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나무 위에 구현해온 김덕용 작가와 책을 이용해 ‘훼손의 아름다움과 재탄생’을 이야기해 온 이지현 작가가 ‘마이 스토리’라는 타이틀로 만났다. 갤러리조은이 김덕용, 이지현 작가의 2인전 ‘마이 스토리’를 11월 30일까지 연다.
김덕용은 자연의 순리대로 변화하는 사계의 모습과 시간의 간극을 작품에 드러낸다. 그는 작업할 때 캔버스 대신 시간성이 충만한 나무를 사용한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무를 다뤄온 작가는 직접 수집한 나무의 표면을 고르게 하기 위해 갈고 닦으며 문지르고 그을리기를 반복한다. 여기에 단청채색을 하거나 자개를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시간이 흘러 빛바랜 단청과 같이 채색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단청기법의 그림은, 작품의 바탕이 되는 나뭇결만큼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나무와 함께 긴 시간 이어온 자개 작업은 화면의 뒷면을 채색해 은은하게 비치는 전통 동양화 기법인 배채법으로 표현됐다.
김덕용은 일상에서 마주한 따뜻한 온기를 담은 공간을 그린다. 때마다 피고 지는 꽃들, 기와집, 세월이 느껴지는 이불과 책이 그려진 풍경은 “그림은 손재주나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뒷받침해준다. 살아 숨 쉬는 나무위에 그려진 ‘결’과 더불어 어머니, 누나, 동생과 같은 아련한 추억과 따뜻했던 기억을 구현한 작품들은 김덕용의 인간적 감성까지 담아 보여준다.
책을 망치로 두드렸다. 해체하니, 책 표면에 보풀이 몽실 거린다. 이지현의 전매특허인 해체와 재생의 대표작들의 모습이다. 그는 예술, 인문학 등 다양한 책들을 펀칭기로 완전히 파편화 시킨 뒤, 다시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렇게 재탄생된 책을 통해서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그는 옷이나 책이나 기본 형태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표면만 두드리고 찢을 뿐이다. 무엇을 해체라고 했을까? 바로 책 속 글자. 두드리고 찢는 과정이 더해지면서 글자가 해체된다. 망치질로 물성만 남고 과거 스토리는 지워진다. 본래의 의미는 해체되지만 작가의 의도로 새롭게 재생된다. 책장에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가지런히 꽂혀 있던 책의 새로운 변신.
이지현은 “누군가가 입었던 옷이나 제주 해녀의 옷과 아버지의 서재나 헌책방에서 구한 인문학 서적을 활용한다. 재료 자체에 의미가 충분하다. 이를 해체 과정을 통해 지워내지만, 작업하는 과정에 제 감성이 담기게 되니 재생도 있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순애보를 다룬 책을 두드리면서 가슴이 설렜다. 내용을 버리기에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글씨를 살리고, 형태도 자유롭게 구사했다”고 덧붙였다.
갤러리조은 조은주 큐레이터는 “김덕용 작가의 작품은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 따뜻하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온기가 느껴지는데 꼭 누군가 마음을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더불어 이지현 작가의 작품은 책 속에 적혀진 내용 뿐 아니라 숨겨진 번외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역동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이야기가 숨겨진 이번 전시가 감상자의 눈과 마음으로 인해 ‘마이 스토리’로 재탄생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