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5호 이동근⁄ 2020.05.07 08:52:06
국내 게임업계에서 소위 ‘3N’으로 불리던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중 유독 모바일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넥슨이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 기업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 서비스 하고 있는 MMORPG(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역할수행 게임)를 보유(바람의나라)하고 있고, 세계 최초의 횡스크롤 온라인 RPG 게임(메이플스토리)을 서비스 하는 등 화려한 실적과 역사를 갖고 있는 넥슨이지만, 현재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모바일 분야에서 넥슨의 입지는 그리 넓지 않다.
모바일 게임 매출 1, 2위를 장기간 독주하고 있는 엔씨소프트(‘리니지M’, ‘리니지2M’)나, 다수의 게임(구글플레이 기준 10권 안에만 ‘A3: 스틸얼라이브’,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 리니지2 레볼루션‘ 등 3개)을 상위권에 안착시키고 있는 넷마블에 비하면 넥슨의 모바일게임은 다소 아쉬운 실적을 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넥슨이 보유한 유명 IP(지적재산권) 연계 게임 중 메이플스토리M는 구글플레이 기준 매출 22위, 피파온라인 4M은 34위에 머물고 있다. 나쁜 실적은 아니지만 IP의 이름값에 비하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넥슨의 모바일 매출 비중은 지난해 24.4%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나마 이는 전년 대비 2.8% 오른 것이다. 엔씨소프트가 59%, 넷마블이 9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넥슨의 모바일 실적은 매우 낮은 편이다.
V4, ‘양산형’ 평가에도 좋은 성적 … TOP 10내 장기 집권 가능성 보여
그러던 넥슨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MMORPG ‘V4’ 출시 이후다. 2019년 11월 출시(자회사 넷게임즈 개발)된 이 게임은 첫 주 매출 50억원, 애플 매출 1위, 구글 매출 2위를 기록하며 넥슨의 모바일 게임 중 가장 눈에 띄는 실적을 냈으며, 이후에도 상위권에서 오랜 기간 자리 잡고 있다.
V4는 초기 ‘흔한 양산형 게임’이라는 평가도 나왔고, 바로 전달인 10월, 유명 IP를 활용했으며, 유명 게임 개발자 송재경이 제작에 참여한 카카오게임즈 ‘달빛조각사’가 출시되면서 비교적 주목도가 떨어졌고, ‘리니지2M’이 출시되면 인기가 사그라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현재 넥슨의 게임 중 유일하게 구글 플레이 최고 매출 순위 10위권(5월2일 기준 4위) 내에 안착하며 장기적으로 인기를 끌 조짐을 보이고 있다.
15주년 맞는 ‘카트라이더’ 모바일 출시 ‘눈 앞’
과거 인기 ‘후광’, 남녀노소 접근 쉬운 ‘캐쥬얼’ 장점
이같은 상황에서 넥슨이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던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로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의 출시다. 이 게임의 출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게임이 워낙 유명세를 탓던 게임인데다, 이후 출시된 넥슨의 클래식 게임들의 모바일 판 부활의 전조가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전작인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는 PC용 캐쥬얼 레이싱 게임으로 2004년 전식 출시된 게임이다. 출시 초기에는 자사의 인기 PC용 캐쥬얼 게임인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캐릭터를 이용한 번외편 정도로 제작됐다. 국내에서 온라인 레이싱 게임이 비주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출시 초기에는 큰 기대 아래 제작된 게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출시 이듬해 국내 동시접속자 수 22만 명을 기록하면서 2000년대 캐주얼게임의 붐을 견인했으며, 2004년 12월, 카트라이더가 스타크래프트를 밀어내고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국산게임 중 처음으로 정규 e스포츠 대회를 여는 등 큰 인기를 끌었는데, 정규 리그 출범 전인 2004년 11월 진행된 카트라이더 학교 대항전에서는 당시 국내 학교 중 96%인 1만 2000개 학교가 지원하기도 했다.
한떄는 다소 인기가 사그라들기도 했지만, 스트리밍 방송의 유행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에 대한 수요 등 여러 트렌드에 힘입어 2018년도 11월 10여년 만에 PC방 게임순위 TOP 10에 오르며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8월 서비스 15주년을 앞두고 최근에서도 PC방 점유율과 게임 내 지표가 큰 폭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글로벌 회원 2800만명, 누적 이용자 수 3억 8000만 명을 기록했다.
이같은 히트작의 후광을 입은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는 넥슨이 개발 및 서비스를 제공(중국은 세기천성에서 퍼블리싱)한다. 현재 글로벌 사전 예약 중이며, 5월 중 출시할 전망이다. 지난달 19일 사전등록 이벤트 하루만에 100만 건을 돌파했으며, 일주일만에 300만 건을 돌파할 정도로 관심을 사고 있다.
