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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특수부 검사의 회고 “검사는 인권옹호기관이다”

짝사랑 청년을 강도강간범 몬 다방 여종업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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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3호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2019.10.30 10:34:34

(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1992년은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민생범죄수사에 진력하던 때였습니다. 매일같이 경찰에서 많은 구속피의자가 송치되어 와 1개 검사실에 배당되는 사건이 하루에도 구속사건 3-4건에 구속피의자의 숫자가 5-6명에 이를 정도가 되었기에 이를 처리하려면 당시 저희 검사실에 배치된 2명의 계장과 검사가 거의 자정이 될 때까지 일을 해도 처리하기 벅찰 때였습니다.

여느 날처럼 구속사건을 배당받고 얼른 기록을 읽어보았더니 강도강간 사건인데 구속피의자가 깔끔하게 자백을 하고 있었고, 피해자의 진술도 너무나 명백하여 구속피의자를 상대로 간단하게 자백조서를 받으면 그냥 기소해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되어 검사인 필자가 직접 조사를 하기 위하여 구치감에 연락하여 피의자를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피의자를 상대로 인정신문을 한 다음 범행을 모두 인정하느냐고 물었더니 구속피의자는 갑자기 자신은 범행을 저지른 바가 없는데 억울하다고 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제가 “경찰에서 송치되어 온 수사기록 상으로는 너무나 명백하게 자백이 되어 있는데 거짓말을 하면 처벌을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고 하였으나 그는 정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거듭하여 부인하였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차분하게 구속피의자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고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 처음부터 들었습니다.

외롭던 시골 청년의 그녀

구속피의자는 전라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공장에 취직을 하였는데 서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쉬는 날에는 갈 곳이 없고 함께 자취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자취방 근처에 있는 다방에 놀러갔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종업원이 눈에 띄었고, 그 여종업원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후로도 틈만 나면 다방에 놀러가곤 하였으나 숫기가 없어 말을 붙여본 적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여종업원은 체구가 자그마하고 얼굴이 깜찍하게 예뻤고, 그 시골청년과 비슷한 나이였으며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방에 취직하였으나 자취방을 구할 돈이 없어 다른 여종업원 1명과 함께 그 다방 내실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방은 지하에 있었고 매우 작은 내실이 2개가 있어 영업이 끝나면 각자 자기 방에서 잠을 잤는데 출입문 옆에 카운터가 있었고 옆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청년이 계속해서 그 다방을 출입하며 피해자를 넋을 놓고 쳐다보는 등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피해자는 그 청년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다방의 영업이 끝나면 주인이 카운터 서랍 속에 그날 영업해서 번 돈을 넣어두고 퇴근하였다가 다음날 그 돈을 은행에 넣곤 하였는데 그 돈 중의 일부가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인의 생각은 처음에는 자신이 그 전날 퇴근하면서 돈을 잘못 세었는지 자신이 없어 내실에 남아있던 피해자와 다른 여종업원을 추궁하지 않았으나 계속하여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돈 중에서 일부가 없어지자 드디어 종업원들을 상대로 추궁을 하였더니 피해자로부터 엄청난 말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해자가 밤에 내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그 청년이 자신이 자고 있는 내실에 들어와 자신을 깨워 강간을 하고 나가면서 카운터 서랍 속에 들어있던 돈에서 일부를 빼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이를 즉시 주인이나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은 그 청년이 자신에게 협박을 하였기 때문에 겁이 나서 도저히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그동안 수 차에 걸쳐 일어났다고 하면서 대신 경찰에 신고를 해 달라고 펑펑 울면서 애원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다방 여주인은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잠복 끝에 그 청년을 검거하고 다그쳤으나 그 청년은 처음에는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였는데 경찰은 이 청년을 경찰서가 아닌 인근 여관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그 청년을 협박하여 자백을 받아내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그 청년이 구속이 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합리적으로 의심해 보면 나오는 결론들

피해자의 진술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더니 그 청년이 밤중에 어떻게 그 다방에 침입하였는지에 대한 수사가 부실하였고, 내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피해자를 깨워 강간까지 하였는데 그 옆방에서 자고 있던 다른 여종업원이 전혀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고, 카운터 서랍 속에서 돈을 가져가려면 몽땅 가져가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데 그 일부만 가져갔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고, 더구나 한 번도 아니고 수차에 걸쳐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아무리 간이 커도 있기 어려운 점에 비추어 아무래도 작위적으로 조서를 받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필자는 즉시 피해자를 소환하였으나 다방 주인의 말로는 그 청년이 구속되자마자 다방을 그만두고 사라졌다고 하면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방 주인을 상대로 꼭 피해자를 만나야 된다고 하였더니 피해자가 조만간 월급을 받으러 연락이 올 것이라고 알려 주길래 연락이 오면 즉시 알려달라고 하고 기다렸습니다. 구속 기간 20일이 거의 끝나 갈 무렵 다방 주인의 급한 연락을 받고 즉시 수사관을 보내 피해자를 데려와서 추궁하였더니 피해자가 처음에는 딱 잡아떼다가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있는 청년을 보더니 엉엉 울면서 그 청년 앞에 끓어 앉아 용서해 달라며 애원을 하였고 자신의 거짓말로 그 청년이 구속된 것이라고 시인을 하였습니다.

