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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요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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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2호 옥송이⁄ 2020.08.12 14:28:36

빙그레는 과자 브랜드 꽃게랑을 의류 및 패션 아이템으로 재해석한 ‘꼬뜨-게랑’ 캠페인을 진행했다.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MZ세대를 겨냥한 캠페인이다. 사진 = 빙그레 


2017년에 졸업했다. 그해 한 회사에 입사했다가 3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나왔다. 이유는 명확했다. 월급은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데, 근무 시간은 매우 탄력적이었다. 해뜨기 전에 출근하는데 퇴근은 언제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줄줄 흐르는 코피와 함께 기상한 아침, 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습 기간, 회사와 맞는지 지켜보겠다” 이 말은 곧, 당신들은 아직 서류상 정직원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분했다. 나도 이 회사랑 맞는지 지켜볼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

이대론 쓰러질 것 같았다. 3일 밤낮을 고민하고,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부장에게 직행했다. “그만두겠습니다. 짐 싸겠습니다” 부장은 멍한 눈이다. “이유는?” “아니다 싶을 때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어이없다는 표정 속에 담긴 말은 ‘어려서 맹랑하다. 건방지다’ 였을까, ‘판단이 빠르네’였을까.

나는 90년대생이다. 요즘 기성세대가 직장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연구대상. 자유분방하고, 한편으론 이기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그러나 다 맞는 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억울하다. 이유가 다 있다. 합리적이지 못한 업무나 맹목적인 희생에 따르지 않는 건 세상이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어려서부터 체득해서다. 우리 부모들은 IMF 직격타를 맞은 세대였고, 일부는 줄도산의 피해자가 돼 쌓아온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야 했다. 평생직장 없는 것도 그때 이미 눈으로 봤다. 덕분에 우리 세대가 깨달은 건 장밋빛 미래만 그리며 살 순 없다는 거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어서, 인생은 지금도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한때는 YOLO(욜로.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인생을 즐기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하면 “어 나 지금 유럽가는데” 식이다. 한 번 꽂히면 연고지 없는 지구 반대편에도 간다. 물론 결제는 신용카드 할부가 대신해준다. 대책 없어도 그렇게 사는 게 조금은 부러웠다. ‘아 인생이란 저렇게 사는 거구나. 나도 해볼까’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어차피 없는 돈, 빚 안 낸 게 다행이다 싶다. 요즘은 모임에 가면 죄다 투자, 펀드, 보험 돈 얘기다. 욜로골로(욜로하다 골로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젠 투자의 귀재들이 될 모양이다.

방황은 자양분이다. 2년간 직장 상사에게 시달리던 친구는 괴롭힘에 못 이겨 사표를 냈다. 그리고 좌절하는 대신 견문을 넓히는 쪽을 택했다. 워킹 홀리데이 중 간간이 전하는 일상은 상사에게 시달릴 때보다 곱절은 행복해 보였다. 여러 번 직장을 옮겨 다니던 친구는 직종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공과 무관한 진로로 변경했다. 또 다른 친구는 돌고 돌아 돈 대신 꿈을 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 제 각자 밥벌이하며 산다. 욜로 외치던 친구들도 요즘은 잠잠하다. 모두 값진 방황, 귀한 경험이었던 셈이다. 어른들 우려와 달리 나름의 방식으로 이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게 요즘 것들, 이른바 MZ(밀레니얼과 Z세대를 포괄하는 말.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들)다.

때로는 나조차도 또래인 MZ세대의 유행이 신기하다. 식품회사 농심이 내놓은 너구리 티셔츠를 입고, 빙그레가 꽃게랑의 ‘부캐’로 양산한 꼬뜨게랑 캠페인에 열광하며, 해태의 맛동산 상표를 박아 넣은 거대한 가방을 메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투성이일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지금은 아재가 된 X세대도 한때는 개성 넘치는 요즘 것들이었다.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 MZ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것들은 언제나 유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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