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2020.03.08 21:05:01
이동통신사들이 스타트업(혁신형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초기 창업 회사)과의 협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5G 통신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 중 하나이지만, 협업을 이끌어내 특정 기술을 선점을 위한 방안 모색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칫 이통사들과의 협업이 특정 회사에 묶이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어 상생으로 이어지려면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KT ‘5GX 트루이노베이션 엑셀러레이터’ 실시
이통사 중 최근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눈에 띄게 강조하고 나선 곳은 SK텔레콤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26일, AI, AR/VR, 미디어, 보안, 커머스, 모빌리티 등 5G 특화 서비스 분야에서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는 ‘5GX 트루이노베이션 엑셀러레이터(5GX True Innovation Accelerator)’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스타트업과의 체계적인 상생협력을 위해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5G 본격 상용화와 함께 관련 기술 및 서비스 개발을 위해 시작된 것으로, 올해는 스타트업이 지원할 수 있는 사업 부문을 5G 특화 서비스 전 분야로 확대했다.
최대 15개 스타트업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며, 기본적으로 신규 기술 및 서비스 실증을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업무 공간과 테스트용 단말을 제공받게 된다. 또 SK텔레콤 내부 실무자 및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스타트업들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인 동시에 혁신 기업으로의 성장 발판이 되는 사업 전략, 투자, 기획 등에 대한 멘토링을 받을 수 있으며, 유관기관, 벤처캐피탈 등으로부터 사업 전략 및 외부 투자 유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네트워킹 자리도 마련된다.
특히 올해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스타트업 프로그램’ 혜택이 제공된다. MS는 클라우드 플랫폼 애져(Azure)를 사용할 수 있는 최대 12만 달러 규모의 무료 크레딧 및 관련 기술을 지원하고, 네트워크 및 자사의 공동영업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수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회사는 기술 및 서비스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사업 비용을 지원하고, 협력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사업화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우 인기가 좋은데, 지난해에는 AR·VR, 모빌리티, 보안 등의 분야에서 130여 개 스타트업이 지원해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8개사가 선발된 바 있다. 이 중 6개 스타트업은 현재 SK텔레콤과의 기술 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KT ‘판교 5G 오픈랩’ 통해 스타트업 유인
이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는 SK텔레콤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KT는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5G 인프라를 활용해 스타트업과 일반 개발자 등 누구나 5G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판교 KT 5G 오픈랩(open lab)’을 서울시 서초구 내 KT 연구개발센터 내에 개소했다. 오픈랩은 5G 와 관련된 기술자원을 중소 파트너사에 제공하는 개방형 협업 지원 플랫폼으로 월 100명 이상의 사업자가 방문하고 있는 곳이다.
이밖에도 KT는 스타트업과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협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달 20일, KT는 대전 KAIST에서 현대중공업지주, KAIST, 한양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과 함께 대한민국 AI 1등 국가를 위한 MOU를 체결하고 ‘AI One Team’을 결성한다고 밝혔는데, 당시에도 궁극적인 목표로 비 ICT기업은 물론 중소·스타트업·벤처 기업들의 AI 기술 역량을 높이고, 전 사업에 빠르게 확산시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중소·벤처 기업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오픈형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제조, 유통, 서비스, 금융 등 다양한 산업에서의 AI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성공사례를 공유, 필요한 솔루션과 인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자 생태계로 확대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당시 덧붙였다.
KT는 꾸준히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위한 기반도 단단하게 갖춰 나가는 중이다. 특히 지난해 6월 ‘Tech Care 시스템’을 발표했는데, 담당자별로 따로 관리했던 아이디어 제안과 기술 자료 제출 창구를 일원화하고, 열람 권한 부여, 보관, 폐기 등 관리 전 과정을 완전 자동화한 것이다. 이는 협력사가 KT에 제안한 기술과 아이디어 등 중요 사업 정보를 보호하고 현재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기술 거래 입증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해외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LG유플러스는 증강현실 협업 플랫폼을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스페이셜과 AR디바이스 전문 제조기업인 엔리얼, 퀄컴과 손잡고 5G를 기반으로 하는 AR 협업 솔루션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스페이셜은 증강현실 기술을 홀로그램으로 원격 미팅에 참여해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일할 수 있는 협업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으며, 최근 카카오벤처스, 삼성넥스트, LG테크놀로지벤처스 등으로부터 총 2200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액을 유치하며 증강현실 분야에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스페이셜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마텔, 퓨리나, 네슬리 등이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특정 회사 얽매이는 것은 부담”
이처럼 스타트업에 이통사들이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동통신의 발달이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전화, 인터넷, 미디어에 그치지 않고 AI, AR·VR 등 실감형 미디어, 커넥티드 카 등 다양한 분야에 미치고 있어 이통사 스스로 모든 분야를 커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통사들에게는 스타트업과 초기부터 관계를 맺을 경우 우군이 돼 산업 영역을 넓혀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점도 가능하다. 스타트업 업체들에게도 이같은 관심이 도움이 된다. 협력사가 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같은 협력은 자칫 한 이통사에 얽매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이동통신 3사가 최근 중소 콘텐츠제공사업자(CP)·스타트업에 5G를 중심으로 한 데이터 지원 등 상생안을 만들어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 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스타트업계에서는 ‘락인’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관계를 맺고 지원을 받는 것은 좋지만, 자칫 한 회사에 묶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다”며 “한 곳과 깊이 관계를 맺다 보면 다른 업체의 시스템으로 바꾸거나 이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각사의 지원책이 사별로 특징이 있고, 크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 측에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정도지 지원책 자체에 대해 거부감은 없다”며 “도 다양한 지원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