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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제임스 진, 아시아의 오방색으로 읽은 이중적 현실

롯데뮤지엄 개인전 ‘끝없는 여정’서 10m 길이 그림 등 500여 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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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6호 김금영⁄ 2019.04.22 09:14:27

대형 페인팅 작업 중인 제임스 진 작가.(사진=롯데뮤지엄)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기괴한 생명체와 한 여성이 서로를 부드럽게 껴안은 모습.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포스터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아름다운 이미지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포스터를 제작한 제임스 진이 한국을 찾았다.

롯데뮤지엄이 제임스 진의 대규모 개인전 ‘끝없는 여정’을 9월 1일까지 연다. 작가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으로 예술계와 대중의 관심을 모두 받아 왔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DC코믹스에서의 8년이다.

 

제임스 진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20대 초반부터 DC코믹스 ‘페이블즈’의 표지 아티스트로 일하며 예술계에 입문했다. “매달 새로운 커버를 그려야 했기에 작업하면서 매번 다른 소재와 방식을 실험할 수 있었다. 이때의 실험 결과물들이 신작에 많이 포함되기도 했다”는 게 작가의 말. 이 시기 만화계의 권위 있는 상인 아이스너 어워즈를 6년 연속 수상하고, 하비 어워즈의 ‘최고의 커버 작가’에 총 4번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서브컬처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이어 오던 작가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페인팅 작업을 시작하며 순수예술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9년 뉴욕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며 예술 세계를 확장했다.

 

제임스 진 작가 개인전 ‘끝없는 여정’ 전시장 입구.(사진=김금영 기자)

앞서 언급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비롯해 ‘마더!’ ‘블레이드 러너’의 아트 포스터를 제작하며 대중과 소통했고, 올해 7월 말 개봉하는 박서준, 안성기, 우도환 주연의 영화 ‘사자’ 포스터 작업도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이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코믹북 커버 150점, 드로잉 200점을 비롯해 대형 회화와 조각, 영상 등 총 5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10m 길이의 대형 회화 6점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제임스 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코믹북 커버 150점, 드로잉 200점을 비롯해 대형 회화와 조각, 영상 등 총 5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앞서 댄 플래빈, 알렉스 카츠, 케니 샤프 등 현대 미술 거장 기획전을 선보여 온 롯데뮤지엄의 구혜진 큐레이터는 “동시대 훌륭한 아티스트를 찾아 선보이는 게 롯데뮤지엄의 목표다.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보여주고 싶어 제임스 진에게 2년 반 전 쯤 전시 의뢰를 했다”고 작가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전시 제안을 받은 작가는 롯데타워를 방문해 공간을 살펴보고 지난 1년 동안 신작 제작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한국에서 전시를 준비하며 아시아 시각 문화의 모태가 되는 다섯 가지 색깔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했다. 작가는 “롯데뮤지엄의 구조는 원형으로 독특하다. 이 원형을 보고 순환의 구조를 상징하는 오방색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말했다.

 

미디어 영상으로 구현된 제임스 진 작가의 ‘디센던트’ 캐릭터.(사진=김금영 기자)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를 담은 오방색은 그의 작품에서 인생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특별한 이정표가 된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살아가는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꾸준히 탐구하며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곳,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곳으로 끊임없이 여행하는 인생의 내러티브를 이번 전시에서 따라간다.

특히 이 내러티브는 작가가 창조해낸 어린 소년 이미지 ‘디센던트’를 통해 그림뿐 아니라 조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이번 전시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디센던트는 어렸을 때 봤던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캐릭터다. 어린 시절의 유아적인 면모, 그리고 진지한 작가로 승화된 면모 모두를 담은 내 모습인 동시에 다음 세대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에이비어리-레드 파이어’는 전통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못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변질되는 복잡한 현실을 시각화한 작품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어린 아이-진지한 작가 면모 담은 캐릭터 ‘디센던트’
오방색의 세계를 떠돌다

 

제임스 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10m 길이의 대형 회화도 선보인다. 가장 오른쪽에 설치된 ‘디센던츠-블루 우드’엔 디센던트 캐릭터들이 꽃과 함께 공중 부양하는 모습이 담겼다.(사진=김금영 기자)

‘레드’존에 설치된 ‘인페르노-레드 파이어’에서는 디센던트 캐릭터들이 뛰어놀고 있다. 배경은 뜨거운 불길로 형벌을 받는 지옥이지만, 불길을 피우는 디센던트의 모습은 다른 지옥도와 달리 유쾌하고 평화롭다. 즉 작가는 일차원적인 관점만 다루지 않고 푸른색과 붉은색, 나무와 불길, 어린아이들과 악마라는 상반된 요소들이 한 화면에 조합시킨다. 이를 통해 생명과 죽음, 행복과 고통이 혼합된 혼돈의 세계를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 ‘에이비어리-레드 파이어’는 전통과 현 시대를 오가는 작가의 생각을 담았다. 새를 훈련해 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중국의 어부들이 나중에는 원숭이처럼 새를 조련해 사진을 찍는 것을 본 작가는 전통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못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변질되는 복잡한 현실을 느꼈고 이를 시각화했다.

