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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이후 ‘남은 대우’의 운명은

대우건설·위니아대우 … 그의 흔적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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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62호 도기천 기자⁄ 2019.12.23 09:33:27

2017년 3월 22일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고 김우중 전 회장이 인사말을 마친 뒤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이 되었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마저 지난 9일 별세했지만 몇몇 기업이 여전히 ‘대우’ 브랜드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 주목된다. 그룹 해체 이후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다른 기업에 인수되거나 사라지면서 이제는 ‘대우’라는 정체성마저 희미해졌지만, 이런 와중에 ‘탱크주의’의 신화를 이어가는 곳도 있다. CNB가 고 김우중 전 회장이 남긴 흔적을 짚어봤다.

“‘대우’하면 디자인은 투박해도 값싸고 질이 좋다는 인식이 강했죠. 집집마다 ‘대우’ 제품 하나씩은 있을 만큼 친근한 브랜드였는데…. 그 이름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네요.”(옛 대우전자 출신의 모 중견기업 임원)

대우그룹은 고 김우중 전 회장이 1967년 3월22일 설립한 대우실업에서 출발해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성장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 등을 인수하고 대우건설,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등을 설립하며 금융, 전자, 중공업으로 뻗어 나갔다.

특히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1981년 대우개발과 대우실업을 합병해 ㈜대우를 출범시켜 오늘날 지주회사 체제 같은 구심을 갖춘 뒤, 1983년 대한전선의 가전 분야를 인수하고, 대우자동차를 설립해 자동차 사업에까지 발을 넓혔다.

1993년 김 전 회장이 ‘세계 경영’을 선언한 뒤부터는 개발도상국, 구 공산권 국가 등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대우실업에서 출발한지 30여년 만인 1998년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거느린 재계 서열 2위 대기업으로 올라섰다.

 

1967년 대우실업에서 출발한 대우그룹은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4억불 수출탑을 받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모습. 사진 =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하지만 문어발식 확장 탓에 당시 부채 규모가 90조원에 달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됐다. 결국 외환위기(IMF구제금융 사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워크아웃 후 2000년 4월 공식해체됐다. 대부분 계열사들은 공중분해 됐고,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 혐의를 받아 해외도피 생활을 하다 구속기소 되는 등 역경을 겪었다.

대우 해체 20년이 된 지금 ‘대우’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는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건설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를 추진 중인 대우조선해양(옛 대우중공업 조선해양부문), 대유위니아그룹에 인수된 위니아대우(옛 대우전자),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인수한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정도다.

위니아대우, 어게인 ‘탱크주의’

이 중에서도 대우의 명맥을 가장 잘 잇고 있는 곳으로 평가되는 곳은 위니아대우다. 가전업계에서 여전히 ‘탱크주의’ 대우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위니아대우의 전신인 대우전자는 1980~90년대 삼성·LG와 함께 국내 가전 3사로 꼽혔다. 집집마다 ‘대우’ 가전제품 하나씩은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30~40대에게는 어린시절 추억이, 50~60대에게는 신혼 설계(혼수품 장만)의 단꿈이 깃든 기업이다.

 

옛 대우전자를 계승한 위니아대우는 해외에서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위니아대우 멕시코 공장. 사진 = 위니아대우 제공

대우전자가 위니아대우로 부활한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다.

대우전자는 1999년 대우그룹에서 분리돼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6년 결국 파산했지만 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탄생하며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부문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2013년 동부그룹이 인수해 ‘동부대우전자’라는 사명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당시 자금력이 넉넉지 않았던 동부그룹은 KTB PE(사모펀드), 한국증권금융 등 재무적투자자(FI)들로부터 인수자금을 유치하면서 △3년내 순자산 1800억원 이상 유지 △2018년까지 기업공개(IPO) 등을 약속했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FI들이 동반매도청구권(대주주의 지분 동반매각)을 행사할 수 있다는 옵션을 걸었는데 이 점이 복병이 됐다.

동부대우전자는 동부그룹에 인수된 지 2년만인 2015년에 멕시코 냉장고 시장에서 점유율 31%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하는 등 해외에서 선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출이 점점 줄다가 2016년말 순자산이 1600억원대로 감소했다. FI는 약속이 충족되지 못하자 2017년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 45.8%에 동부그룹이 가진 54.2%의 지분을 더해 100% 지분 매각에 나섰다.

동부대우전자 인수전에는 국내업체인 대유위니아와 해외업체인 이란 엔텍합-웨일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하 엔텍합), 터키 베스텔, 중국 메이디그룹 등이 참여했고, 이들 중 대유위니아가 인수에 성공한다. 이듬해 대유위니아는 (주)위니아대우를 출범시켰다.

