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5호 김금영⁄ 2019.04.09 10:29:06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기술 혁신 시대에 걸맞은 지능형 도시란 무엇인가?”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6월 8일까지 열리는 ‘브뤼셀 인 송은: 이매지닝 시티즈 비욘드 테크놀로지(Brussels in SongEun: Imagining Cities Beyond Technology) 2.0’전은 브뤼셀 및 한국 소재 국내외 작가 12명이 질문을 던지는 자리다.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국가 연계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으로 브뤼셀 소재 아트&테크놀로지 플랫폼 글루온과 협력해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기술 혁명의 시대, 미래의 도시에 대한 담론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시를 함께 기획한 송은 아트스페이스와 글루온 측은 “글로벌 인구의 50%는 이미 도시에 거주 중이며, 이 수치는 2050년 7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의 도시들은 무한한 자원과 사람, 아이디어, 기획 및 지식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은 힘을 지녔다”고 짚었다.
전시는 이런 도시의 강력한 힘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급격한 인구 이동과 편중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세계 각 도시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도시의 현재 모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계속 진화한다. 따라서 진화하는 글로벌 시대의 도시들은 사회·민주적인 발전뿐 아니라 기술·경제·환경과 연관된 이슈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에너지 효율성, 이동성 및 인프라 등 기술 분야에만 국한돼 주로 이야기돼 왔었던 미래 스마트 도시의 다른 측면을 살펴본다. 브뤼셀과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토대로 미래 도시에 영향을 미치는 디지털 발전과 관련된 심리, 철학, 윤리, 사회 및 예술 등의 분야에 시선을 돌려본다.
미래 스마트 도시에 대한 비판적 사고
아티스트 듀오 라빗시스터즈, 펠릭스 루크 산체스, 박혜민 작가는 미래 스마트 도시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시도한다. 라빗시스터즈의 ‘비트소일.택스/캠페인(bitsoil.tax/campaign)’은 부가 소수에게 편중된 오늘날의 디지털 경제에서 공정한 균형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 이용자들을 동원해 자신들의 데이터에 대한 소액 세금 ‘비트소일’과 부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라빗시스터즈는 “오늘날 디지털 경제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통해 수십억의 돈을 벌어들이고, 매일 2.5조 바이트가 넘는 데이터가 생성되고 있다”며 “이번 작품은 새로운 재분배 모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행동을 촉구한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도시가 데이터의 주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는 데이터 주도 경제의 균형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계지능과 공상과학에 주목해 작업을 펼쳐 온 펠릭스 루크 산체스의 작업은 ‘만약 컴퓨터가 미친 지능형 개체가 돼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미지의 세력에 의해 통제된 인공뇌들이 탈출을 강행하고, 요상하며 엔트로피적이며 통제 불가능한 대화를 이어나간다면?’이라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니힐 ex 니힐로: 더 다이얼로그(Nihil ex Nihilo: The Dialogue)’는 알파벳과 숫자가 조합된 9개의 알파뉴머릭 디스플레이를 통해 스팸 메일에서 추출한 문장들을 여성의 목소리로 크게 읽힌 뒤 SN W8931CGX66E의 이메일 알고리즘 생성기가 남성의 목소리로 된 답변을 생성하는 설치 작품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도시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함에 있어, 자동화와 인공지능에 대해 더욱 더 비판적인 사고를 할 것을 요구한다.
박혜민은 2016년부터 ‘보통의 국가들’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는 특정 그룹의 참여자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참여자 모두가 살고 싶은 국가와 시스템을 구현해 보는 작업이다. 이민, 교육, 산업과 환경, 정치와 행정, 성장과 분배에 대한 질문 5개를 제시하고, 이에 가장 비슷한 생각을 표현한 참여자들을 한 팀으로 구성한 뒤 토론을 통해 국가 체제와 구조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 참여자 모두가 동의하는 가상의 국가와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천에 거주하는 13~15세 참여자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건설된 ‘벨라시우합중국’을 선보인다. 일반적으로 스마트 도시와 관련해 첨단 기술이 발전한, 긍정적인 측면이 주로 제시돼 왔었다면 오히려 작가는 ‘진정으로 이상적인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작업에 던지며 비판적 사고를 이끌어낸다.
