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최근 넷마블이 웅진코웨이의 유력한 인수자로 떠오르면서 게임업체들의 비(非)게임사 인수 및 투자 사례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NHN 등 유수 게임사들은 지난 수년간 막강한 현금동원능력을 활용해 다양한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유모차 업체부터 블록체인·암호화폐 거래소, 드론 개발사, 여행사 등 분야도 천차만별이다.
10월 14일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넷마블을 선정하면서 게임사들이 인수합병(M&A) 시장의 숨은 강자였음이 다시금 입증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넷마블이 이번 웅진코웨이 인수를 위해 동원한 자금이 약 1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올해 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아시아나항공(예상 인수가 1조5000억~2조원)도 인수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HDC현대산업개발, 애경그룹 등 쟁쟁한 재벌그룹조차 미래에셋, KCGI 등 재무적투자자(FI)와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있는 것과 달리 넷마블은 단독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했으니 현금동원력 만큼은 이들보다 나은 셈이다.
이와 관련 넷마블 측은 “연간 4000억원 정도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어 현금보유량에 문제가 없다”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유망기업의 M&A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넷마블은 올해 약 10조원이 넘는 ‘거대매물’ 넥슨의 인수를 위해 적극적으로 뛰었다. 물론 이 때는 단독이 아니라 컨소시엄 형태였지만, 자금력에 자신이 없다면 취할 수 없는 행보였다.
이처럼 게임사들은 막강한 현금동원능력을 이용해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례가 많다. 넷마블 외에도 넥슨, 엔씨소프트, NHN 등 유수 게임사들은 과감한 M&A 전략으로 게임사, 비게임사를 가리지 않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왔다.
게임사의 비게임사 투자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지난 2014년 넥슨의 스토케 인수다.
스토케는 1932년 노르웨이에서 창업한 프리미엄 유아용품 브랜드다. 이 회사의 대표상품은 일명 ‘강남유모차’로 불리는 프리미엄 유모차. 가격대가 130~200만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지난 2014년 1월 넥슨의 지주사 NXC(엔엑스씨)는 약 4400여억원을 지불하고 100%의 지분을 인수했다.
넥슨·엔씨·NHN, 거침없는 인수·투자
앞서 2013년 넥슨은 개인간 레고거래 사이트 브릭링크의 모든 자산을 인수해 현재까지 운영 중이며, 2017년에는 이탈리아의 애완동물 사료업체 아그라스를 759억원에 인수했다.
이외에 넥슨은 블록체인·비트코인 열풍이 한창이던 2017년 국내 3대 가상화폐거래소 중 하나였던 코빗(Korbit)을 약 912억원에 인수했고, 2018년에는 벨기에 소재 투자회사 NXMH를 통해 유럽의 대형 가상화폐거래소 비트스탬프를 인수했다. 정확한 인수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인수금액은 약 4500억원 수준이다.
지난 9월에는 e커머스 플랫폼 위메프의 모회사인 원더홀딩스에 350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원더홀딩스의 지배주주인 허민 대표를 넥슨 고문으로 영입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엔씨소프트도 비게임사 투자에 적극적이다.
지난 2014년 엔씨소프트는 창업 1년차의 웹툰 서비스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약 50억원을 투자해 지분 15%(58만2000주)를 확보했다. 이후 2016년 엔씨소프트는 레진엔터테인먼트 보유 지분 중 1.4%(5만8230주)를 33억원에 매각했고, 2018년 다시 2.3%(9만8039주)를 50억원 가량에 처분했다. 엔씨소프트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투자원금을 제외하고도 약 230억원 수준의 자본 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에는 국내 웹소설 연재 플랫폼 문피아에 중국 기업 CLL(China Literature Limited)과 함께 25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엔씨소프트는 현재 문피아의 3대 주주로, 연내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 문피아의 IPO가 성공할 경우 상당한 투자 수익을 얻을 전망이다.
이외에 엔씨소프트는 2014년 10월 드론 제조업체 바이로봇에 15억원을 투자해 27.7%의 지분을 확보했으며, 2016년 5월엔 인공지능(AI) 기반 드론 스타트업 유비파이에 약 48억원을 투자해 30%의 지분을 확보했다. 2015년 2월엔 전자결제기업 KG이니시스 450억원을 투자해 7.73%의 지분을 확보하고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었다.
이들 빅3 게임사 외에 NHN은 가장 많이 비게임사를 인수하거나 투자한 게임회사로 지목된다.
NHN은 지난 2013년 네이버와 분사하며 현금성 자산 3300억원을 확보한 후 아웃도어 관련 서적 출판 및 패션 쇼핑몰 업체 아웃도어글로벌에 15억원을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미국 패션B2B 업체 비쓰리스타즈(266억원), DB보안 전문기업 피앤피씨큐어(600억원), 중국 의류유통기업 에이컴메이트(93억원), 온라인 강의 콘텐츠 회사 에스티앤컴퍼니(109억원), 온라인 취업포털 인크루트(100억원), 티켓 예매 사이트 티켓링크(100억원, 현 NHN티켓링크), 온라인쇼핑솔루션기업 고도소프트(148억원, 현 NHN고도), 전자결제대행사 한국사이버결제(642억원, 현 NHN한국사이버결제) 등을 인수하며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한국사이버결제(KCP)가 2015년 간편결제서비스 페이코(PAYCO)를 출시하면서 NHN은 핀테크 영역에 진출했다.
2015년 5월엔 온라인 음악서비스 ‘벅스’를 보유한 네오위즈인터넷 주식 40.7%를 약 1000억원에 인수해 1대 주주가 된 후 사명을 NHN벅스로 바꿨다. 2016년 4월엔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에 475억달러를 투자해 2.66%의 지분을 확보했다. 같은 해 8월엔 연예기획사 하우엔터테인먼트의 지분 70%를 100억원에 인수했다. 2018년엔 종합여행사 여행박사(현 NHN여행박사)의 지분 77.6%를 확보해 1대 주주가 됐다.
‘문어발식 기업 쇼핑’ 지적도
이처럼 게임사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게임산업의 단점인 단기성, 일회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별 게임의 개발기간이 긴 반면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고, 성공한 게임사들도 대부분 한두 종류의 ‘대박게임’에 수입이 집중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더해 외부요인도 녹록치 않다.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중국 게임사들의 전방위적인 공세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위해 ‘지속가능한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벤처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넥슨의 경우 ‘던전앤파이터’, 엔씨소프트의 경우 ‘리니지’ 등 단일 게임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이들 게임의 인기가 시들었을 때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며 “석유 의존도가 높은 중동 국가들이 석유 고갈기에 대비해 두바이 같은 첨단기술도시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생존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과거 네오플의 허민 대표는 ‘던전앤파이터’ 성공 이후 2008년 3000억원에 넥슨에 회사를 매각한 후 강남 대치동 미래에셋타워 빌딩 2동을 885억원에 인수했고, 2012년 다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근의 토지 1743㎡를 660억원에 인수했다. 현재 그의 연간 부동산 수입은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자금을 기반으로 허 대표는 위메프 등 신사업에 재도전하고 있다”면서 비게임사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지목했다.
한편, 게임사들의 비게임사 투자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최대주주의 개인적 취향이나 사적인 친분관계 때문에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도 의외로 많아서 외부에서 보면 자칫 현금이 많다고 과신하며 아무 기업이나 ‘쇼핑’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충분한 검토나 시너지 확보 방안 없는 문어발식 투자는 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