위니아대우는 옛 대우전자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국내 3위 가전업체로 자리매김하며 냉장고, 세탁기, 전자렌지, 청소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인기가 높다. 위니아대우 멕시코 법인은 지난 10월 한달 동안 냉장고 8만 3000여대를 생산해 역대 최고 월간 생산량을 기록했다. 세탁기, 주방가전 등에서도 고른 성장세를 보여 올해 10월까지 누적 매출은 2600억원을 넘어섰다. 또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군제(光棍節)’ 기간에 벽걸이 드럼세탁기 ‘미니’ 2만6천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에도 ‘대우’ 브랜드는 여러 기업에서 사용되어 왔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16년 3월 포스코대우(구 대우인터내셔널) CI 선포식, 서울종로구 신문로 대우건설 본사,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사옥, 동부대우전자의 해외 신제품 로드쇼. 사진 = CNB포토뱅크, 연합뉴스

이처럼 대우전자는 여러 기업을 거치면서도 이례적으로 ‘대우’라는 브랜드가 유지돼 왔다. 이는 과거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이미지와 무관치 않다. 탱크주의는 디자인에서 거품을 뺀 가격과 성능위주의 실속성을 뜻한다. 오늘날 위니아대우 또한 이런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해체 20년…4곳만 ‘대우’ 간판

금호아시아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가 다시 산업은행으로 넘어간 대우건설도 이름은 옛날 그대로다. 다만 아직도 새주인을 찾지 못해 채권단이 경영권을 쥐고 있는데다, 실적마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위니아대우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대우건설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기업이다. 김 전 회장이 1973년 직원 12명으로 세운 이 회사는 한때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맡아 ‘중동 건설 신화’를 창출했다. 대우건설이 1986년부터 5년 동안 리비아에서 벌어들인 돈은 2조원이 넘는다. 당시 정부 한해 예산이 20조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 규모인 셈이다.

하지만 대우그룹 해체로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처지가 됐고, 2005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됐다. 이후 2008년 세계금융위기 여파 등으로 경영난을 겪다 2010년 산업은행에 재매각됐다. 산은은 고강도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통해 대우건설 정상화와 민영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옛 대우그룹 출신 기업인들은 유독 ‘대우’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대우인들이 2009년 결성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관하고 있는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 사업(GYBM)’ 졸업생들이 지난 1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우중 전 회장을 추모하며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밖에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손에 들어간 대우증권은 ‘미래에셋대우’로 재탄생하면서 ‘대우’ 명칭이 유지되고 있다.

옛 대우중공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또한 산업은행으로 넘어갔지만 브랜드는 여전히 ‘대우’다. 다만 현대중공업그룹이 합병(기업결합)을 진행하고 있어 사명에서 ‘대우’가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우’도 여럿이다. 대우자동차는 2002년 미국GM이 인수한 뒤 ‘GM대우’로 새출발했지만, GM은 글로벌 이미지 등을 고려해 2011년 대우 꼬리표를 떼내고 ‘한국GM’으로 사명을 바꿨다.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그룹에 편입돼 두산인프라코어로 출범하면서 ‘대우’ 간판이 없어졌다.

현재 ‘대우’ 브랜드의 사용권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갖고 있다. 이 회사의 뿌리는 대우그룹의 모태인 대우실업이다. 대우그룹 해체 후 대우인터내셔널로 간판을 바꿨고, 2010년 포스코그룹에 인수된 뒤 2016년 포스코대우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포스코그룹이 정체성을 강화 차원에서 지난 4월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대우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DAEWOO’ ‘大宇’ 등의 상표권 사용료로 매년 수십억원의 부가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71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챙겼다.

신화는 남겠지만…결국 사라질 운명

옛 대우 출신 기업인들은 ‘대우’에 대한 애착이 유독 큰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우디 대우차 프로젝트’다. 2014년 사우디 정부는 완성차 대량생산을 위해 당시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손을 잡았는데 국민차 명칭으로 ‘DAEWOO’를 사용하길 원했다. 이에 포스코그룹 내 대우 출신들은 자존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이 사업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과의 브랜드 분쟁, 합작법인의 대주주 변경 등으로 무산됐다.

2015년에는 전병일 당시 대우인터내셔널 사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 간에 신경전이 벌어진 적도 있다. 당시 포스코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대우맨들이 주도했던 미얀마 가스전을 매각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대우 출신의 전 사장은 사내게시판에 매각 반대 글을 올리며 권 회장에게 항명했고, 이로 인해 한동안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했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대우그룹 공채 출신 ‘대우맨’들은 해마다 창립기념일인 3월22일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김우중 전 회장은 2017년 50주년, 지난해 51주년 행사에 참석했었다.

현재 재계에서 활약 중인 대우 출신 주요 기업인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 박근태 CJ대한통운 대표, 김영상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등이다. 이들은 외환위기, 워크아웃 등을 거치면서 단련된 특유의 끈기와 위기관리 능력으로 내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우’를 차지한 측의 입장에서는 ‘대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직의 단합과 새로운 비전 선포에 있어 ‘과거’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CNB에 “광고효과에 있어서는 기존 브랜드가 분명 효과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보다는 회사 내부 구성원 간의 단결이 더 중요하다”며 “소속감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기업풍토에서는 하나의 사명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만큼 대우라는 이름은 결국 사라질 운명”이라고 말했다.

대우 출신의 재계 관계자는 CNB에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 때 대우가 기염을 토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 많이 다르다”며 “끈기와 열정은 계승하되 나머지는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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