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관심(關心)’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강미선 작가의 ‘관심(觀心)’은 다르다. 말 그대로 마음을 ‘본다’. 그것도 자신의 마음을 묵묵히 들여다본다.
아트사이드 갤러리가 강미선 작가의 개인전 ‘관심(觀心)’을 6월 23일까지 연다. 전시명과 같이 이번 전시는 작가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는 자리다. 작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일상은 특별하거나 유별나진 않다.
지상 1층 전시 공간엔 백자, 그릇(식기), 다기 등 일상의 기물과 백자에 꽂힌 붉은 매화, 석류 등 과일을 소재로 다룬 정물 시리즈가 설치됐다. 작가 자신의 삶, 그의 일상과 관계된 이 소재들은 주로 수묵의 농담을 통해 대상을 단순화시켜 표현하고, 매화 등 때때로 약간의 채색을 사용하기도 한다.
지하 1층 전시장엔 이번 전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풍경 시리즈가 주를 이룬다. 한옥 등 작가의 서촌 작업실을 오가며 바라본 풍경이 있는가 하면 절, 탑, 불상 등 불교적 모티브가 종종 표현되고 감나무, 매화가 있는 친근한 풍경들도 보인다. 또한 고즈넉한 실내 풍경의 소재도 등장한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이 풍경들엔 공통점이 있다. 서양식 건물이 아닌 한옥, 화려한 유리그릇 대신 전통 도기와 항아리가 화면을 채웠다. 작가는 “우리 정서를 반영한 전통적인 풍경과 정물에 저절로 마음이 간다. 높이 쌓인 고층 빌딩보다 소담하게 쌓인 옛날 돌담을 절로 찾게 된다. 자연스럽게 발을 향하는 그곳에 있던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작가가 사용하는 매체와도 연결된다. 작가는 한지와 먹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간결한 선과 은은한 색채, 담담하게 쌓은 먹빛은 한국의 미감을 형상화한다. 작가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먹과 한지에 매력을 느낀다. 우리 정서와 가장 잘 맞는 재료”라고 말했다.
이건 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작업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연구를 위해 2000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에서 여러 종이를 사용해 봤는데 한지만큼 질기면서도 따뜻한 색과 느낌을 지닌 종이가 없더라”는 게 작가의 깨달음.
이 한지에 먹이 스며들고 번지면서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색이 나왔는데 여기에도 매력을 느꼈다 한다. 작가의 작업은 한지 위에 먹을 쌓아올리는 행위의 응집과도 같은데, 한지는 찢어지지 않고 이를 버텨냈다. 그렇게 작가는 한지와 먹에 더욱 빠져들었다.
질긴 한지에 스며드는 먹의 조화
하지만 잠시 한지를 손에서 놓았을 때도 있었다. 작가가 작업 활동을 이어오는 동안 수묵화의 부흥과 침체 시기가 모두 있었다. 한국 미술의 전통가치가 서양미술에 경도돼 훼손돼가는 상황에 대한 자각 정신에서 1980년대 수묵화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대학을 다니던 작가도 전통 재료인 먹을 통한 조형성을 탐구하고, 채색을 절제하는 집단적 수묵 실험에 동참하며 수묵화 관련 기획전에 꾸준히 참여했다.
하지만 점차 수묵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상황도 마주했다. 이때 작가는 도자에다가 옻칠을 하는 실험도 해봤다고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먹의 스며듦을 보여주는 한지처럼 도자 또한 높은 온도에서 구워질 때 변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봤다. 거기에서 한지와 먹을 발견했고, 다시 본래의 작업으로 돌아왔다.
작가는 “옻칠은 견고하지만 먹의 스밈에 한계를 느꼈다. 결국 다시 한지와 먹으로 돌아왔다”며 “늘 내 마음에 들어오는 곳에 먹과 한지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기와집과 돌탑의 색감이 한지와 먹의 빛깔과 비슷하다 느꼈다. 또 옛날 담들의 우둘투둘한 질감이 한지의 질감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지와 먹은 어느새 내 삶에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거친 결의 닥종이에 한지를 여러 겹 발라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거친 질감을 조절하는 동시에 두꺼운 한지에 깊숙이 흡수하는 수묵의 효과를 얻는다. 여기에 수많은 붓질을 반복해 한지에 먹을 올리면서 긴 호흡과 끈기로 작품을 완성한다.
먹을 칠한 뒤 건조시킨 다음 다시 붓질을 올리는 무수한 기다림의 반복이다. 붓질을 하면 할수록 힘들기보다는 저절로 마음이 다스려진다고 한다. 그래서 작업을 하는 건 작가에게 마음의 수행과도 같다. “작품은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라 말하는 작가의 ‘관심(觀心)’ 시리즈는 어찌 보면 작가의 작업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에게 특히 뜻깊은 자리라 한다. 작가는 “종이는 많은데 큰 규모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많지 않다. 이 가운데 이번 전시가 마련돼 큰 규모의 작품도 여러 신작도 마음껏 작업할 수 있었다. 가수가 노래할 무대가 필요하듯 작가에게도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는 매우 소중하다”며 “중국과는 또 다른 한국 수묵화만의 경쟁력을 찾고 싶다. 자신의 내면 세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수묵의 조형적 표현 방법을 앞으로도 다양하게 실험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진 아트사이드 갤러리 큐레이터는 “강미선에게 먹이란 만물의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이며, 한지는 단순한 재료 이상으로 수많은 붓질을 반복한 행위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며 “이번 전시는 수묵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온전히 드러내고, 수묵의 조형적 실험을 꾸준히 보여준 작가의 작품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