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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2대 주주 된 KCGI, 3월 '이사진 물갈이'부터 한판 붙을 듯

'경영권 방어 취약' 한진칼 대상 투자자 쉽게 모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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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5호 윤지원⁄ 2018.11.22 09:13:59

대한항공 직원들이 지난 5월 4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촛불집회'에 마스크를 쓰고 참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주 한진칼의 지분 9%를 취득하며 2대 주주로 단숨에 올라선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KCG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빼앗아 올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까지 나온 가운데, KCGI는 19일 공식 입장을 통해 경영 활동에 대한 ‘감시와 견제’로 자신들의 역할을 제한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KCGI가 처음부터 지배구조에 취약점을 갖고 있던 한진칼을 정조준하고 장기적인 펀드를 조성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KCGI는 11월 19일 입장문을 통해 한진칼 지분 취득 목적을 “한진칼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기업가치가 매우 저평가된 한진칼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인 회사 발전과 가치 정상화를 도모하며, 궁극적으로 직원·주주·고객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앞선 지난 15일 KCGI는 이 회사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인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가 지난 14일 기준으로 한진칼의 지분 9%(532만 2666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이는 한진칼의 1대 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지분율 17.84%) 다음으로 많은 지분율로, 국민연금(8.35%)을 넘어선 2대 주주에 해당한다.

한진칼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지주사다. 주주행동주의 사모펀드를 표방하는 KCGI가 한진칼의 경영권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했다는 것은 곧 대한항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뜻. 이에 올 한 해 대한항공을 둘러싼 최대 이슈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과 이에 따라 훼손된 제1 국적 항공사의 신뢰도 회복 여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중구 한진빌딩. (사진 = 연합뉴스)

 

지배구조 문제가 투자 기회 되다

KCGI는 강성부 전 LK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설립한 사모투자펀드다. KCGI는 ‘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의 약자로,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노골적인 기업 목표를 담고 있다. 지배구조가 취약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경영에 참여하는, 일명 ‘주주행동주의’를 지향하는 펀드다.

강성부 대표는 2005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라는 보고서를 내는 등 국내에서 지배구조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던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국내 대기업에 만연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주식가치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을 꾸준히 이어왔다. 지배구조만 바로잡아도 가치가 상승할 기업이 적지 않으며 이러한 전략이 사모투자 전략으로 유효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강 대표는 신한금융투자 등에서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얻던 중 2015년 LIG그룹 PEF인 LK투자파트너스 대표로 취임하면서 사모펀드(PE) 업계에 뛰어들었다. LK투자파트너스에서는 현대시멘트, 대원, 극동유화 등 굵직한 투자들을 주도했는데 특히 요진건설에 투자해 2년 반 만에 두 배 이상의 수익을 남기는 실적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강성부 KCGI 대표. (사진 = KCGI)

 

KCGI는 그가 지난 8월 LK파트너스를 나와 독립하며 설립한 PEF다. KCGI는 블라인드 펀드 조성에 나선 지 1개월여 만에 140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그동안 그가 펼친 이론과 분석, LK파트너스에서 증명한 성과로 높은 신뢰를 쌓은 결과다.

이번에 KCGI가 그레이스 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 9%를 인수하는 데 들인 금액은 약 1307억 원. 8월 당시 모집한 펀드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KCGI가 지난 9월 통신 장비 회사인 이노와이어리스의 경영권을 방산업체인 LIG넥스원과 공동 인수하면서 쓴 첫 투자금은 204억 원이었다.

KCGI는 19일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9%나 되는 지분을 취득한 이유에 대해 “경영 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는 취득한 날부터 6개월이 경과할 때까지 발행주식의 10% 이상 투자해야 한다”며 “경영 참여목적의 대량보유 공시(5%) 이후 지분 증가가 어려워 외견상 10%에 근접한 수준(9%)의 투자를 감행했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 업계에서는 8월부터 누군가 한진칼 지분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며 KCGI의 1호 펀드 목표액이 처음부터 한진칼 지분 9%에 맞춰져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진칼 시가총액 1조 7000억 불과

한진칼은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과 그룹 안팎에서 터져 나온 경영진 퇴진 요구 등으로 인해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대한항공에 경영 쇄신을 촉구해온 것이나, 한진칼과 대한항공 등 소액주주 연대가 지난 5월 제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를 통해 오너 일가 퇴진 운동을 시작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정작 오너와 특수 관계자 지분은 30%에도 못 미친다. KCGI가 현재 보유한 9%의 지분보다는 3배 이상 많지만,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에 동의하는 투자자들이 모일 경우 경영권을 방어하기 쉽지 않은 지분이다.

