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범(凡)현대가 계열 그룹으로 재계 서열 34위(2019년 5월 자산총액 기준)인 KCC가 대대적인 사업 재편에 나서 주목된다. 회사를 둘로 나눠 기존 KCC는 건자재 위주의 사업을, 신설법인 KCC글라스는 유리와 인테리어 사업을 맡을 예정이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KCC그룹의 앞날을 들여다봤다.
KCC는 지난달 금융증권위원회에 분할 신설회사 ‘케이씨씨(KCC)글라스’에 대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분할기일은 내년 1월 1일로 예정됐으며, 분할 비율은 순자산 비율인 0.84(KCC) 대 0.16(KCC글라스)이다. 분할 방식은 단순 인적 분할로, 내년 1월 21일 KCC글라스의 코스피 상장이 계획돼 있다. 신생 KCC글라스는 자산총계 약 1조500억원, 연매출 74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코스피에 데뷔하게 된다.
이번 계열 분리의 배경을 형제 간 경영 승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건자재와 유리·인테리어의 사업적 특성이 다른 데다, 특히 유리·인테리어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고 있어, 이에 선제적 대처를 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우선, 계열 분리의 가장 큰 이유는 사업방식 재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KCC의 사업 영역은 선박·자동차용 도료(페인트)와 유리·석고보드·PVC 등의 건자재, 창호, 상재(바닥재), 실리콘 등 소재, 자동차용 유리, 인테리어 등이다.
이 중 도료와 건자재, 창호, 소재 등은 대부분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과 기업 간 거래) 사업이다. 반면, 상재와 인테리어 등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 사업에 가깝다.
특히 인테리어 시장의 경우 최근 중심 축이 주택신축 시장이 아닌 주택리모델링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서 B2C 분야에 좀더 집중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KCC 내부에서는 B2B와 B2C간 사업 방식의 차이를 감안한 사업 분할이 검토됐다는 설명이다. KCC가 보유한 인테리어 브랜드 ‘홈씨씨’가 분할 후 KCC글라스 소속이 되는 이유다.
제로에너지건축, 로이유리 필수적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은 코팅유리 시장의 성장이다.
지난 6월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제로에너지건축 단계적 의무화를 위한 세부로드맵, 제로에너지 개념을 건물에서 도시로 확대 적용한 ‘지구단위 제로에너지 시범사업’ 등을 포함한 ‘제로에너지건축 보급 확산 방안’을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심의를 거쳐 발표했다.
2020년부터 1000㎡이상 공공건축물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제로에너지건축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로드맵과 구리시 갈매역세권, 성남시 복정1 공공주택지구 등에는 도시단위 제로에너지 시범사업을 최초로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제로에너지건축’이란 단열·기밀성능 강화를 통해 건축물 에너지사용량을 저감(패시브)하고,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설비로 에너지를 생산(액티브)해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하는 건축물을 말한다.
이처럼 국내에서 제로에너지건축이 의무화되면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건 유리에 은(Ag)막을 입힌 코팅유리 제조사다. 제로에너지건축에 필수적인 자재가 ‘로이(Low-E: low-emissivity)유리’이기 때문이다.
로이유리는 표면에 은 금속층을 코팅해 단열 효과를 최대로 높인 코팅유리다. 동일한 복층 유리일 때 일반 유리보다 약 45% 향상된 단열 성능을 보여준다. 건축물에서 에너지 손실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 창호인 만큼 로이유리는 제로에너지건축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로이유리는 태양 가시광선을 투과시키면서 태양열은 반사시키기 때문에 재실자의 시야나 쾌적함은 해치지 않으면서 태양열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 여름철 냉방을 줄여주며, 겨울에는 실내 난방열이 유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아 온기가 유지되므로 난방 에너지도 줄여준다.
KCC는 국내 대표 코팅유리 제조사다. KCC글라스로 유리사업을 분할할 경우 사업 특성에 맞는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한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향후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에 따른 코팅유리 수요 증가 추세에 맞춰 고부가가치 유리 개발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특히 KCC글라스는 인테리어 브랜드 ‘홈씨씨’를 통해 로이유리 적용 창호 등 관련 제품의 영업망을 확충하고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적극 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이번 회사 분할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기대되면서 KCC글라스의 주가에도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KCC그룹은 기존 KCC 외에 KCC글라스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예정인데, 발행주식수는 보통주 835만210주이며 액면가액은 1주당 1000원이다. 모집가액은 10만8038원, 모집총액은 9021억4300만원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CC글라스가 그룹의 알짜 사업을 담당하게 된 만큼 실적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KCC 관계자는 CNB에 “분사에 따른 업계의 일부 우려가 있지만 전문화를 통한 유리, 인테리어 사업 중심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기존 KCC보다 사업의 속도감을 좀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