도시에 대한 담론 바탕으로 현실 읽기
앞선 작업들이 미래 도시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이끌어 낸다면 유네스 바바알리, 비트 스트뢸리, 피에르 장 지루, 뮌 작가는 도시에 대한 담론을 바탕으로 현실 읽기를 시도한다. 유네스 바바알리가 읽은 현실은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이민자 문제다. 화이트 큐브 전시장에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위성접시를 설치했다. 이 위성접시들은 움직이는 과정에서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또 작가는 접시의 위치를 밖에서 안으로 바꿔놓으면서 신호 수신을 불가능하게 조작했고, 따라서 이 물체는 양 옆을 무의미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제 기능을 발휘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작가는 “방황하는 위성접시는 오늘날 이민자들의 자화상과도 같다. 서로 부딪히는 다양한 형태의 위성접시는 다양한 도시에 존재하는 다문화를 은유하며, 서로 상호작용과 공생 아래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며 “나 또한 모로코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이민자로, 오늘날 도시에서 이민자가 처한 위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비트 스트뢸리의 영상작품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브뤼셀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 다른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동질화된 하나의 덩어리로 혼합되는 곳, 현재의 도시 공간에 집중한 작업이다. 피에르 장 지루는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교토 등 일본 주요 도시들의 다양한 자화상으로 구성된 4부작 필름에 실제 이미지와 컴퓨터로 생성된 이미지들을 겹치며, 가상과 현실이 지속적으로 만나고 혼합되는 현대 일본 사회를 반영한다.
아티스트 콜렉티브 뮌은 극히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도시의 확장과 기술, 미디어의 발달 속 관음과 노출의 통제가 불가능해진 현실을 꼬집는다. 7개의 모니터에 비춰지는 영상 속 아파트는 인테리어만 다를 뿐 같은 공간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마치 건너편 아파트를 훔쳐보는 듯한 구성으로 연출됐다. 황금빛 조형물 ‘골드 몰드’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차금지콘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전시장 한 가운데 애매한 곳에 위치시키며 타인에게 “여기는 당신의 장소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사적인 것과 공적인 영역이 혼돈되는 현실의 도시 문제를 짚었다.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끌어오기
안느마리 마스, 박제성, 랍[오], 토마스 윌먼 작가는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자신만의 과학적인 방법과 바이오 기술을 사용해 생명체를 예술적 소재로써 탐구해 온 안느라미 마스는 최근엔 박테리아와 조류를 사용해 바이오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재 과학과 바이오 기술에 대한 예술적인 연구를 통해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는 연구소와도 같은 공간을 구축했다. 마치 미래에서 온 유물 같은 전시물이 그가 마련한 공간 곳곳에 연구 결과물처럼 설치된 풍경이 눈길을 끈다.
박제성의 신작 ‘개체 관계’는 홍채 인식, 3D 프린팅 기술, 가상현실 등 4차 산업의 주축이 되는 기술을 활용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기술 의존도가 높은 현재, 인류가 지향하는 최소한의 가치가 과연 합의됐는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상공간에 데이터 좌표로 시각화하고 이를 3D 프린팅을 통해 물성화하고 캐스팅해 서로 엮어 벽처럼 표현한다. 이 벽은 마치 커튼과 같이 나눠졌지만, 서로를 느낄 수 있으며 우리의 의지로 열 수 있는 벽과도 같다.
랍[오]는 ‘신기술이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왓 해스 갓 로트(What hath God Wrought?)’를 전시장에 설치했다. 과거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로 쓰였던 전보기가 작가의 손길을 거쳐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됐다.
토마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100개를 기반으로 전보간의 서신을 생성한다. 이 과정에서 글이 쓰인 말린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단어의 의미가 변질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 서로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거기서 발생하는 오류에서 새로운 것을 또 발견할 수 있는지 꿰뚫어본다.
토마스 윌먼은 게임 마인크래프트 속 어두운 숲의 외딴 지역으로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야생인 디지털 세계를 여행하다 ‘마법의 숲’이라는 곳에 정착하고, 컴퓨터 코드로 점철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야생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콘셉트다. 작가의 이 여정은 전시장에 설치된 영상 작업 ‘하우 투 메이크 어 프리미티브 허트 인 마인크래프트(How to make a primitive hut in Minecraft)’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염지혜 작가의 작업이 전시를 마무리한다. ‘미래열병’은 첨단 기술시대에 대한 맹목적인 인식과 믿음을 표현한 일종의 전염병으로 작가가 명명한 단어다. 작가는 “미래열병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급격하게 확산된 미래주의 문화 운동과 같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반복돼 나타나 왔다”며 “미래를 선점하고자 하는 현재의 사회적 긴장 속에서 잠시 멈춰 극성적 행보를 돌아보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찾고자 한다”고 작업 의도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