리어를 바꾼 중요한 계기였다.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 내 감정들을 끄적거리곤 했다. 그런데 구찌가 내가 주력하고 있던 사진 작업이 아니라 이 핸드 라이팅에 주목했다”며 “그때 내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작업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어떤 작업을 하든 ‘이런 반응이 올 거야’라고 의식하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임했다”고 말했다.

 

코코 카피탄과 구찌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작가의 이런 마음이 보다 솔직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공간이 3층과 4층 전시장이다. 2층이 코코 카피탄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데 집중한다면, 3층과 4층은 26살 평범한 코코 카피탄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보다 접근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3층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죽음에 대한 불안,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은 작가의 마음이다.

 

‘결국은 사라질 것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 섹션은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았다. 2017년 여름 작가가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마주한 빈 건물들과 버려진 도로, 교회와 묘지, 쓸모를 잃고 방치된 길가의 사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 풍경들은 매우 쓸쓸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말해주는 듯해 인상적이다.

 

삶에 대한 작가의 당당한 고백
“죽기 전 나는 살고 싶다”

 

삶과 죽음에 대한 코코 카피탄의 생각을 담은 ‘결국은 사라질 것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 섹션. 2017년 여름 작가가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마주한 빈 건물들과 버려진 도로, 교회와 묘지 등을 촬영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사진과 더불어 ‘죽기 전 나는 살고 싶다’는 내용의 핸드 라이팅 또한 설치됐다. 식상한 말일수도 있지만 인생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작가가 계속 되새기는 말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우리가 삶에서 죽음까지 가는 여정이 짧다는 데서 착안한 작업들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실상 의미 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죽음이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며 “이건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20대 중반의 아직 어린 나이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을 더 열심히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공간들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도가 눈에 띈다. ‘홀로 있는 지금, 가장 즐거운 시간’ 섹션은 2011년 여름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 홀로 여름방학을 보낸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 작업을 다룬다. 자신과 타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인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도를 하는 것. 여기서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 그리고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탐구하고,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인지 그 간극을 파고 들어간다.

 

코코 카피탄, ‘세 쌍둥이(The Triplets) 2’. C-타입 프린트, 영국, 런던, 2018. © Coco Capitán(사진=대림미술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은 3층의 또 다른 섹션 ‘보여지는 방식에 대한 생각들’에서도 드러난다.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한 모델들이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 주목한 작업이다. 두 섹션은 자신의 정체성이 스스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형성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탐구는 ‘스노비즘에 대한 역발상’에서 이뤄진다. 스노비즘은 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을 일컫는 용어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스스로를 풍자하는 태도를 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엔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영향을 끼쳤다. 작가는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교육을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때 작가는 달라진 환경에 문화적 소외감을 느꼈다고.

 

‘스노비즘에 대한 역발상’ 섹션은 스페인 남부 끝단 마을에서 자라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가 느낀 가치관의 혼란, 문화적 소외감을 어떻게 작업으로 극복했는지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10대는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스페인 남부 끝단에서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18살 때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며 “내가 태어난 마을은 자본주의와는 먼 지역으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 팽배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뭘 입을까?’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영국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했고, 10대 아이들도 패션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엔 소외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작가의 10대 시절. 하지만 어느 하나가 옳다기보다는 각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 나름의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작가는 “나는 분명 그렇게 자라지 않았는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어른이 돼가면서 여러 사고방식에 소비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신경 쓰였다”며 “이 모든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도 26살인 나는 정체성을 찾아가고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4층엔 주 6일,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매진하는 스페인 올림픽 싱크로나이즈 선수단의 모습을 촬영한 이미지가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쌍둥이 형제는 어린 시절 작가가 환상과 실제를 오가며 만든 허구 세계 속 인물들이다. 생소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생긴 문화적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쌍둥이 형제와의 상상 속 일화를 그리거나, 패러디와 자기 풍자적 태도를 담은 작업들을 통해 부와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허영심과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위트 있는 태도로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4층 전시장에서 이번 전시의 메인 메시지를 전한다. 막 연습을 마친 스페인 올림픽 싱크로나이즈 선수들을 촬영해 실물 크기의 이미지로 전시했다. 일주일에 6일,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매진하고 있고 있는 이 선수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건 꿈을 좇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코코 카피탄이 적은 문장들. ‘나는 올림픽 수영장을 채우고 있는 백만 개의 물방울 중 하나다’로 시작하는 문장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사진=김금영 기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문구가 특히 눈길을 끈다. ‘나는 올림픽 수영장을 채우고 있는 백만 개의 물방울 중 하나다’로 시작하는 문장은 ‘나는 당신이 올림픽 수영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의 일부다’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최고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임을 상기시키는 자기 인식이기도 하다’ 등 마냥 긍정적인 소리를 하기보다는 불안감을 인정하고, 용기를 되새기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올림픽 수중 발레 선수다. 당신은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는가. 나는 올림픽 수중 발레 선수이며, 나는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이라는 말로 끝맺는다. 즉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불안해하거나, 돌아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자는 것. 그것이 사춘기 시절만큼이나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폭풍 같은 마음 성장통을 겪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코코 카피탄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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