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는 다음달 6일까지 사진작가 이명호의 개인전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를 연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에서 5년 만에 열리는 이명호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대표 연작인 ‘나무(Tree)’, ‘신기루(Mirage)’ 등과 더불어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낫띵 벗(Nothing But)’, ‘9분의 층위(9 Minutes’ Layers)’, ‘스톤(Stone)……’ 등 2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전시장 1층에는 ‘나무’ 연작 3점이 놓였다. 지난 2013년 갤러리현대 전시 이후 제작된 작품들로, 제주도의 오름과 억새밭을 오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2016년에 촬영된 ‘나무(Tree)… #8’의 경우,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9개의 대형 캔버스 구성된 대형 설치 작업으로 구현됐다.
전시장 2층은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작이자 이번 전시의 제목인 ‘낫띵 벗’ 5점과 촬영 과정의 기록을 담은 ‘뷰 오브 워크: 낫띵 벗(View of Work: Nothing But)’ 2점이 전시된다. 다대포와 서해안 갯벌에서 촬영된 작품들이 다양한 크기로 선보여진다. 더불어 전시장 한켠에는 이미지 채집에 대한 욕망과 허망을 다룬 또 다른 신작 ‘9분의 층위’가 1분 단위로 촬영된 10점의 기록 사진과, 그 10점의 RGB 값이 쌓여 마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과 같이 하얀 잉크로 이뤄진 결과물로 나뉘어 선보인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작가의 또 다른 대표 연작이자, 비현실 세계로 이루어진 ‘신기루’ 연작 3점이 검은 공간 안에서 전시된다. 그와 대조되는 하얀 공간에서는 기존의 수평적 시선에서 벗어나 수직의 시선으로 이끼 밭에 놓인 돌과 그 흔적을 촬영한 ‘스톤’ 연작 4점이 설치됐다. 전시장 안쪽에는 올 여름 프랑스 생떼미리옹에 위치한 샤또라호크 와이너리와의 협업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업인 ‘바인(Vine)…#1_샤토 라로케(Château Laroque)’와 그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이 함께 전시된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2004년부터 시작된 ‘사진-행위 프로젝트’ 혹은 ‘예술-행위 프로젝트’로 불리는 일련의 작업들로 정의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프로젝트는 작가의 행위를 통한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탐구이며, 동시에 예술의 역할과 본질을 환기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여기서 작가의 행위는 특정 대상 뒤에 캔버스를 세우거나 넓은 면적을 가로 지어 캔버스를 펼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명호를 ‘나무작가’로 알린 대표 연작 ‘나무’에서 작가는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세움으로써 피사체가 된 나무 한 그루를 사진에 온전히 담아낸다. 하얀 캔버스 앞에 오롯이 선 나무는, 작가의 개입에 의해 하나의 자연물에서 캔버스에 놓인 예술적 대상이자, 주변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하나의 존재로 재탄생된다.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드러내는 작가의 행위는, 예술의 가장 원초적인 역할 중 하나인 ‘재현’이라는 영역을 탐한다.
‘나무’ 연작이 있는 현실을 드러냈다면 ‘신기루’ 연작은 사막 한가운데 기다란 캔버스를 보일듯 말듯 설치해 마치 신기루와 같은 비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작가는 ‘신기루’ 연작을 현실을 토대로 전혀 새로운 것이 옹립되는 ‘재연’이라는 개념 하에 둔다.
이명호가 제시하는 ‘재현’과 ‘재연’의 의미의 틈에서 이번 신작이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되는 ‘낫띵 벗’ 작업의 캔버스는 그저 덩그러니 서 있다. 이제껏 작가의 작업 속에서 인식 전환의 매개물로써 자리하던 캔버스는 허무하리만큼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은 채 꼿꼿이 서 있다. 무언가를 드러내거나(재현), 만들어내는(재연) 역할을 상실한 캔버스는 되려 제시하는 어떤 것이 없기에 모든 것을 품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며, 존재의 흔적과 실체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갤러리현대 측은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너머에서 비롯된 작업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단지 구현된 가시적 이미지를 통한 인식 전환의 경험을 넘어, 미처 구현되지 아니한 비가시적 이미지로의 체험까지 아우르며, 이를 자유로이 해석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