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은 ‘사랑스러움’의 대명사(代名詞)다. 사랑·설렘과 같은 단어 앞에 ‘핑크빛’만 붙이면 순식간에 간지러운 감정이 살아난다. 그러나 10월이 되면 성격이 달라진다. 수줍은 핑크 대신 ‘예방과 극복’의 상징으로 변한다. 유방암 예방의 달으로, 전 세계적인 ‘핑크리본 캠페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해당 캠페인을 주도해온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13일 핑크빛 달리기 물결이 이어진 ‘핑크런’ 마라톤에 참여했다.
‘4·6·7·9’ 숫자로 기억하는 생애 첫 마라톤 도전기
신청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출발선에 서 있다. 처음 도전하는 주제에 ‘나 정도면 잘 뛰지’라며 호기롭게 10km 코스를 신청했더랬다.
자신만만함은 어딜 갔는지, 마라톤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됐다. 실은 전날 밤잠도 설쳤다. 그런데 막상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자니 긴장보다는 설렘이 크다. 완연한 가을 날씨는 상쾌하고, 각자 몸을 풀고 있는 핑크빛 참가자들을 보니 어서 함께 달리고 싶어서다.
“출발!”
드디어 발을 내디뎠다.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꾸준하게 페이스만 유지하기로 했다. 따뜻한
햇살과 몸에 닿는 시원한 가을 공기를 만끽하며 사뿐사뿐 달린다. 그렇게 4㎞. 평소 혼자 달릴 때면 지쳤을 거리지만 이상하게 몸이 가볍다. 각자 또 함께 달리는 러너들이 있어서 ‘핑크빛 에너지’가 전이되는 느낌이다.
6㎞. 조금 지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스톱워치를 보니 속도가 조금 쳐졌다. 주위에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순간 ‘나도 걸을까’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찰나 “파이팅 파이팅” 소리가 이어폰을 넘어 귓속을 파고든다. 서로 안면도 없는 참가자들끼리 외치는 응원 소리에 힘을 낸다.
7㎞.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을 마시기로 한다. 멈추지는 않는다. 천천히 속도를 낮춰서 물만 입에 털어 넣고 다시 달린다. 기계가 된 듯 팔다리가 규칙적으로 허공을 휘젓는다. 9㎞가 진정한 고비다. 곧 결승선에 다다를 것 같은데 끝이 안 난다. 머릿속과 시야가 아득하기만 하다. 길가에서 응원하시는 한 어머님의 “어우~ 지금 가면 자기들이 1등이야”하는 너스레에 웃음이 터진다. 다시 인내의 발짓을 가동한다. 저만치 앞에 드디어 고지가 보인다.
“골인아치(골인 지점) 찍어도 멈추지 말고 달리세요. 그래야 안전합니다” 친절한 안내와 함께 레이스가 끝났다. 기록은 1시간 6분. 첫 마라톤치고 생각보다 잘 뛰어서 뿌듯하다. 혼자 온 탓에 자랑할 곳은 없지만, 간식 배부처에 가서 준비된 간식과 완주 메달을 받아들자 칭찬받는 기분이다. 벤치에 앉아 다리를 풀며 우유와 빵을 먹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부터 어르신까지의 가족 단위,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참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19년째를 맞은 만큼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한 듯했다. 11시에 마감되는 유방암 무료 검진은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신 핑크리본 캠페인 영상을 보며 생활 속 유방 건강의 중요성을 상기하며 참여를 마무리했다. 그저 달리고 싶어 신청한 마라톤이지만, 뜻밖에 유방에 대한 관심과 소중함을 배웠다.
아모레퍼시픽 “궁극적 목표는 여성 삶의 질 향상·성 평등”
핑크리본 캠페인·메이크업 유어라이프 등 여성암 캠페인 이끌어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여성 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설립기금 전액을 출연하며 국내 최초 유방 건강 비영리 공익 재단인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한 이후, 크게 ‘핑크리본 캠페인’과 ‘메이크업유어라이프 캠페인’ 두 가지를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까지 투자한 비용은 420억 원이 넘는다. 대신 약 61만 명의 국내외 여성 암 환자들이 치료와 예방, 삶의 질 개선을 경험했다.
핑크리본 캠페인의 대표 프로그램은 ‘핑크런’이다. 올해 19년째를 맞이한 핑크런은 유방 건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조기발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개최되는 러닝 축제다. 유방 건강강좌 ‘핑크투어’는 찾아가는 유방 자가검진법 체험프로그램으로, 교육을 원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예방 검진, 수술비, 학술비용 등이 핑크리본 캠페인에 포함된다.
아모레 여성 암 운동의 또 다른 한 축인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교육 캠페인이다. 항암 치료 과정에서 피부 변화, 탈모 등 급작스러운 외모 변화로 심적 고통을 겪는 암 환자들에게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는 다양한 방법을 전수한다. 이를 통해 암 환자들이 투병 중 겪는 심적 고통과 우울증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원활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취지다.
아모레퍼시픽이 여성 질환 개선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여성 삶의 질 개선 및 성 평등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은 여성의 건강과 경제적 자립을 지원해 삶을 아름답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성 평등에 기여 하고자 한다”며 “‘여성의 삶을 아름답게 한다’는 아모레퍼시픽의 소명은 창립 이래 변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생애 주기 관점에서 유방 건강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20만 명의 여성을 지원하는 ‘20 by 20’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유방암 조기발견 늘어났지만, 발병률도 높아져 … 사회적 책임 지속 돼야”
아모레퍼시픽 핑크런 담당 안유진 대리
- ‘핑크런’ 대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유방암 조기발견의 중요성을 알리는 러닝 페스티벌이다.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효율적이고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마라톤을 통한 캠페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부산을 시작으로 5개 대회를 진행하며 총 2만 4000여 명이 참여했다. 참가비 전액은 재단에 기부돼 저소득층의 수술치료비로 사용된다.”
- 대회가 올해로 19년 차다.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해 운영하는 등 여성 건강에 힘쓰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기업의 최대 고객 ‘여성’의 ‘아름다운 건강함’을 위해 늘 고민한 선대 회장의 뜻이 반영돼 한국유방건강재단 설립이 본격화됐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기업이 가장 잘 아는 대상에게,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아모레는 ‘여성’에 초점을 맞췄고, 발전하는 경제 상황에 따라 일명 ‘선진국병’으로 불리는 유방암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해 핑크리본 캠페인을 시작했다.
재단을 설립하고 20년 가까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유방암과 예방에 대한 인식률과 조기발견율은 상당히 개선됐지만, 반면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인해 발병률 역시 계속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저희의 사회적 책임과 활동도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매해 참가 인원과 규모에 대해 알고 싶다. 재참여자도 많은지. 참여자가 증가세라면 ‘유방암 건강’ 알리기에 도움이 됐다고 보는지
“매해 참가 인원은 부산 5000명, 대전·광주·대구 각 3000명, 서울 1만 명으로 총 2만 4000명이 참여했다. 재참여자는 전체 참가자의 3~40% 정도로, 40대 미만 참여율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점은 접수 마감일이 크게 단축됐다는 점이다.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행사에 대한 관심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유방암 인식 및 관심이 성장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주최 측은 참여한 분들에게 단 하루지만 유방암의 기본 상식 및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어가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행사가 끝난 뒤 인식률 조사를 진행해보면 90% 이상이 유방 건강 인식 향상에 긍정적 피드백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참여자에게 쉽고 무겁지 않은 캠페인 메시지와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