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이 발전하면서 증권업계에서 테크핀(Techfin) 형태의 디지털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테크핀은 기술(Tech)과 금융(Fin)의 합성어로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업체가 선보이는 금융서비스를 뜻한다. 기존 증권업계 역시 디지털 기술을 통해 많은 혁신을 이뤄왔지만, 아예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테크핀이 접목되면서 보다 새로운 방향의 비지니스를 발굴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는 분위기다.
증권업계 화두로 떠오른 ‘테크핀’
NH투자증권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손 잡았다. 둘은 전략적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클라우드, 빅데이터 관리, 분석 솔루션, 인공지능(AI) 기반의 서비스형 플랫폼(PaaS),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영역에서 협업한다. 구체적으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개발 중인 기업용 메신저 플랫폼을 NH투자증권에 도입하고, 음성인식을 비롯한 AI 기술을 고객 서비스에 적용하는 방식 등이 추진된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디지털 혁신에 대한 MOU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고 또,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며 “앞으로 플랫폼과 금융 산업이 결합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증권은 이스트소프트와 테크핀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스트소프트는 이를 위해 자회사 줌인터넷을 ICT 기반의 테크핀 회사로 운영한다. 양사는 ▲혁신적 형태의 투자 플랫폼 ▲마이데이터와 연계한 AI 추천 서비스 ▲AI 언어 분석 기반의 음성인식 데이터 활용 ▲이미지 인식 기술 활용한 전자실명제 고도화 등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개발한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네이버파이낸셜에 8000억 원을 투자하며 테크핀 기반의 금융 혁신을 예고했다. 빅데이터와 AI 역량을 활용해 투자 상품 추천서비스, 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 등을 내놓을 전망이다.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금융 플랫폼 서비스는 하이 테크놀로지를 지향해야 한다”며 “빅데이터와 AI를 바탕으로 고객과 24시간 편리하게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금융 플랫폼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MTS·新시스템 등장 등이 테크핀 ‘소환’
이처럼 증권사들이 테크핀 업체들과 손잡고 혁신에 나서는 이유는 우선 홈트레이딩(HTS)에서 모바일 트레이딩(MTS)으로 변하고 있는 환경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스마트폰을 통한 증권 거래 등이 가능했기 때문에 MTS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컴퓨터를 통한 거래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사양이 높아지고, 5G 통신환경이 도입되면서 인터넷 접속 환경이 좋아진 데다, 테크핀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HTS 못지 않은 MTS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컴퓨터로 거래하던 시스템이 모바일로 옮겨와 간편하고 쉽게 증권거래가 가능해졌다. 핀테크 기술의 발전이 모바일 영역으로까지 발전된 셈”이라며 “IT기업과 투자증권업계 간 투자, 결제, 자산관리 등이 결합된 테크핀 시대가 시작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진화된 증권투자 시스템의 등장도 테크핀의 도입을 부추키고 있다. 예를 들어 AI, 데이터 분석, 클라우드는 증권업에서 리스크 관리, 투자자문 서비스, 알고리즘 매매플랫폼 등에 활용되고 있으며, 중앙집중식 서버 운영보다 보안성이 뛰어난 블록체인은 장외증권거래, 청산결제서비스 부문에서 활용이 늘고 있다.
해외 증권 산업의 디지털 혁신은 한국보다 앞서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주식과 채권 등의 전자거래 플랫폼, 로보 어드바이저 등이 주식 거래의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했고, 블록체인을 활용한 STO(Security Token Offering, 증권형 토큰 제공) 플랫폼도 등장했다.
로보 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로 AI가 투자자가 맡긴 자산을 운용하거나 투자자 자산운용을 자문해주는 서비스다. AI는 시장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다루는 데다,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기존 사람이 맡아서 하는 투자자문보다 뛰어난 점이 최근 부각되고 있다.
증권형토큰은 발행, 추적, 거래가 블록체인 형태로 이뤄지는 자산 클래스다. 블록체인 특성상 해킹 등에 강해 보안이 뛰어난 데다, 한 국가의 상황에 메이는 현금자산과 달리 독립적인 가치를 보유할 수 있고 글로벌 거래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계 CIB(corporate&investment banking, 기업금융과 IB업무를 연계하는 업무)인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 모건과 미국 온라인 증권사인 Charles Schwab, 싱가포르계 CIB인 DBS는 등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차원의 디지털 혁신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자산관리와 소매금융 육성, 종합금융서비스 플랫폼 확충, 핀테크 등에 IT 기술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기술 금융에 투자할 기회와 폭이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핀테크 사업뿐만 아니라 테크핀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