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한·일 경제 제재와 홍콩 반정부 시위의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중국발 코로나19가 덮쳐 운항이 중단되고 감축되는 등의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항공의 경영권 분쟁과 아시아나항공 사장의 자식 입사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내부 사정 또한 좋지 않은 모양새다.
반일감정 문제도 안 끝났는데 중국발 악재 덮쳐
정부가 중국발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시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일제히 운항을 중단하고 감편하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중국으로 가는 30개 노선을 10개로 감축했고, 204회 운항을 57회로 축소했다. 김포~베이징 7개 노선은 운휴(운항 휴식)에 들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은 작년 6월 말 기준 국제여객의 경우 전체 76개 노선 가운데 38%가량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 동남아시아가 15개 노선으로 20%를, 일본이 12개로 16%를 차지했다. 중국 노선 26개 중 김포~베이징을 비롯한 12개 노선의 운항을 잠정 중단하고 인천~광저우 등 12개 노선 운항을 감편하기로 했다.
문제는 지난해 한일 관계 악화로 ‘NO JAPAN’ 운동을 겪으며 일본 노선 축소가 영업실적 악화로 이어진 상태에서 또 노선 축소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4분기 연결 잠정 영업실적에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130억 원 감소한 –42억 원으로 집계됐다. 아시아나항공은 4분기 잠정 영업실적에서 3683억 원의 영업이익 감소와 6727억 원의 순이익 감소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노선 감편은 치명적일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한·일 갈등 및 LCC 공급확대로 인한 경쟁 심화, 환율상승으로 인한 외화 비용 증가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졌다”며 “올해 초 중국 노선 감축도 매출 감소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원태 대 조현아 연합군 내분에 ‘혼란’ 이어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어려움은 외부적 요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절차 마무리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을 소유하고 있는 한진그룹은 조원태 회장 측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 연합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빨리 안정을 찾으려면 내분이 먼저 정리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과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 방식의 차이는 경영인 기용에 있다는 평가도 있다. 조 회장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인선을 해 놓은 상황이고, 조 전 부사장은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해 대한항공의 도약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의 경영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선대인 고(故) 조양호 회장 생전에 대한항공 사장을 맡았으나, 재임 3년 동안 대한항공의 실적이 지속 하락한 바 있어서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2017년 9398억 원 ▲2018년 6674억 원 ▲2019년 2909억 원(잠정)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부분도 있지만, 독선적으로 일을 밀어붙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 내에서는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반발 기류가 거세다. 그가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운 이유로 풀이되기도 한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겠다는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해 “전문경영인의 역할과 비전 등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독립성과 같은 경영권 보장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사내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렸던 김치훈 전 대한항공 상무는 2월 18일 사내이사 후보에서 물러나고, 대한항공·한진·한국공항 등 한진그룹 3사 노동조합이 최근 “조현아 전 부사장이 투기 세력과 결탁했다”며 조 회장 측을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뜻을 밝히면서 일단 분위기는 조 회장 측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경영 악화에 특혜 논란 악재 겹친 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은 한창수 사장 아들의 채용 특례 논란과 추가 비리 의혹 등이 제기되며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로의 인수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든 데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등 항공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어서 직원들 분노가 더 크다.
18일 항공업계와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애플리케이션(앱)인 '블라인드'에 따르면 한 사장의 첫째아들은 지난주 아시아나항공 운항 부문 직원(면장 운항 인턴)으로 입사했다. 이에 앞서 둘째 아들은 2017년 일반관리직으로 이미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지난해 연결 기준 4274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을 한 아시아나 인수에 앞서 코로나19 악재에 특혜 논란까지 벌어지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이에 더해 4월로 예상됐던 기업결합심사 승인이 중국에서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뒤 아시아나가 안정을 찾으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측은 "한 사장의 둘째 아들은 사장 재임 전인 2017년 그룹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며 "이번에 입사한 직원(한 사장의 첫째 아들)도 공정한 선발 절차를 거쳤으며, 입사 지원 자격에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4274억 원의 영업손실 등의 악재가 오히려 기업 내부 정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악재에 빠진 아시아나는 자구책으로 임원진 일괄 퇴진, 상여금 반납 등 노력을 하고 있는 데다, 위 특혜 논란도 전 운영진의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빠르게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