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스페이스 풀(디렉터 안소현)은 11월 25일까지 금혜원 작가의 개인전 ‘섬호광’을 연다. 전시는 작가의 외할머니가 작고하기 전 그간의 삶을 회고하며 쓴 노트 6권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1945년 해방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서둘러 피난을 가야 했던 격변의 그때, 아이 넷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황주에서 해주를 거쳐 월남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는 할머니의 기록 글쓰기에 지난 2년 동안 조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상념들을 이야기에 틈입시켜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자전적 소설을 만들어냈다.
경험을 소설로 재구성한 작가는 그것을 그대로 전시장에 놓아두는 대신, 공간 곳곳에 ‘목소리’로 숨겨 뒀다. 그것을 발화하고 있는 인물의 시점은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는 어린 딸, 즉 작가의 어머니라는 설정이다. 이는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수많은 미시사의 방식을 차용한 것. 손글씨의 기록을 소설로 전환하고, 다시 목소리로 발현되는 과정은 수직적 계보의 가족사 서술방식에서 벗어나, 수평적이며 비선형적으로 확장된 하나의 세계로써 가족을 경험하게 한다.
작가는 재개발 현장, 지하철 터널, 난지도, 쓰레기 처리 시설 등 도시의 근간이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는 공간들을 채집해, 그 안에 담겨있는 긴장과 환영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미지로 오늘을 발견하고 재현하는 문법에 무엇보다 익숙한 작가는, 역시나 물려받은 오래된 사진을 통해 과거사의 현대적 반추를 시도한다.
전시장을 채운 가구 사이사이 옛 사진을 재차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빛바랜 회색조의 사진들은 익숙한 것 같지만 동시에 묘한 이질감을 풍기는데, 사진에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 작가는 이 사진들에서 인물을 모두 지워내고 빈 곳의 배경을 천천히 복원해 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소환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연결, 그 둘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소설 속 사진에 관한 작가의 단상과 함께 지난 시간에 대한 현재적 질문임을 암시한다.
아트 스페이스 풀 측은 “섬호광(閃互光)은 색이 다른 섬광이 일정한 주기로 엇바뀌어 비치며 배의 항해를 안내하는 등불이다. 번쩍이며 지속되는 불빛 사이에 서로 호(互)가 붙었다. 전시 ‘섬호광’은 독립적이지만 서로에게 긴밀하게 간섭하고 이끌며 성장해 나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잊힌 역사를 새롭게 독해해 나가며 발견된 것들에 대한 전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