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항공 마일리지 제도는 지난 1981년 미국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처음 실시한 고객 우대제도다. 국내에서는 1984년 대한항공이 처음으로 도입했고 아시아나항공도 1989년부터 실시했다.
항공사를 자주 이용하는 고객에게 이용실적에 비례해 마일리지를 적립해주고, 축적된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입하거나 좌석 승급의 기회를 제공해 계속적으로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서비스다.
항공 마일리지는 탑승실적에 비례해 주어지는 ‘탑승마일리지’와 대한항공·아시아나 등과 제휴 관계를 맺은 신용카드사·은행·이동통신사 등에서 재화 구입 또는 서비스 이용실적에 따라 적립하는 ‘제휴마일리지’가 있다.
제휴마일리지의 경우 그 규모가 상당하다. 고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016년~2019년 8월까지 대한항공은 국내 19개 전업·겸업 카드사 중 17곳에 약 789억1986만 마일리지를 판매해 1조1905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아시아나항공은 18곳에 562억1095만 마일리지를 팔아 6172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BeV V 스카이패스’, ‘SC 플러스마일 카드’, ‘신한 Air One카드’, ‘채움 아시아나클럽카드’, ‘씨티 NEW프리미어마일카드’ 등 40여개의 상품이 대한항공 또는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적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민카드·롯데카드·삼성카드 등 7곳은 카드 포인트를 항공 마일리지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카드사가 항공사로부터 미리 구매한 마일리지를 카드 이용 고객에게 지급하고 있는 방식이다.
또한 양대 항공사는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KB국민은행, 신한은행, SC은행, 한국씨티은행 등을 상대로 마일리지를 판매해 대한항공 15억1601만원, 아시아나항공 6억4690만원의 수입을 각각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항공권 구입 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단순한 보너스 개념이 아니라 항공사의 핵심 수입원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하지만 마일리지는 적금처럼 쌓아놓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며 소멸시효가 있다. 최근 마일리지 관련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앞서 2008년 항공회원약관 개정을 통해 마일리지 소멸기간을 10년으로 정했다. 따라서 올해 1월 1일에 2008년 한 해 동안 적립한 마일리지 중 미사용 분이 소멸됐다. 내년 1월 1일에도 역시 2009년 치가 사라질 예정인데 소멸 마일리지 액수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항공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소송인단을 모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마일리지 반환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마일리지는 소비자들이 다양한 경제활동을 통해 적립한 재산이므로 이를 일방적으로 공중분해시키는 것은 소비자들의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주장이다. 더불어 유효기간이 다가오는데 마일리지 사용처는 대부분 항공권 구입이나 좌석승급 기회에 집중돼 있어 마일리지를 소비하고 싶어도 마땅한 소진처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일리지로 도서구매까지…법개정 추진
개선책은 없을까. 일단 국회에는 관련법이 계류돼 있다.
올해 1월 김재원 의원(자유한국당)이 대표발의한 ‘항공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항공사업자를 관리·감독하고 항공교통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장관이 항공사의 항공마일리지 약관 변경에 대해 개선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항공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과 관련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예방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이용자 보호기준을 고시할 수 있도록 적시했다.
항공 마일리지를 이용한 좌석 예약이나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좌석 수가 매우 제한적이며, 이마저도 휴가철이나 주말 사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나 통신사 포인트와 달리 구입 가능한 대체 상품이 적고 마일리지 전환 금액도 매우 낮은 실정임을 감안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2월에 제출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강효상 의원 대표발의)’은 신문 구독료 납부나 도서·잡지 등 간행물 구매 시 항공 마일리지 사용이 가능토록 사용 범위를 확대했다.
그러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따르면 항공 마일리지의 수납 여부, 교환비율 등은 민간 사업자간의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으로 이를 법률에 직접 규정하는 경우 민간 사업자의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김재원 의원안도 국회 논의가 진척이 없는 상태인 가운데 항공 마일리지 이슈의 근본적인 원인인 사용처 미비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대책으로 복합결제(현금+마일리지) 방안이 우선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항공사들에게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입할 때 부족한 마일리지만큼을 현금으로 충당하는 복합결제 방식 도입을 제안한 상태다. 이 경우 소량의 마일리지도 활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대안이 제시된 이유는 약관심사 방법으로 접근해 해결하는 것은 상당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효기간 자체가 10년이 적정하냐는 것은 전적으로 운영방식에 따른 문제로, 이를 제3자(정부)가 감시해서 공급능력에 맞게 발행하라고 정한다거나 사용기간을 15년, 20년으로 보장하라고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표준약관 도입 등은 사업자에게 강제할 방법이 크지 않고 도무지 개선방향이 안보일 때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용자들에게 사용기회가 제공돼야 공정하다는 기본원칙에 부합하는 건 마일리지와 현금을 복합적으로 결제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대한항공 시범 도입…유효기간은 그대로
항공업계도 복합결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지난 2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항공마일리지 사용방식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광옥 한국항공협회 본부장은 “대한항공에서는 복합결제 시범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시행을 준비하고 있고 아시아나 역시 차후 검토할 예정이라고 협회에 알려왔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은 업계를 대변해 해명도 했는데 “외국항공사의 마일리지 유효기간 3년보다 최장 수준의 사용기간인 10년을 보장하고 있고 다양한 사용처 확대에도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항공사 입장에서는 마일리지가 미래 항공권 구매로 이어지는 부문이 있어 수익으로 전체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항공사가 마일리지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시선에 대해 경계했다.
한편, 공정위와 항공사들의 협의에 따라 복합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다소 시일이 걸리겠지만 시범 운영이 가시화된 만큼 향후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먼저, 소비자 불만을 최소화할 만큼 만족스러운 수준의 프로그램이 나올지 여부다. 성공적이라면 본 사업까지 이어져 마일리지 이슈를 잠재울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의 경우 미봉책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는 복합결제 도입과는 별개로 소멸시효는 현행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는 마일리지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여서 근시일 내에 결론이 나기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