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은 5월 10일~6월 30일 정희민 작가의 개인전 ‘언 앤젤 위스퍼즈(An Angel Whispers)’를 연다. 정희민은 디지털 환경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특성과 이를 경험하는 방식에 주목하며, 그 새로운 감각이 회화라는 전통적이면서 고정적인 화면과 만나 어긋나거나 충돌하는 지점들을 탐구한다.
주로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가상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아크릴과 오일, 미디엄을 다양하게 혼합 사용해 실제와 가상 세계가 이질적으로 혼재된 화면을 그려온 정희민은, 이번 전시에서 촉각에 집중한 회화와 영상 신작을 선보인다. 점점 더 강렬한 실재감을 갖는 스크린 속 이미지와 여전히 차가운 유리 액정을 더듬는 행위로 한정되는 우리의 경험 방식 사이에서 오는 감각의 낙차와 촉각에 대한 욕구에 대해 고민한다.
매일이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미디어는 이미지가 얼마나 실재와 같은지를 자랑하며 대상의 생동감과 표피를 실감나게 모방해내지만, 반대로 직접적인 촉각적 경험을 결여시킨다. 정희민은 이 이질감과 결핍에 접근한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 다미엘이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싶어 무한한 플라톤 세계의 삶을 포기하는 것처럼, 피부로 느끼는 감각에 대한 욕망은 원초적이며 포기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정희민은 이렇게 당연하지만 누락돼 가는 촉각을 향한 욕구를 웹 그래픽적 시각 언어를 가져오고 질료의 질감과 양감을 중첩시키며, 캔버스와 모니터의 화면에 상연한다.
P21 측은 “정희민의 화면 안에는 뚜렷한 형태 없이 흘러내리고 덩어리진 물감, 밖으로 나오고 싶지만 영영 봉인된 듯 압착된 과일, 반짝이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표면 등이 갇혀 있다”며 “두터운 물질성을 가진 작가의 서명은 갈수록 희미해지는 풍경을 뒤덮거나(‘천사가 속삭인다’(2019)), 이미지를 배경으로 밀어내고 화면을 가득 메우며(‘창에 맺힌 것 1, 2’(2019)) 실체 없이 이름만으로 공허하게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 속정체성을 호명해낸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 선보이는 영상 작업 ‘아이의 노래’(2019)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도입부분에 나오는 페터 한트케의 시에서 빌려온 제목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갔다가 두부, 치즈, 젤리를 짓뭉갰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천처럼 혹은 물의 표면처럼 흐르던 껍데기가 덩어리가 됐다가 찌그러지고 납작해지고 깨지고 또 다시 흐르는 순간들을 보여준다”며 “정희민은 이런 이질적인 찰나들이 뒤섞여 있는 화면을 만들어내며 디지털 이미지를 감각하는 우리의 눈과 손끝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이어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