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스페이스 풀(디렉터 안소현, 이하 풀)이 2월 28일~3월 31일 기금마련전 ‘2019 풀이 선다’를 연다. 이 전시는 공간 운영을 위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현재 미술 환경에서 ‘대안’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대안공간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자문하는 자리다.
올해로 풀은 개관 20주년을 맞는다. 아트 스페이스 풀 측은 “1990년대 처음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이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미술관과 상업 화랑이 수용하지 않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절실했고, 예술인들은 말 그대로 ‘기성 제도의 바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짚었다. 이어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비영리 공간들이 직간접적으로 공공기금에 의존하면서 제도 안에 편입돼 있고, 미술관과 상업 화랑도 앞 다퉈 젊은 작가들을 수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화된 대안공간은 형용모순이 아닌가?’ ‘신생공간이 젊은 작가들의 주요 거점이 된 상황에서 기존 대안공간들이 존립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도 놀랍지 않다”고 짚었다.
또한 “따라서 풀은 이번 전시에 작가들의 참여를 요청하면서, 여전히 대안적 공간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지금 필요한 ‘대안’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이번 전시에서 풀은 생존에 필요한 수단뿐만 아니라 생존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번 전시엔 풀과 인연을 맺은 65명/팀의 작가들이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 작품 120여 점을 선보인다. 김지평의 ‘루루루루루’는 붉은 종이에 한자 ‘눈물 루(淚)’ 혹은 그것을 우리말 독음대로 쓴 ‘루’ 자를 써넣은 것으로, 초현실주의 시에서처럼 백묵 물감이 흘러내린 모양이 눈물을 연상시키는 칼리그램이자 칼리그래피다.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이용해 전통, 아시아, 여성 등의 주제를 선입견 없이 현재의 미술 언어 안에 재맥락화하는 작업을 해온 작가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018 아트 스페이스 풀의 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풀랩(POOLAP)의 선정 작가인 노혜리는 이번 전시 기간 동안 아트 스페이스 풀로 팩스를 보낸다. 팩스로 송신하는 이미지는 지역의 뉴스를 드로잉해 제작한 목판을 찍은 판화다. 각 팩스는 한 장씩만 판매되며 40명의 구매자만을 위한 노혜리의 다음 전시의 초대장이 된다.
임흥순은 2007년 매거진 ‘볼’에 실린 이미지와 인터넷에 올라온 이미지를 재구성한 작업을 선보인다. 이는 베트남 전쟁 당시 관련 이미지들로,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베트남 전쟁 당시 박정희 정부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총 30만 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했고 5000명이 전사했다. 당시 베트남 최전방에 있었던 부대는 청룡과 맹호 그리고 백마와 같은 동물이름을 가진 부대였다. 아시아에서 이런 동물은 상상, 전설, 용맹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국가적으로나 개인들에게나 매우 신성시돼 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반대로 전쟁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광기, 죄책감을 정당성으로 둔갑시키는 하나의 기호로도 작동돼 왔다. 또한 서구 제국주의의 전술/전략과 탈식민주의 국가를 향하는 아시아 국가의 오류, 상처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아트 스페이스 풀 측은 “이번 전시에서는 일반적인 시장과는 달리 작가가 작품의 가격과 분배 비율을 책정하며, 일부 작품에 대한 비평, 제작과 설치, 보존에 관한 정보들을 엄밀하게 담은 매뉴얼도 공개한다. 이 매뉴얼은 일반적으로 거래하기 쉬운 소형 평면 작품이 아닌 장소 특정적 설치, 미디어 작품 등을 목록화한 것으로, 소장품의 독립성을 구축하는 과정을 담았다”며 “기금마련전 ‘2019 풀이 선다’는 단순히 운영 기금을 마련하는 것만이 아니라 풀이 20년 동안 구축해온 인프라를 확인하고, 풀의 비평적 관점을 드러내는 작가군을 제시하는 자리다. 전시에 참여하는 2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작가군의 행보를 통해 한국 미술 생태계의 일면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