 

‘베이더즈-블랙 워터’가 설치된 모습. 큰 파도 한 가운데서 평화롭게 목욕하는 님프의 모습은 한 치 앞으로 모르는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사진=김금영 기자)

‘블루’존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국화, 모란, 연꽃 등 구름처럼 만개한 꽃들 사이를 떠다니는 ‘디센던츠-블루 우드’를 볼 수 있다. 작가는 “하늘을 찌르는 높은 높이의 롯데월드타워를 보고 하늘에서 끊임없이 여행하는 소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또한 전시가 진행되는 계절 봄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꽃을 그림에 접목했다”고 말했다. 반인반수와 괴수들, 기괴한 동물과 식물이 거대한 배를 타고 진격하는 ‘패시지-블루 우드’는 노아의 방주 같다. 작가는 배를 탄 독특한 존재들을 통해 다양한 문명 그리고 이상과 욕망이 교차하는 현실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스탬피드-블루 우드’에서는 동서양의 기법과 이미지를 혼재시킨다.

 

노란색의 ‘가이아-옐로우 어스’에는 만물의 어머니이자 땅의 여신인 가이아와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같이 등장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블랙’존에는 검은색의 소용돌이가 ‘월풀-블랙 워터’를 통해 휘몰아친다. 작가에게 물결은 인생의 거대한 에너지임과 동시에 작품을 그릴 때마다 느끼는 불가항력의 에너지라고 한다. 이처럼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와 같이, 통제할 수 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미지의 에너지가 그의 그림에서 느껴진다.

 

흑발의 님프들이 멱을 감고 있는 ‘베이더즈-블랙 워터’에서도 물결이 넘실댄다. 아름다운 산호섬을 금방이라도 삼킬 것 같은 큰 파도 한 가운데서 평화롭게 목욕하는 님프의 모습은 한 치 앞으로 모르는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주로 유화로 제작된 제임스 진 작가의 구작 페인팅들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앞선 컬러들이 여러 욕망과 이중적인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현실에 집중했다면 ‘화이트 앤 옐로우’존은 우리의 삶 중 특히 가족적인 이야기에 집중했다. ‘타이거-화이트 메탈’은 한국을 대표하는 상서로운 동물인 호랑이가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모습을 표현했다.

 

작가는 “미국과 멕시코의 정치적 문제로 국경 지역에서 이주자와 그 자녀들을 분리한다는 뉴스를 듣고 이 작품을 제작했다. 어미 호랑이는 굳건히 새끼 호랑이를 지키고 있지만 몸이 구불구불 나뉘어 불안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조각 형태로 제작된 제임스 진 작가의 ‘디센던트’ 캐릭터.(사진=김금영 기자)

반면 노란색의 ‘가이아-옐로우 어스’에는 만물의 어머니이자 땅의 여신인 가이아와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같이 등장한다. 가이아는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거북이의 목을 양손으로 부여잡았고, 거북이는 빛나는 구슬을 토해낸다. 이 모습은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빛과 예술이 조화된 방식으로 성스러운 자연과 에너지를 표현한다.

오방색을 중심으로 한 공간들과 더불어 1999~2014년 작가의 예술적 궤적을 꿰뚫어볼 수 있는 드로잉이 설치된 공간도 이번 전시에 마련된다. 얼굴과 손, 신체의 움직임과 다양한 자세를 표현하기 위해 이어 왔던 작가의 해부학적 탐구부터 본격적으로 순수 회화를 제작하면서 2011년 제작한 드로잉에서 잔혹한 욕망을 대변하는, 선과 악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캐릭터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주로 유화로 제작된 구작 페인팅들도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제임스 진 작가의 작품.(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를 알린 대표작과도 같은 ‘페이블즈’ 코믹북 커버 작업과 프라다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2007~2019년 세 번에 걸쳐 프라다와 협업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7년 프라다 뉴욕 에피센터의 벽화 스케치, 2008년 프라다 S/S 컬렉션 밀라노 패션쇼의 배경이 된 벽화 초기 스케치 작품과 미디어를 활용한 패션 프로젝트 ‘트렘블드 브로섬즈’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아름다운 님프가 여러 모험을 통해 프라다의 패션으로 재구성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에 임할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예술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상업미술에 임하는데, 완전히 예술적으로 자유를 허락하는 브랜드와 협업한다. 프라다는 작가의 가치관을 존중해줬고, 이 점이 맞아 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영화 포스터 작업 공간도 마련된다. 한국 영화 ‘사자’ 포스터 작품도 미리 엿볼 수 있다.

 

제임스 진 작가를 알린 대표작 ‘페이블즈’ 코믹북 커버 작업을 소개하는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현대미술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는 지난해 도쿄에서 진행된 제임스 진의 개인전 ‘애지머스’를 위해 쓴 에세이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강력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며 제한적이었던 현대 미술의 정의를 새롭게 확대할 것”이라며 “제임스 진은 내러티브 세계의 예술가다. 그는 다양한 생각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라고 평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 캐릭터뿐 아니라 여기에 내러티브를 담아 지금 살아가는 현 시대를 오롯이 읽어내려는 작가의 끝없는 여정에 동행해볼 수 있다.

 

올해 7월 말 개봉하는 박서준, 안성기, 우도환 주연의 영화 ‘사자’ 포스터. 제임스 진 작가가 진행했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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