또한 한진칼은 대한항공, 진에어, 한진 등의 상장사와 칼호텔네트워크, 토파즈여행정보, 정석기업 등의 비상장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시가총액이 21일 기준 1조 70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14일 이전에는 1307억 원으로도 9% 지분 획득이 가능했다. 5000억 원이면 KCGI 혼자서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상대가 시가총액 300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였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한진칼 경영권의 취약성은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당시에도 다른 PEF가 수면 아래서 한진칼의 지분 매수를 준비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5월 24일 필리핀 가사 도우미 불법 고용에 따른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남다른 강 대표가 한진칼의 약점을 몰랐을 리 없고, 외면할 이유도 없다. 업계에 따르면 강 대표는 LK파트너스에 있을 때부터 한진칼 투자를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LK파트너스가 LIG그룹의 계열사인 만큼 강 대표가 한진칼을 목표로 한 투자를 시작할 경우 그룹사 간 분쟁으로 비춰지며 오해를 살 여지가 컸다. 따라서 강 대표의 독립은 한진칼 투자에 대한 의지가 강했으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논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KCGI는 증권사 항공 담당 애널리스트를 펀드 운용 역으로 영입하고, 외부 자문사까지 선정하며 한진칼 투자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 조성한 1400억 원에는 기관투자가들의 참여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조기에 목표액을 마감했다. 한진칼 지배구조 문제의 심각성에 관한 인식이나 이에 대한 KCGI의 투자 전략에 관한 공감이 폭넓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수백억 원대 상속세 탈루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9월 20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진칼 겨냥 모금' 쉽게 이뤄져…"기업가치 회복 맡겠다”


KCGI가 한진칼의 경영에 어느 정도 비중으로 개입하게 될지는 이 회사가 공시한 한진칼 지분 보유목적과 19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대략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KCGI는 보유 목적 첫 번째에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를, 두 번째에 △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을 명시했다. 그밖에 △회사의 자본금의 변경 △회사의 배당의 결정 △회사의 합병, 분할과 분할합병 △주식의 포괄적 교환과 이전 등도 폭넓게 명시했다. 두 조항만 봐도 KCGI가 한진칼의 지배구조 개선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19일 입장문에서는 “적대적 M&A 등은 없다”고 못 박으며 “한진칼 경영권에 대한 위협보다는 한진칼의 주요 주주로서 경영 활동에 관한 감시 및 견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KCGI가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 측과 이사회 구성 문제를 놓고 표 대결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주된 쟁점은 내년 3월 17일 임기가 만료되는 한진칼 등기임원 7인 중 4인에 대한 신임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이다.

한진칼은 이사진이 모두 조 회장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어 이사회 독립성 훼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외에도 석태수 사장은 한진해운 대표, 한진 대표 등을 거쳐 지주사 대표 자리까지 맡는 등 두루 신임을 받아온 조양호 회장의 명실상부한 오른팔이다. 사외이사 중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과 이석우 법무법인 두레 변호사는 조 회장의 경복고 동문이고, 조현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대한항공 지주사 전환 자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은 내년 3월 17일 부로 등기임원 임기가 만료된다. (사진 = 한진그룹)

 

이 중 내년 임기가 만료되는 등기임원은 석태수 사장과 조현덕 사외이사, 김종준 사외이사 등 이사 3인과 상근감사인 윤종호 전 외환은행 글로벌기업 사업본부장을 포함한 4명이다. 즉 내년 3월의 주주총회는 한진칼 등기임원진 과반수를 교체할 기회인 셈이다.

특히, 감사 선임에는 3%룰이 적용된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아무리 높아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최대 3%만 인정된다. KCGI가 우호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다른 이사진을 원하는 인물로 교체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하더라도, 감사를 교체할 수 있는 확률은 상당히 높다.