청년도 울고 피해자도 울고 검사실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이 다방 내실에서 잠을 자면서 다방 주인이 퇴근할 때 카운터 서랍 속에 그날 번 돈을 모두 넣어두고 자물쇠를 잠그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그 돈에서 한푼 두푼씩 빼내도 주인이 잘 모르는 것 같아 점점 대담해져 빼내는 돈의 액수가 많아졌는데 그 후 주인이 이를 알아채고 자신을 추궁하길래 갑자기 그 청년이 떠올라 그 청년에게 범행을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자백을 하였습니다.

필자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청년의 수갑과 포승줄을 풀어주라고 지시하고, 피해자는 무고죄로 인지 구속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반전이었습니다. 저 또한 검사로서 그때만큼 희열을 느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필자는 위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을 차례로 소환하여 그 청년에 대해 자백을 받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수사를 한 점에 대해서 엄중 추궁하고 경찰서장, 형사과장, 계장, 담당 형사 등의 자술서를 받아 경찰에 징계요청을 하였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더 엄한 문책을 하였을 것이나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밤낮을 세워가며 의욕이 넘쳤고 피해자의 간교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바람에 엄청난 결과가 벌어진 점에 비추어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던 것입니다. 아마 상응한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복한 국민’을 내건 검찰청사(위)와 “검찰개혁”을 외치는 시위대. (사진 = 연합뉴스)

검찰개혁에 반발하면 더 큰 반발

조국 장관 일가족에 대한 검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한 수사로 대한민국이 거의 둘로 쪼개지다시피 분열되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검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직접 수사권을 축소·조정하는 문제와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을 넘기기 위하여 공수처를 설립하는 문제 등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심리가 작용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은 그에 대한 국민들의 더욱 더 큰 반발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축소 문제와 공수처 설립 문제는 검찰에서 직접 범죄 정보를 수집하고 내사를 거친 후 범죄를 인지하여 사회의 이목을 끌 만한 주요한 경제적 부패 사건, 증·수뢰 사건, 마약·조직범죄 사건 등 사회의 공정성과 시민의 안전에 큰 타격을 주는 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하여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지도적 역할을 하는 인지 부서, 특히 검찰 특수부의 축소·존립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판단됩니다.

검찰 특수부는 대부분의 검사들이 그곳에 근무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사회의 거악을 척결하는 것을 로망으로 생각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특수부를 비롯한 인지부서에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고, 인지부서에 근무하는 동안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검사들 중에는 일찍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인지부서에 근무하면서 두각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초임 검사 시절 형사부에 근무하면서 사건을 꼼꼼히 처리하고, 특히 고소 사건 중 고소인이 무고한 사건을 잘 찾아내어 실체적 진실에 맞는 수사를 잘하는 검사들이 실력을 인정받아 특수부 등 인지부서에 발탁되는 경우가 대체적인 경로입니다.

특수부 인지수사의 특수한 성격

필자 또한 형사부 검사로 상당 기간 근무한 후 서울지검 특수부로 입성하여 수많은 주요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는데 특수부에서의 근무도 보람되고 의미가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형사부 검사로서의 근무기간도 검사로서 실력을 연마하고 경찰의 1차 수사 과정에서의 잘못된 점, 특히 인권침해적인 부분을 찾아내어 엄중한 수사를 통하여 실체적 진실에 부합되는 결론을 내렸을 때의 희열감 등을 감안할 때 정말 검사로서의 자부심과 보람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검찰이든 경찰이든 개인에 대한 직접 수사는 그 자체로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절제하고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적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검사는 수사지휘를 통해 경찰수사가 적법절차에 위배되지 않도록 하고 경찰의 1차 수사단계에서 행해진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잘 가려내어 실체적 진실에 부합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인권옹호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권옹호 의무’는 ‘범죄 수사’ 및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감독’ 역할 못지않게 검사 역할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경찰의 1차 수사에 대한 지휘·감독권한을 강화하여 인권옹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형사부 및 공판부의 강화 및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기 위한 특수부의 축소를 검찰개혁의 1차 권고안으로 선정한 것은 일단 그 방향은 바로 잡은 것 같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사건은 자칫하면 평생 동안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20살 청년의 인생을 되살린 것이므로 비록 특수부에서 수사한 대형 사건만큼 언론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어떠한 경제사범이나 부패 사건 수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의미있는 수사로서 검사의 인권옹호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중요성을 충분히 웅변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 소개>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김강용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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