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 위치한 갤러리퍼플이 9월 7일~10월 13일 이배경 작가의 개인전 ‘생각에 잠긴 공간(Thoughtful Space)’을 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창 5개가 보이는데, 여기에 하얀색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파도들을 자세히 바라보면 수많은 하얀색 육면체들이 움직이고, 겹쳐지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장 안쪽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원형공간(Circular space)’ 작품도 감상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풍경이다.
작가는 전시장의 공간을 실측하고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화이트 큐브들의 움직임을 매우 정교하게 설계해 자연스러운 파도의 움직임을 만들었다. 약 2개월의 기간 동안 랜더링한 영상을 편집해 프로젝터를 통해 공간에 투사하고, 실제 바다에서 녹음한 파도소리로 가득 채워진 공간은 오랜 시간 경험하면 할수록 생경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가는 이런 환경을 통해 관객들이 화면과 소리에 집중하면서 잡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공간, 즉 ‘생각에 잠긴 공간’을 설계했다.
작가는 ‘시간’, ‘공간’, ‘몸이’라는 요소와 각 요소들의 접점과 상관관계를 주제로 인터랙티브 영상설치 및 혼합미디어 설치작업으로 표현하는 창작활동을 한다. 그는 “상호작용성을 토대로 현상을 만들고, 이렇게 구현된 현상을 매개로 관객이 사유하도록 하는 것이 작업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2000년대 초반 독일 유학시절부터 진행해온 미디어 작업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공간과 관객들의 움직임, 연출된 시간, 조건 등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아트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미디어가 발전하고 다변화함에 따라 미디어 작가로서의 접근방식도 점차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최근에는 각각의 요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작가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작가는 “공간, 시간은 관점에 따라 정의가 단순할 수도, 정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리적인 공간 외에도 디지털 시대에서 전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실재하며 계속 생성되고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당연시되던 영역들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디지털미디어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인정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시간 또한 그렇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론처럼 우주의 팽창과정을 살고 있는 인류가 언제인가 수축의 주기로 전환됐을 때 지금의 시간과는 반대로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며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은 모든 것의 틀을 벗어난 다원주의 시대라고 했다. 예술은 항상 경계를 넘고 무너뜨렸다. 그리고 공간과 시간에 대한 사유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갤러리 퍼플 측은 “지난해 아트사이드 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증강현실과 가상현실로 이뤄진 ‘무중력 공간(zero gravity space)’ 연작을 통해 작가는 그동안의 작업 전반을 돌아보고 공간과 시간에 대한 편안한 상념을 나누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바다의 유연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육면체를 이용해 단순화한다. 또한 실제와는 다른 생경한 형태를 제시함으로 관객의 사유를 자유롭게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