주주총회가 이사를 심사숙고해서 선임하고, 이사회가 경영권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KCGI가 말하는 주주로서의 행동이며, 제대로 된 지배구조다.

 

기업 가치 얼마나 높여 이익 얻을지 관심

사모펀드 운용사인 KCGI가 한진칼의 지분 확보와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높은 수익’이다.

KCGI는 입장문에서 “일부 외국계 투기 자본이 요구하는 비합리적 배당 정책, 인건비 감소를 위한 인력 구조조정 및 급격한 주가 부양을 통한 단기 이익 실현을 지양하고, 장기적인 회사 발전 및 가치 정상화에 따른 직원, 주주, 고객의 이익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1999년 SK그룹에 대한 M&A를 시도했던 타이거 펀드나 2004년 삼성물산을 공격했던 헤르메스 같은 해외 헤지펀드들이 1~2년 만에 지분의 시세차익만 챙기고 빠져나간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KCGI는 최장 14년이라는 긴 투자 기간을 강조하며 “중기적 투자로 지배구조 개선, 기업가치 제고, 지속가능 경영 및 주주이익 증대를 도모한다”고 밝혔다.

현재 저평가됐다고 판단하는 한진칼의 기업가치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끌어올릴 수 있는 가치의 차이가 곧 KCGI의 성과가 된다. 현재 한진칼의 시가총액은 최근 주가 상승분을 고려해도 1조 7000억 원 규모다. 전문가들은 한진칼과 보유 자회사의 가치는 적어도 2조 원 수준이 넘어야 정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주 칼호텔 전경. (사진 = 칼호텔 홈페이지)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회사의 실적 개선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수술대에서 가장 먼저 도려내야 할 환부는 자회사들이 보유한 유휴자산으로 보인다. KCGI 측 역시 “한진칼의 계열사들은 유휴자산의 보유와 투자 지연 등으로 매우 저평가되어 있다”고 밝혔다.

 

한진칼은 칼호텔네트워크, 정석기업, 한진관광 등 여러 비상장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서울 종로구 송현동의 경복궁 호텔 부지와 일천 율도 토지의 장부가만 5500억 원에 달하며, 제주도에도 정석비행장(38만 평), 민속촌(5만 평), 제동목장 등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자산이 그동안 제대로 된 시가가 아닌 장부가로 평가받은 것은 그룹 오너 일가의 소유권 승계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들 자산의 가치만 정당하게 평가해도 한진칼의 기업가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예컨대 현재 칼호텔네트워크가 보유한 토지와 건물의 자산가치는 2372억 원으로 공시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주 칼호텔, 서귀포 칼호텔,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그랜드하얏트 인천,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호텔 등 칼호텔네트워크의 시장가치가 1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분석한다.

또, 한진칼이 올해 3분기까지 올린 매출 520억 원(자회사 실적 제외)의 상당수는 대한항공 등 계열사에서 생기는 배당금이다. 다시 말해 대한항공이 안고 있는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면 그만큼 한진칼의 기업가치도 올라간다.

 

'물벼락 갑질' 논란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가 지난 5월 2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올해 대한항공의 주가를 가장 격하게 흔든 리스크는 바로 오너리스크였다. 지난 4월 2일 3만 4000원 대였던 대한항공 주가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이 쏟아진 이후인 6월 말에는 2만 8000원 대로 18% 가까이 떨어졌다.

19일 KCGI가 입장문을 냈을 때, 업계 일각은 ‘감시와 견제’라는 원론적인 수준에 그친 입장 발표 때문에 한진칼 주가 상승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경영진 퇴진을 부르짖던 세력이 슈퍼히어로를 만난 줄 알았으나, 평범한 투자 회사였음을 알게 되서 실망했다는 식의 해석이다.

하지만 이처럼 KCGI가 높은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이루려는 한진칼의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는 불가피하게도 현재 경영권 보유자인 조 회장의 인맥과, 사유화되다시피 한 자산을 모두 솎아내는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장악이 아닌, 감시와 견제라는 주주 본연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해도 KCGI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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