넥슨도 SK텔레콤과 공동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빠른 인터넷 접속 속도와 짧은 지연속도가 영향을 미치는 멀티 레이싱 게임인만큼 SK텔레콤 측에서는 5G의 빠른 속도를 홍보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의 운영도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이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어서다. MMORPG와 달리 접근이 쉽다는 장점이 있어 인기게임 순위에서는 상위권에 안착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 자체는 원작 PC게임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되, 다양한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작돼 과거의 향수를 기억하는 이들 뿐 아니라 새로운 유저 유입에도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인터페이스 편집도 가능한 등 세부적인 세팅이 가능해 오리지널 버전과 비스한 E스포츠로의 발전 가능성도 열려있다. 실제로 넥슨 측도 E스포츠로의 발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캐시카우 ‘던파’, 1조 매출 이어지나 … 中 내 마케팅 총력
여기에 넥슨의 대표 IP인 ‘던전 앤 파이터’(던파)의 모바일 진출도 준비 중이다. 2007년 서비스를 시작한 던파는 넥슨의 대표적인 캐시카우로 꼽힌다. 모바일 게임 출시는 국내 보다 중국에서의 선전이 기대되는데, 최근 매출이 줄기는 했지만 중국에서 ‘국민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던파 PC 버전이 인기를 끌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던파 모바일은 중국에서 사전 예약자가 32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게임이기는 하지만 중국과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갈등이 발생하기 이전인 2016년 판호를 미리 발급 받아두었기 때문에 중국 진출에도 큰 무리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넥슨은 던파 모바일 개발 인력을 제주도 본사에서 서울 역삼 사무소로 이전하면서 인력도 확충할 정도로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8월 넥슨코리아로 영입된 허민 외부고문이 던파를 개발하고 2008년 넥슨에 매각한 당사자라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넥슨은 던파 모바일에 대한 중국 내 투자에 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넥슨은 23일부터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IP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던전앤파이터:역전의 바퀴’를 방영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지난 2017년 공개된 던전앤파이터 IP 기반 애니메이션 ‘아라드의 운명’의 후속작이다. 국내 개봉 여부는 미정이다.
참고로 던파의 중국 내 매출은 약 1조 2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전년 대비 매출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중국에서는 국민게임으로 불릴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던파 모바일이 성공한다면 넥슨은 수익원을 분산시키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프리뷰 공개 ‘바람의나라·마비노기’ 출시 가능성은?
최근 소식이 다소 뜸하기는 하지만 넥슨이 내놓을 수 있는 인기 IP 게임으로는 ‘바람의 나라’의 모바일 버전인 ‘바람의나라: 연’이 있다. 정식 서비스 일자는 아직 미정이지만 이미 공동개발을 맡은 슈퍼캣과 지난해 12월 최종 테스트를 마친 바 있다.
바람의나라: 연이 기대되는 이유는 정식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장기 운영 온라인게임(1996년 서비스 시작)이기 때문이다. 순정만화가 김진의 한국형 판타지 만화 ‘바람의나라’가 원작으로 고구려 초기(모바일 버전에 붙은 ‘연’은 원작 만화 여주인공의 이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한국식 RPG 게임을 원하는 이들, 그리고 과거 오리지널 게임에 향수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IP다.
실제로 2018년 11월 5일 NEXON G-STAR 2018에서 공개된 프리뷰 영상은 전성기 시절인 예전 그래픽을 리뉴얼한 모양새로 과거 바람의 나라 PC판을 즐기던 이들을 타깃으로 개발 중인 게임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원작 게임이 너무 오래돼 밸런스 등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들 유저들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은 보장된 셈이다.
원래 2019년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한번 미뤄진 바 있어 실제 출시가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넥슨의 시초가 된 상징성도 있는 게임인데다, 넥슨 측에서 현재까지도 꾸준한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출시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위 3개 게임 외에도 넥슨이 모바일로 선보일 수 있는 IP는 적지 않다. 현재 운영중인 PC 게임들 중 모바일화 한다면 그 자체로 화제가 될 수 있는 게임만 해도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아스가르드, 테일즈위버 등 5개의 클래식 RPG 외에도 마비노기, 서든어택,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크레이지아케이드, 테일즈 러너, 프리스타일 등 다양하다.
이 중 마비노기는 모바일 버전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018 지스타에서는 시연 버전을 선보이기도 했고, 지난 2월에는 제작사인 데브캣(마비노기를 개발한 넥슨 산하 스튜디오) 공식 SNS에 “앞으로 마비노기 모바일의 소식을 전하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마비노기는 스핀오프(‘마비노기 듀얼’ 등)나 연동용 서브 게임(마비노기: 나의 기사단 등)이 수차례 출시된 바 있어 출시 가능성은 비교적 높게 점쳐지는 중이다.
아직 ‘넘어야 할 산’ 적지 않아
물론 넥슨이 모바일 분야에서 성공이 100% 보장된 것은 아니다. 오래된 IP를 활용한다는 것은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담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바람의나라: 연’이다. 이 게임은 워낙 오래돼 오래전부터 즐긴 사용자들도 많다. 이들이 새로운 게임으로 유입된다면 성공은 보장받는 셈이지만, 이들의 취향을 맞추지 못한다면 새로운 유저를 끌어들이기도 어려운데다가, 오히려 비난을 살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이 게임의 경우 제작사에 대한 불안감도 나오고 있다. 제작사인 슈퍼캣의 대표이사가 과거 일본 유명 공포게임 ‘아오오니’를 원작자 허락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저작권 침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데다, 슈퍼캣의 대표작들도 수차례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바 있어서다.
넥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넘어야 할 산이다. 넥슨은 오래된 회사인 만큼 그동안 논란을 적지 않게 겪어 왔다. 특히 최초로 부분유료화를 도입하면서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 등은 오래된 게임사라서 얹어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은 점도 있지만 극복해야 할 이미지다.
신작 게임 개발에 약하다는 이미지도 문제다. V4 성공 이후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실험적 성격을 띤 ‘야생의 땅: 듀랑고’의 실패나 PC판이지만 ‘서든어택2’의 실패 등 최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10년이 훨씬 넘는 장수게임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는 넥슨이 갖고 있는 이름값은 여전히 유저들에게 매력적”이라면서도 “지난해까지 다소 아쉬운 결과물로 유저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V4의 성공으로 어느정도 주목받기 시작했고, 올드 IP인 카트라이더나 던파가 모바일에서 성공한다면 그 기세를 이어 수많은 게임들을 연이어 쏟아낼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허민 외부고문 영입 이후 ‘선택과 집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통한 성과가 하나 둘씩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